평생을 나라를 위해 싸우고, 목숨까지 바친 애국지사를 생각하다
평생을 나라를 위해 싸우고, 목숨까지 바친 애국지사를 생각하다
  • 송시내 (사)우리역사바로알기 교육국장
  • k-spirit@naver.com
  • 승인 2018.06.05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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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송시내 (사)우리역사바로알기 교육국장

(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서울지방보훈처 후원 2018현충시설활성화 사업으로 6월 2일 효창공원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현장체험학습을 실시했다. 더운 날씨에도 140명에 달하는 학생과 학부모가 참가하여 독립운동과 통일운동에 평생을 바친 김구선생님과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알아보았다. 효창공원에는 대일항쟁기 나라의 광복을 위해 평생을 바친 분들을 모신 곳이다.

효창공원에는 임시정부요인묘역과 삼의사묘가 있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6월 3일 시행한 현장학습 참가자들이 삼의사묘를 참배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효창공원에는 임시정부요인묘역과 삼의사묘가 있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6월 2일 시행한 현장학습 참가자들이 삼의사묘를 참배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1919년 3월 1일, 제국주의에 대항히여 최초의 범민족적, 범종교적 평화운동인 삼일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 거족적 독립운동을 계기로 민족 지도자들은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웠다. 나라를 잃고 중국 땅에서 경제적 곤란, 일제의 탄압, 내부의 갈등 등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임시정부의 맥을 이어온 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이 세 분을 모신 임시정부요인묘역이 효창공원에 있다. 임시정부 주석과 의장을 지낸 이동녕 선생. 김구 선생은 이동녕 선생의 장례식에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이면에는 이동녕의 지원이 있어 가능했다”라고 하였다. 그만큼 이동녕 선생의 역할이 컸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성환 선생은 군무부장을 역임하였고 무오독립선언서의 민족대표 39인 중 한 분이다. 차리석 선생은 신문기자로 활동하며면서 독립운동을 하셨고, 국무원비서장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킨 분이라는 것 외에도 독립운동에서 무엇보다도 ‘단결’을 외치셨다는 점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2일 시행한 현장학습 참가자들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2일 시행한 현장학습 참가자들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다음으로는 삼의사묘로 향했다. 김구 선생이 광복 이후 가장 먼저 한 것은 독립운동 중에 목숨을 잃고 남의 땅에 묻혀 있는 의사들의 유해를 찾아오는 일이었다. 상해 홍커우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의 요인들에게 큰 타격을 입힌 윤봉길 의사, 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일왕에게 폭탄을 던진 이봉창 의사, 중국 내의 친일파 관리들과 일본 요인의 내통 장소를 알아내어 거사를 준비했던 백정기 의사를 모신 곳이 삼의사묘이다. 특히 이곳에는 묘비가 없는 가묘가 하나 있는데 바로 아직까지 그 유해를 찾지 못한 안중근 의사의 가묘이다. 안중근 의사의 가묘를 보니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 분의 유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 가슴이 아팠다.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를 참배하고 효창공원에 잠들어 계신 일곱 분의 영정이 있는 의열사로 들어가 참배하였다. 한 분 한 분의 활동과 삶이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과 감동을 주는데 정작 그 분들의 얼굴도 알지 못한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김구 선생의 삶에 관해 알아보았다. 어린 시절 개구쟁이였지만 철이 들어 공부를 하고 의병활동을 한 김구 선생의 일생을 보며 우리 학생들이 앞으로 많은 가능성이 있으며 그 계기를 잘 마련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일대기를 통해 참가한 학부모들은 자녀를 큰 인물로 키우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를 새겼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2일 시행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현장학습 참가자들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2일 시행한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하는 현장학습 참가자들이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아들에게 “나는 네가 나라 위해 일하다가 감옥에 갇힌 것이 경기감사 한 것보다 더 자랑스럽다.”는 이야기로 아들의 독립운동을 지지했다. 상해임시정부 시절 곽 여사의 생일상을 준비하려는 사람들에게 그 돈을 받아 권총 2자루를 사서 내놓으며 “나라를 잃고 남의 땅에 와서 독립 운동하는 처지에 생일상이 무슨 말이냐. 이 총으로 적의 심장을 쏘아라.”고 하신 말씀에 고개가 숙여졌다. 위대한 인물 뒤에는 그 인물을 키운 훌륭한 어머니가 계셨음을 알 수 있었다.

임시정부의 문지기가 되어도 좋다는 말로 가장 낮은 위치에서 독립운동에 기여하고자 했던 김구 선생은 많은 어려움과 흔들림 속에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임시정부를 지켜내어 주석에까지 올라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다. 광복이후 남북으로 갈라질 위기에 놓인 우리 민족을 위해 남북연석회의에 참석하여 북한의 김일성을 만나기도 했다. 김구 선생은 평생을 동학운동, 독립운동, 통일운동에 바치며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하나의 민족을 위해 노력해오셨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2일 효창공원에서 학생과 학부모과 함께하는 호국역사탐방을 시행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2일 효창공원에서 학생과 학부모과 함께하는 호국역사탐방을 시행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최근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곧이어 북미정상회담도 개최할 준비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가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모든 국민의 염원을 모아 평화통일을 이룩해야 할 때이다. 우리 민족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이념이야말로 이러한 통일과 세계평화에 기초가 되는 철학이며 이상이다. 나 혼자가 아닌 우리,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의 평화를 위하는 그 귀한 마음이 모여 홍익인간세상의 큰 뜻을 통일 한국을 통해 이룩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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