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 뇌와 몸의 연결고리

지금까지의 칼럼에서 인성은 감정 인식과 자기조절력이라는 뇌의 고차원적 실행기능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중요한 능력을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에 대해 종종 오해한다. 많은 교육이 인성을 지식으로 설명하고, 머리로 이해하면 행동이 바뀐다고 가정해 왔다. 하지만 최신 뇌과학과 인지과학은 이 전제를 근본부터 뒤집는다.
뇌는 결코 고립된 ‘생각의 기계’가 아니다. 사고와 감정, 행동은 뇌의 여러 영역이 동시에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전신(全身) 기반 회로의 산물이다. 이 관점이 바로 현대 인지과학의 핵심 패러다임인 체화된 인지(Embodied Cognition)다.
현대 인지과학과 철학계는 이를 “사고가 뇌뿐 아니라 신체의 감각·운동·환경 경험에 깊이 의존하는 인지 체계”라고 명확히 정의한다. 다시 말해, 인성은 ‘생각’으로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몸의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구조적 뇌 기능이다.
우리는 흔히 “생각은 머리, 감정은 가슴, 움직임은 팔다리”처럼 기능이 분리돼 있다고 이해한다. 그러나 실제 뇌는 그렇게 독립된 부품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전전두엽이 판단과 조절을 담당하고, 변연계가 감정을 처리하며, 운동피질과 소뇌가 움직임을 조정한다고 설명되지만, 이들은 하나의 신경 회로로 강하게 얽혀 동시에 활성화된다. 전전두엽·운동피질·소뇌·변연계가 한 몸처럼 연결되어 생각·감정·행동을 함께 설계하는 이 통합 구조가 바로 체화된 인지의 핵심이며, 인성이 머리가 아니라 몸에서 길러지는 과학적 근거다.
이 사실은 최신 연구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버드 의대 제레미 슈마만(Jeremy Schmahmann) 교수는 2023년 연구에서 소뇌가 단순한 운동 조절 기관이 아니라 전전두엽과 긴밀한 루프(Cerebro-Cerebellar Loop)를 형성해 감정 조절, 언어, 판단 등 고등 인지 기능을 조율한다는 “사고의 조율(Dysmetria of Thought)” 이론을 확립했다. 몸의 정교한 균형을 잡는 회로가 마음의 균형·감정의 균형까지 조율하는 것이다.
여기에 뇌섬엽(Insula)의 역할도 중요하다. 2024년 『Nature Reviews Neuroscience』에서는 내수용성 감각(심박, 호흡, 근육 긴장 등)을 처리하는 뇌섬엽 활성도가 감정 인식·공감 능력과 직접 연관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는 “몸 안의 신호를 정확히 읽는 능력”이 인성의 기초임을 보여준다.
몸을 움직이는 교육이 왜 인성을 강화하는지도 과학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International Journal of Molecular Sciences』(2024)는 신체 활동이 BDNF(뇌 유래 신경영양인자)를 증가시켜 전전두엽과 해마의 가소성을 높인다는 사실을 메타분석으로 제시했다. 이는 신체 활동이 단순 체력 향상이 아니라 뇌가 새로운 인성과 행동 패턴을 학습할 준비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의미다.
이러한 흐름은 전 세계 교육 정책에서 ‘세 번째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학업 중심 교육을 넘어, 몸 기반 경험과 움직임을 활용한 사회정서학습(SEL), 협동 신체 활동, 감각·호흡 기반 훈련 등이 정서안정·자기조절력·공감능력을 강화하는 핵심 전략으로 채택되고 있다. 이는 AI 시대의 교육이 ‘책상 중심의 도덕 교육’에서 ‘몸으로 익히는 뇌기반 인성교육’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뇌교육은 바로 이 과학적 토대 위에서 등장한 접근이다. 신체 감각 활성화, 호흡 조절, 균형 훈련, 정서-인지 통합 활동 등을 통해 전전두엽·소뇌·뇌섬엽·변연계가 통합된 회로로 작동하도록 돕는다. 결국 인성은 지식으로 이해하는 개념이 아니라 감각-운동-정서-인지 네트워크가 반복적 경험 속에서 재구조화되며 형성되는 뇌의 기술이다.
AI는 수백만 권의 도덕 교과서를 학습할 수 있다. 그러나 AI에게는 심장이 뛰지 않고, 호흡이 흔들리지 않으며, 움직임 속에서 균형을 찾는 신체 경험이 없다. AI는 윤리를 ‘계산’할 수는 있어도 ‘체감’할 수는 없다.
이 차이가 바로 인간다움의 핵심이며, 인성이 몸에서 태어나는 이유다.
글. 신재한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인성교육연구원장
- 교육부 연구사 역임
-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 역임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교수학습센터 운영위원
- 한국교육학술정보원 콘텐츠 평가 심사위원
- 한국연구재단 등 국가기관 정부 프로젝트 심사위원
- 한국청소년상담학회 융합상담학회 회장, 수련감독
- 한국상담학회 노인상담학회 대외협력위원장, 수련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