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놀면서 우리 역사를 배운다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놀면서 우리 역사를 배운다
  • 윤성아 (사)우리역사바로알기 강사
  • k-spirit@naver.com
  • 승인 2018.06.15 13: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고] 윤성아 (사)우리역사바로알기 강사

(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6월 9일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현장체험학습을 하였다. 서울지방보훈처가 2018 현충시설활성화 사업으로 후원한다. 놀이공원에서 역사체험이라니 생소하겠지만, 우리 민족의 역사를 간직한 장소이며, 독립 운동가들의 동상을 많이 세워 놓은 곳이 바로 서울어린이대공원이다.

서울어린이대공원 유릉의 석물. 유릉은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황후 순명효황후의 능으로순종이 승하하자 유릉을 홍릉 언덕으로 천장하였다. [사진=(사)우리역사바로알기]
서울어린이대공원 유릉의 석물. 유릉은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황후 순명효황후의 능으로순종이 승하하자 유릉을 홍릉 언덕으로 천장하였다. [사진=(사)우리역사바로알기]

서울어린이대공원은 1973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개장하였다. 당시 동아시아 최대의 규모로 어린이는 물론 청소년과 일반시민을 위한 휴식과 문화공간으로서 시민공원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공원의 부지는 대한제국 순종황제의 황후 순명효황후 민씨의 무덤인 유강원이 있던 곳이었다. 유강원은 순종이 즉위한 후 유릉으로 추봉되었고, 순종이 승하하자 유릉을 홍릉 언덕으로 천장하였다. 원래 왕실가족의 무덤(릉)이 있던 곳이라 그 동네 지명도 능동으로 불렀다. 그 후 1927년 영친왕의 지시로 군자리 골프장을 지어, 1930년 우리나라의 최초 18홀 경성 골프클럽 군자리 코스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제2차 대전과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골프장은 서울 컨트리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재건되었고, 1970년대 고양시로 이전하였다. 1980년대 후반 에버랜드와 롯데월드 등 규모가 큰 테마파크가 등장하면서 서울어린이대공원은 수요가 크게 줄었으나, 2006년 무료로 개방하고 2009년 대대적으로 재단장하여 현재에도 꾸준히 가족공원으로 사랑받고 있다.

존 비 코올터 장군 동상. 존 비 코올터  장군은  6.25전쟁 당시 제1군단의 지휘를 맡아 포항전투에서 우리 군의 반격이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청천강전투에 투입되어 공훈을 세웠다. [사진=(사)우리역사바로알기]
존 비 코올터 장군 동상. 존 비 코올터 장군은 6.25전쟁 당시 제1군단의 지휘를 맡아 포항전투에서 우리 군의 반격이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청천강전투에 투입되어 공훈을 세웠다. [사진=(사)우리역사바로알기]

우리는 공원의 후문 앞에 모여서 먼저 존 비 코올터 장군 상을 찾았다. 코올터 장군은 제1차,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하였고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6.25전쟁 당시 제1군단의 지휘를 맡아 활약하여 포항전투에서 우리 군의 반격이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하였고, 청천강전투에 투입되어 공훈을 세웠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유엔한국재건단 단장으로서 전쟁 후의 한국의 재건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국방부가 한국의 평화와 자유를 위해 기여한 장군의 공적을 기려 1959년 이태원로터리에 동상을 세웠는데, 남산3호 터널 건설로 인해 1977년 이곳으로 옮겼다. 적에게는 서슬 퍼런 위엄을, 우리 국민에게는 넓은 아량을 보여주었던 장군의 모습이 동상에 그대로 표현되어 있으며 그런 장군에게 우리는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의 아기 코끼리 코리와 엄마 코끼리. [사진=(사)우리역사바로알기]
서울어린이대공원 동물원의 아기 코끼리 코리와 엄마 코끼리. [사진=(사)우리역사바로알기]

놀이공원이라 볼 수 있는 활기찬 풍경들을 함께 하면서 역사체험을 하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싱그러운 여름을 맞아 여러 가지 나무들과, 갖가지 동물들 속에서 어린이들은 물론 학부모들도 동심으로 돌아가 마냥 즐거워했다. 언제나 인기 만점인 사자, 호랑이의 우리를 지나면 지난 겨울 태어난 귀여운 새끼 코끼리 ‘코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코리 앞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코끼리를 기억하였다. 조선 태종 11년 일본에서 코끼리를 바쳤고 신기한 코끼리를 구경하던 관리가 침을 뱉자 이에 흥분한 코끼리가 그를 발로 밟아 죽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에 코끼리는 전남 장도로 유배를 가고 수많은 식량을 축내어 충청, 경상도를 떠돌았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남아 있다. 그 후 궁궐을 훼손하여 만든 동물원 창경원에 있었던 코끼리들의 이야기에서도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읽을 수 있다. 동물들을 보고 싶어 우리 안에 가둬둔 인간의 모습이 조금은 씁쓸하기도 하였다.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있는 남강 이승훈 선생 상. 선생은 대일항쟁기 강명의숙과 오산학교를 세우고 항일 비밀결사단체 신민회 활동도 하였다. [사진=(사)우리역사바로알기]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있는 남강 이승훈 선생 상. 선생은 대일항쟁기 강명의숙과 오산학교를 세우고 항일 비밀결사단체 신민회 활동도 하였다. [사진=(사)우리역사바로알기]

동물나라를 지나 구의문 쪽으로 향하는 길에 우뚝 서있는 남강 이승훈 선생 동상 앞에 멈춰 섰다. 선생은 어릴 때부터 착실하게 일하여 재산을 모았고, 청일, 러일 전쟁 중에 재산을 잃는 아픔을 딛고 다시 공장을 일으켜 사업가가 되었다. 소년들을 모아 가르치고 후진 양성을 하던 중에 안창호 선생의 ‘교육진흥론’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아 이후 강명의숙과 오산학교를 세우고 항일 비밀결사단체 신민회 활동도 하였다. 선생은 안악사건, 105인 사건으로 오랜 기간 옥고를 치렀음에도 독립정신은 꺾이지 않았다. 1919년 3월1일 민족대표 33인 중 기독교 대표로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또 한 번의 옥고를 치른 후에는 고향으로 내려와 오산학교를 정비하여 교육과 농촌부흥에 힘썼다. 1930년 여느 때처럼 학생들에게 훈화를 하고 돌아와 갑자기 병이나 이튿날 세상과 이별을 하였다. 이승훈 선생은 학생들을 진심으로 대하고 사랑했으며 스스로 밥을 해 먹이기도 하고, 추운 겨울 얼어붙은 화장실을 직접 청소하여 학생들에게 스승의 참된 마음을 보여주었다. 지금도 선생의 추모식 날에는 오산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선생의 동상을 찾아 고마움을 전하는 행사를 전통으로 이어가고 있다. 이런 훌륭한 인물들을 우리는 너무 모르고 지내는 사실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백마고지 삼용사 상. 1952년 10월 12일에 고지 정상을 재탈환할 당시  아군의 전진을 가로막는 적의 중화기진지를 폭파하고 장렬히 산화한 소대장 강승우 소위,  안영권, 오규봉 일등병 백마고지 삼용사의 뜻을 기리는 동상이다. [사진=(사)우리역사바로알기]
백마고지 삼용사 상. 1952년 10월 12일에 고지 정상을 재탈환할 당시 아군의 전진을 가로막는 적의 중화기진지를 폭파하고 장렬히 산화한 소대장 강승우 소위, 안영권, 오규봉 일등병 백마고지 삼용사의 뜻을 기리는 동상이다. [사진=(사)우리역사바로알기]

오전의 마지막 탐방지는 구의문 근처에 용맹스럽게 서 있는 백마고지3용사의 상이다. 1952년 10월 12일에 고지 정상을 재탈환할 당시 공격 부대의 선두에서 아군의 전진을 가로막는 적의 중화기진지를 목숨을 바쳐 폭파하고 장렬히 산화한 소대장 강승우 소위 그리고 안영권, 오규봉 일등병 등 백마고지 삼용사의 뜻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다. 6.25전쟁 중 백마고지 전투가 가장 치열했다. 국군 9사단 장병들은 이 고지를 기필코 강탈하려는 중공군 38군의 노도와 같은 파상적인 인해전술을 죽음을 각오한 혈전으로 물리쳤다.

너무 치열한 전투로 인해 많았던 나무숲이 다 파괴되고 산등성이가 허옇게 벗겨져서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백마(白馬)가 쓰러져 누운 듯한 형상을 하였으므로 '백마고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지 주인이 바뀌며 10여 일간 계속되었던 백마고지 전투 후 중공군은 고지쟁탈을 단념하였다. 6.25희생자 400만 명 중 300만 명이 고지쟁탈전에서 희생되었다. 한 치의 땅이라도 지켜내려 했던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다. 지금도 그 곳에는 발굴되지 못한 유해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이 순간에도 조국 곳곳에 잠들어있는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루 빨리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서울어린이대공원에 얽혀있는 역사를 접한 후 점심을 먹고, 푸른 잔디밭에서 아이들은 즐겁게 뛰어 놀았다. 어린이들은 조별로 모여서 메타세콰이어 열매로 예쁜 팔찌를 만들었고, 학부모들도 따로 모여서 팔찌를 만들었다. 넓은 자연에서 역사공부도 하고 동물들과 인사도 하고, 팔찌도 하나씩 만들어 차고 뛰어 노니 이것이 바로 체험학습의 참모습이다. 우리나라 과거 역사의 뿌리를 알고,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의 역사를 키워나갈 어린이들과 함께 체험할 수 있어서 보람 있던 이날을 기억해야겠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 강사 윤성아

0
0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