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6월 16일(토) 서울지방보훈처 후원 2018현충시설활성화사업으로 수원화성에 있는 현충시설을 방문, 현장학습을 실시했다.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인기 있는 곳으로 200명의 학생과 학부모가 신청을 했다. 수원화성은 조선후기의 성곽이면서도 대일항쟁기 항일 투쟁의 역사가 서린 곳이다. 1919년 3.1운동 당시 서울에서뿐 아니라 수원에서도 3.1운동이 활발히 일어났다. 특히 화성행궁 내의 봉수당에서는 수원의 기생조합 소속 기생들이 만세운동을 벌였던 곳이다. 1919년 3월 29일 일어난 이 만세운동은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병원으로 향하던 기생 김향화를 선두로 일제히 독립만세를 불렀다. 진주, 해주, 통영 등지의 기생들도 조직적으로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이 당시의 기생 중에는 서화에 능하고 학식 있는 여성들이 있었는데 금반지 등을 팔아 태극기를 마련하고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를 쓰며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전국적으로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모두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 바쳐 항쟁한 역사를 느낄 수 있어 가슴 뭉클했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기 16일 수원화성에 실시한 현장학습 참가자들이 무예24기 시범을 관람했다. [사진=(사)우리역사바로알기]
(사)우리역사바로알기기 16일 수원화성에 실시한 현장학습 참가자들이 무예24기 시범을 관람했다. [사진=(사)우리역사바로알기]

그 항쟁의 자리는 조선후기 개혁군주 정조 대왕이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었던 장소이다. 남편인 사도세자가 비운에 죽고 아들인 정조가 노론의 위협 중에 개혁을 추진하는 것을 지켜보는 어미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그런 어머니를 위한 잔치를 열어 효를 행한 정조.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세상에 이로움을 행하려 했던 정조의 눈물겨운 노력이 가슴에 진하게 남는다. 문과 무를 숭상하여 규장각과 장용영을 설치하여 개혁을 이끌었고, 실학자를 키워 새로운 기술과 사상을 받아들이고, 백성들을 위하는 애민정신과 효를 행한 모습에서 학생과 학부모들은 많은 교훈을 얻었다.

화성행궁을 나와 수원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인 서장대로 향했다. 수원화성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장대에서 아름다운 수원화성을 감상하였다. 동서양의 뛰어난 과학적 특징을 모두 갖춘 근대초기 군사건축물, 자연지형을 그대로 살려 산성과 읍성을 조화시킨 성곽, 전쟁으로 훼손되었지만 『화성성역의궤』에 의해 완벽하게 복원된 사실. 이러한 이유로 수원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었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16일 수원화성에서 실시한 현장학습 참가자들이 반차도를 보고있다. [사진=(사)우리역사바로알기]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16일 수원화성에서 실시한 현장학습 참가자들이 반차도를 보고있다. [사진=(사)우리역사바로알기]

서장대에서 팔달문으로 향하는 길에 두 개의 현충시설이 있다. 바로 3.1독립운동기념탑과 대한민국독립기념비이다. 3.1독립운동기념탑은 만세운동을 주도하던 군중에게 마구잡이 총격을 가한 일본순사 노구치의 순국비를 허물고 세운 기념탑이다. 일본 순사 노구치는 수원지역의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홍면옥 선생에게 총상을 입히는 등 시민의 분노를 사서 돌에 맞아 죽었다. 시민들은 해방이 되자 이 노구치의 순국비를 허물고 그 자리에 3.1독립기념탑을 세웠다. 원래는 중포산에 세웠는데, 1969년 3.1동지회가 팔달산 중턱으로 이전하여 지금에 이른다.

그 곁에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정부수립과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대한민국독립기념비가 있다. 우리 국권을 침탈하고 지배한 일제의 침략과 지배에 맞서 국권회복과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의병전쟁, 순국항쟁, 3·1독립운동, 독립군전쟁, 의열투쟁, 대한민국임시정부, 농민운동, 노동운동, 학생운동, 광복군 등에 참여한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있었다. 이들의 희생과 애국정신을 잊지 않도록 수원시민이 세운 것이다.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16일 수원에서 시행한 현장학습 참가자들이 3.1독립운동기념탑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사)우리역사바로알기]
(사)우리역사바로알기가 16일 수원에서 시행한 현장학습 참가자들이 3.1독립운동기념탑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사)우리역사바로알기]

 

조선후기 국가의 부흥에 힘쓴 정조 대왕, 급작스런 죽음으로 어린 순조가 임금의 자리에 올라 세도정치가 시작되어 나라의 안위보다는 개인의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세계정세와 국가의 발전을 뒷전으로 밀어버린 결과 나라를 빼앗기게 되었다. 행궁터에서 우리의 민중은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했으며 결국에는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모든 역사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마련이다. 그 원인을 알아 다시는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역사의 순간에는 언제나 선택의 순간이 온다. 그러한 선택의 순간에 나만을 위할 것인가 인류를 위할 것인가 그 판단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지난 8회에 걸친 현충시설활성화사업을 통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우리의 호국의 역사를 알게 되어 나라의 소중함, 선열들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뜻 깊은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이러한 역사탐방을 통해 국가유공자의 공훈과 희생정신을 기리고 애국심을 함양하는 데 더욱 매진할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