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서울지방보훈청이 후원하는 현충시설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청소년과 함께하는 현충시설탐방’을 매주 실시한다. 그 여섯 번째 탐방지는 7월 6일 백범김구기념관과 효창공원에 있는 현충시설이었다. 효창공원에는 이곳에 잠들어계신 순국선열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의열사와 이봉창의사 동상이 현충시설로 지정되어 있다.

효창공원 임시정부요인묘역에서 학생들이 해설을 듣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효창공원 임시정부요인묘역에서 학생들이 해설을 듣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효창공원은 조선시대 22대 임금 정조의 아들인 문효세자가 어린나이에 죽자 이곳에 묻고 효창원이라 이름 지었던 곳이다. 대일항쟁기 일본은 조선왕조의 맥을 끊고자 악행을 저질렀는데 그 중의 하나가 왕실 무덤과 태실들을 훼손한 것이다. 이곳 효창원에 있던 무덤들도 그때 서삼릉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해방 이후 김구 선생은 이곳 효창원에 임시정부 요인과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를 모셔와 묘역을 조성하고 본인도 이곳에 묻히겠다고 했다. 그래서 효창공원에는 총 일곱 분의 유해를 모셨는데, 임시정부요인 이동녕, 차리석, 조성환과 삼의사라 불리는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그리고 김구 선생의 묘이다.

효창공원 내에 있는 의열사 앞에서 청소년과 함께하는 현충시설탐방에 참가한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효창공원 내에 있는 의열사 앞에서 청소년과 함께하는 현충시설탐방에 참가한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그런데 이곳에는 시신이 없는 가묘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안중근 의사의 허묘이다.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의사는 110년이 지난 지금에도 시신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그 유해를 찾게 되면 모시기 위한 허묘가 있을 뿐이다. 그 쓸쓸한 묘역에 2019년 올해 정부에서 안중근 의사의 비석을 세웠다. 시신이 없는 묘소라고 하니 하루빨리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 해방된 조국에서 편안히 쉬시게 해야겠다.

임시정부묘역은 효창공원의 가장 아래쪽에 있어 찾는 사람이 적다. 1919년 3.1운동으로 전 민족의 독립의지를 확인하고 같은 해 4월 11일 상해에 임시정부를 마련하여,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친 세 분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이동녕 선생은 “선생이 있었기에 임시정부와 내가 있었다.”라고 김구 선생이 이야기했을 정도로 임시정부에서 큰 역할을 했다. 조성환 선생은 대한제국의 군인이었다. 그는 군대가 해산되고 나라를 잃게 되자 임시정부의 군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광복군 창설에도 크게 기여했다.

청소년과 함께하는 현충시설탐방에 참가한 학생들이 백범김구기념관 내 백범 김구 선생 동상 앞에서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청소년과 함께하는 현충시설탐방에 참가한 학생들이 백범김구기념관 내 백범 김구 선생 동상 앞에서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차리석 선생은 기자로 독립운동을 알리신 분이다. 그와 관련된 아픈 이야기가 있다. 해방 후 친일 인사들을 처벌하지 않고, 오히려 김구, 여운형 등이 암살되자 차리석 부인은 아들 성씨를 “車(차)”에서 “申(신)”씨 성으로 바꾸었다. 독립운동을 했던 가족이라는 것이 오히려 위해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세상이었던 것이다. 아들 차영조 씨는 16살이 되어서야 아버지에 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기막힌 일이 어디 있는가! 지금이라도 우리 후손들이 나라를 위해 애쓰신 분들을 기억하고 알려야 할 것이다.

백범김구기념관에 전시한 피살 당시 김구 선생이 입고 있던 옷을 학생들이 보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백범김구기념관에 전시한 피살 당시 김구 선생이 입고 있던 옷을 학생들이 보고 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백범김구기념관으로 들어서니 전시물이 조금씩 바뀌기도 하여 새로운 느낌이었다. 요즘 방학을 맞아 외국에서 온 학생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BTS(방탄소년단)의 인기가 상상 이상임을 알 수 있다. 외국 청소년뿐만 아니라 그 부모도 한국어 공부에 열을 올려 우리나라 동포학생들이 학교에서 인기가 많다는 것이다.

이봉창의사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 (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6일 서울 효창공원과 백범김구기념관으로 '청소년과 함께하는 현충시설탐방'을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이봉창의사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 (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6일 서울 효창공원과 백범김구기념관으로 '청소년과 함께하는 현충시설탐방'을 했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

김구기념관 입구에 쓰여 있는 “내가 갖고 싶은 것은 한없이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는 글귀가 지금 세계로 뻗어가는 우리 문화를 떠올리게 해 더욱 가슴 뜨거워진다. 어린 시절 철없던 개구쟁이의 모습을 보인 김구 선생님. 그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은 멀게만 느껴진 위인이 아니라 평범한 우리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평범한 사람이 뜻을 세우면 민족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또한 그렇게 훌륭한 김구 선생님은 어머니 곽낙원 여사의 교육이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감옥에 갇혀있는 아들에게 “나는 네가 경기감사를 한 것보다 더 너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라는 말로 아들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강인한 어머니 곽낙원 여사는 이후로도 독립운동에 앞장서 여성독립운동가에 이름을 올렸다. 10대 시절 평등세상을 꿈꾼 동학운동으로 시작해 치하포 의거, 교육운동, 임시정부, 한인애국단, 통일운동에 이르기까지 칠십 평생을 오직 우리 민족을 위해 살아오신 백범 김구. 그의 못 다한 소원인 통일의 사명을 우리가 이루겠다는 다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