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의 반란과 인간성 상실
기생충의 반란과 인간성 상실
  • 민성욱 박사
  • k-spirit@naver.com
  • 승인 2019.06.27 08: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칼럼] 민성욱 박사

“내가 원래 선을 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는데......”

영화 ‘기생충’에서 글로벌 IT기업 CEO 박 사장이 집안일을 하는 아랫사람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대사다. 여기서 선은 계층 간의 이동을 어렵게 만든 보이지 않는 사회시스템을 의미한다.

영화 ‘기생충’은 봉준호 감독의 작품으로 프랑스 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여 국내보다 세계에서 먼저 인정을 받은 영화이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영화의 이야기 소재는 서로 전혀 다른 두 가족, 반 지하에 사는 빈곤층인 기택네 가족과 대저택에 사는 부유층인 박 사장네 가족이 한 공간에서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모두가 일자리를 잃은 기택의 가족 중 장남 기우가 박 사장의 집에 고액 과외 선생님이 되기 위해 면접을 보러 가면서 두 가족의 기묘한 만남이 시작된다.

특권의식을 갖고 있는 귀족계층인 박 사장이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서민계층인 기택에게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자 기택은 기생해 왔던 숙주, 박 사장을 공격하면서 결국 두 가족의 만남은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영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개 사람을 멸시할 때 벌레 같다는 의미로 ‘~충’ 이라고 표현한다.

영화는 자본주의 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계급사회의 특징은 계급으로 인간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신분제는 이미 100여 년 전에 철폐되었지만 21세기를 사는 지금에도 자본을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신분제가 존재한다. 수많은 계단을 통해 계층 분화를 이야기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계층 간의 이동도 가능하지만 이미 사회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공고화 되면서 계층 간의 이동이 어려워지게 되었다. 그렇게 생겨난 것이 계층 간의 특권의식과 피해의식이다.

그렇다면 인류사회는 처음부터 계급이 존재하는 불평등사회였을까? 물론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처음 인류는 무리를 지어 다니며 사냥과 어로 그리고 열매 채집 등으로 먹고 살았다. 무리사회에서는 사냥감이 없거나 열매가 다 떨어지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한 곳에 정착하기 시작하였고, 정착생활을 하게 되니 인구도 늘어났으며, 주거공간도 더 견고하고 넓어져야 했다. 한 곳에 여러 씨족들이 모여 살면서 자연스레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예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잉여생산물이 생겨났다. 이러한 잉여생산물을 저장할 수 있는 토기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빗살무늬토기이다. 개인별로도 생산량이 다르게 되어 사유재산제가 인정되게 되었다.

마을마다 생산량이 달랐다. 흉년이 든 마을에는 당장 먹을 양식도 모자라 겨울을 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다른 마을의 잉여생산물에 눈독을 드리기 시작했고, 힘이 약하면 밤에 몰래 훔쳐가고 힘이 강하면 빼앗아 갔다. 마을에서는 그들의 생산물을 지키려면 역할 분담이 필요했고, 마을 내에서 힘도 세고 현명한 사람을 뽑아 그들이 농사를 지으러 마을을 비운 사이에 그들의 생산물을 지키게 하였다. 나중에는 혼자 힘으로 지킬 수 없어 마을 내에 힘센 장정들을 뽑아 지키게 하였다. 점점 역할이 세분화 되고 조직화 되면서 오늘날 초기 국가와 같은 모습을 갖추어 가게 된다. 이렇듯 모여 정착생활을 하다 보니 문화나 문명 등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생겨난 문명의 역사는 점차의 힘의 논리가 지배하게 되는데, 힘이 센 마을이 다른 마을의 생산물을 약탈하기 위하여 전쟁을 시작하였다. 전쟁의 결과, 마을과 마을이 모여 하나의 마을연맹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마을연맹체사회는 사회발전과정에서 마을사회 단계와 국가사회 단계 사이에 위치한다. 우리말에서 여러 마을이 모인 일정한 지역을 고을이라고 하므로 이 단계의 사회를 고을 사회라고도 부른다. 마을연맹체사회가 이전 단계인 마을사회와 다른 가장 중요한 점은 구성원 사이에 빈부의 차이와 사회신분의 분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이전의 평등사회에서 신분사회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빈부의 차이와 신분의 형성은 어느 정도 전문화되고 영속적인 위치에 있는 정치 지도자를 출현시켰다. 이 시기의 정치권력은 혈연적 조직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공동체 내에서의 사회적 지위는 대체로 정치지도자와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되었다. 종교적 권위자도 출현하였다. 마을연맹체사회 단계에서는 이전의 평화롭던 마을사회와는 달리 전쟁이 일어났고, 전문 기능인이 출현하였으며, 조직적인 장거리 교역이 행해졌다.

인류사회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인 전쟁이 이 시기에 시작되었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비극 을 초래하였다. 참혹한 전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최초 전쟁이 발생하였던 마을연맹체 사회로 거슬러 올라가 원인을 찾고 해결점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통해 우리 알 수 있는 것은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채택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중요하다. 따라서 영화 ‘기생충’의 메시지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아무리 남에게 의지하는 기생충 같은 삶을 살아도 그도 인간이며 인간의 존엄성은 지켜져야 한다. 그 존엄성이 깨질 때 역사는 다시 한 번 뒤바뀐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렇게 해서 혁명이 일어나고 세상은 발전해 왔다. 역사발전의 판단 근거는 인간 존엄성에 있고 인간의 존엄성은 어떻게 지켜질 수 있는가? 그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확대에 있다. 시민혁명이 그러했고 동학농민혁명이 그러 했으며 의병활동과 삼일항쟁도 다르지 않다. 4·19혁명, 5월 및 6월 민주항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때로는 의도치 않게 애국심으로 불타오르게 하거나 영웅을 탄생시키기도 하지만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결국 하나임을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 홍익인간이며 그들이 창조한 세상이 이화세계이다. 그 사상적 기저에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한철학과 천지인 사상이 있다.

중요한 것은 인성회복을 통한 의식의 성장이 이루어 져야 하며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건강해 져야 된다. 그러할 때 기생충 등 벌레조차도 존중받는 세상이 될 수 있다. 생명은 형태와 관계없이 고귀한 것이다. 그래서 신라인들은 살생유택이라고 해서 살생을 할 때는 가려서 하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작가와 연출가의 의도한 바가 있었겠지만 그것과는 관계없이 관객들의 마음 한쪽에 자리 잡은 공감대가 있을 것이다. 그 공감은 공통 요소도 있지만 개별적인 요소도 있을 수 있다. 왜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공감할까. 자기 자신의 눈높이에서 해석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의 존재론적 가치, 제작 의도와는 관계없이 작품자체가 갖고 있는 가치가 있다. 영화 작품도 탄생하는 순간 살아있는 유기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더라도 감흥이 달라진다.

영화 ‘기생충’에 쏟아지는 관심이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명암이 드리워진 우리 삶의 민낯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생충이라고 불리는 하류층의 반란, 그것은 결국 시대에 맞서는 저항정신으로 이어진다. 역사는 기억한다. 인간의 존엄을 헤치게 되어 그것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소극적인 저항에서 점차 거대한 변혁의 물결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소용돌이치는 혼란 속에서 세상은 다시 재편성 되지만 우리 삶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고 새로운 기득권층과 그것에 기생하는 새로운 기생충을 양산하는 시스템 또한 변함이 없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인간성 상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변화하지만 변함이 없는 것이 있다. 우리 역사가 기억하는 복본의 역사가 그것이다. 뇌가 기억하는 정보, 즉 신피질의 정보가 아니라 뇌간 깊숙이 존재하는 근원의 정보, 그것을 본성이라고도 하고 신성이라고도 한다. 그것을 일깨울 때 근원으로의 회귀가 가능해 진다.

역사를 보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국가 위기상황을 겨우 모면한 조선, 하지만 변화의 물결을 기득권층이 외면하고 그들의 아성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오랜 붕당정치와 이념대립을 통해 백성들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고, 잠시 영·정조시대의 르네상스기가 무너지자마자 붕당정치의 폐해를 겪었음에도 최악의 악수를 둔 것이 특정 가문을 중심으로 한 세도정치, 그 결과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던 조선의 민중은 횃불을 들고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민란의 역사이다. 이미 이때 조선왕조는 문을 닫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꺼져가던 불씨를 지피려고 했던 흥선대원군, 그의 개혁정책마저도 민심을 이반하고 소수의 엘리트 계층이 다시 한 번 개혁의 기치를 들어 올렸지만 3일 천하로 끝났으며, 결국 조선의 민중은 스스로 들고 일어났다. 그들 대부분은 이름 없는 이 땅의 농부들이었고 그들이 아니었다면 조선은 일찌감치 멸망했을 것이다. 경천애인과 홍익인간에 바탕을 둔 우리 정신은 인내천 사상으로 이어졌으며 그들이 이 땅의 주인이며 하늘임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기득권층은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외세를 끌어들이고 만다. 그로 인해 이 땅에서 외세가 판을 치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제 조선의 민중을 지켜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 또 그렇게 그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 뒤에도 이름 모를 민중들이 외세에 대항하고 잃어버린 주권을 회복하고자 의병이 되었고, 그 후손들이 삼일항쟁의 주역이 되었다. 삼일항쟁의 결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독립군과 광복군이 곳곳에서 일제와 맞서 싸웠으며, 결국 광복이 되었다. 여기에는 역할만 다를 뿐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다.

그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저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과 희망 때문이었을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힘의 논리나 권력과 부의 존재가 아닌, 성별이나 연령의 차이와 지식의 유무가 아닌, 결론적으로 잘나고 못나고의 차이가 아닌, 모든 인간은 하늘의 성품을 갖고 있고, 이 땅의 주인이기에 인간의 존엄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믿음이 지켜지는 세상, 바로 그러한 세상에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며, 또 그들의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그러한 세상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이제 영화 ‘기생충’이 묻는다. “한 집(나라)에서 더불어 잘 사면 안 되나?”

우리가 대답할 차례이다. “역할만 다를 뿐 모든 인간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되고,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다고, 또한 인간의 존엄이 지켜지는 역사, 그것은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 세상의 존재가 모두 하나에서 비롯되었음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그 동안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해 왔던 약탈과 파괴의 역사, 이는 곧 인간성 상실의 역사이다. 무엇이 진정한 문명이고 야만인지를 우리는 자각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문명은 인간성 회복에 있다. 홍익의 본성을 깨워 원래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며, 이것이 바로 영화 ‘기생충’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메시지일 것이다.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

12
0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