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우리에겐 별을 노래하는 시와 노래들이 꽤나 많은 것 같다. 언제부터 우리는 별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하늘을 품고 별을 사랑한 우리 조상들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에서부터 우주를 생각했다. 그만큼 우리 조상들은 하늘과 가깝게 지냈다. 임금은 하늘의 이치를 깨치기에 힘썼고, 천문학자들은 하늘을 관찰하면서 절기를 알고 달력을 만들었으며, 백성들은 수시로 칠성님에게 복을 빌고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냈다. 수많은 별들 중에서 우리 눈에 띄는 북극성과 북두칠성, 북극성은 길 잃은 사람에게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고 북두칠성은 국자와 같은 모양으로 우리에게 친근감을 준다. 특히 북두칠성은 민간신앙인 칠성신앙으로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사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칠성각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북두칠성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대변해 주기도 한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한민족은 유난히 하늘을 숭배하였고, 하늘을 닮으려고 노력하였으며, 심지어 하늘이고자 했다. 누구나 하늘의 성품을 타고 났으며 그것이 발현된 인간상이 바로 ‘홍익인간’이었다. 하늘이고자 하여 하늘 옷을 즐겨 입었으니 그것이 바로 흰옷을 즐겨 입었다 하여 ‘백의민족’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되었다.

선사 시대의 암각화와 고인돌에 새긴 별자리에서부터 시작된 별의 기록은 오랜 역사를 거쳐 천문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이어진다. 조선 세종 대에 이르러 정점에 오른 우리 천문과학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할 정도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그 찬란했던 우리의 과학사는 그저 옛것으로만 남게 되었고, 서양의 과학이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오리온자리니, 페가수스자리니 하는 서양의 별자리에 얽힌 전설은 술술 꿰면서도 우리의 28수 별자리가 생소한 것이 현실이다.

우리 별자리, 우리 천문학을 새롭게 바라보기 위한 노력과 과정이 필요하다. 고구려 시대 무덤 천장에 빛나는 북두칠성은 드러누워서 보면 하늘의 별들이 보이도록 천장에다 별들을 그려 놓은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어서 가는 곳이 바로 하늘나라이기 때문이다. 천문 강국의 유산인 옛 천문대, 수많은 기록으로 남아 있는 신비로운 천문 현상, 자랑스러운 우리의 천문학자 이야기 등 아름답고 흥미로운 별자리 이야기가 우리 역사에는 살아 숨 쉬고 있다.

따라서 고대 천문기록을 통해 상대적으로 남아있는 기록이 많지 않아 그 검증이 쉽지 않은 고대 역사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역사 해석의 객관적 자료로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필요하다. 특히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 기록된 일식 기록을 분석해 고구려의 일식 관측지역을 추정해 보는 것은 고구려 연구에 크나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천문학은 지금도 여전히 전문가 집단이 하는 고도의 집약적인 지식과 기술이 필요한 학문 분야이다. 고대에는 현대보다 열악했기 때문에 개인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문관측을 했다는 것은 오늘날 국가와 같은 조직체계를 갖추고 왕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천문관측이 시행되었을 것이다.

천문 또는 자연현상을 지속적으로 관측하려면 정착 환경에서 진일보된 농경사회의 면모를 갖추고 관측 정보를 활용하여 생활수준의 향상을 가져 왔을 것이다.

최근 고구려 평양의 위치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고 장수태왕이 천도했다는 고구려 평양성이 지금의 북한 평양이 아니라 요동지역이라는 연구 결과는 이러한 천문기록에 관한 연구가 뒷받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역사연구는 다양한 학제 간의 융합 연구가 필요하다.

학계에서 알려진 바와 같이 일식 기록은 관측자의 위치와 시각을 알려 주는 객관적인 사료라는 점에 주목하여 「고구려 본기」에 기록된 일식 기록을 분석한 결과, 그 관측 최적지가 요동지역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주는 의미는 비록 일식 관측의 최적지가 당시 고구려의 수도라고 단정할 수 없어도 고구려와 중국의 여러 일식 기록은 고구려의 일식 관측이 요동뿐만 아니라 요서나 산둥반도까지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역사 해석에 활용할 객관적인 사료인 천문관측 기록을 분석하고 현대의 첨단 기술을 통해 천체운행의 원리와 법칙 등을 통해 과학적 계산으로 검증함으로써 고대 천문현상이 발생한 시기나 관측지역을 확인하는 기법은 앞으로 역사연구의 주요한 연구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역사연구를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계기도 될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서에 기록된 정치, 사회 현상은 주로 문헌 기록을 통해 검증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관의 주관이 개입되거나 왜곡될 소지가 많으나 천문현상은 천체물리 법칙에 따라 나타나기 때문에 천체역학 계산을 이용하면 과거의 사실 존재 여부를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일식은 관측의 위치와 시기를 가장 명확하게 알려주는 대표적인 천문현상이며, 일식 중에서도 개기일식은 관측지역이 특정지역으로 좁혀질 수 있어 장소의 특정화가 가능해 진다.

따라서 고대 일식 기록을 자세히 연구하여 그 기록의 실현 여부와 식분, 즉 지구가 달의 그림자에 가려 해가 이지러져 보이는 정도를 재차 검증함으로써 당시 일시 기록의 충분조건인 관측지역을 계산할 수 있다.

특히 「고구려본기」178년 11월 27일의 일식은 분석결과, 지금의 요서지역에서 관측이 가능했다는데, 이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고구려의 관측 영역이 요서나 산둥반도까지 미쳤을 가능성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동안 고구려의 초기 건국지는 어디였고, 도읍지가 시기별로 어떻게 이동했는지, 지금의 북한 평양으로는 언제 이동한 것인지, 광개토태왕 당시의 고구려의 광활한 영토는 어디까지 미쳤는지, 장수태왕이 천도한 평양성은 지금의 어디였는지 등을 밝히고자 하는 학계의 많은 노력이 있었으며, 그 노력의 결과는 이러한 천문관측 기록들이 뒷받침해 준다. 이렇듯 자랑스러운 우리 천문관측의 역사가 찬란했지만 기억너머로 사라진 우리 고대사를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고대 천문과 자연현상에 관한 많은 기록을 분석하고 과학적인 계산방법을 활용하여 역사해석의 주요한 근거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인돌에 새겨진 별자리와 인류 최초의 석각 천문도이었던 ‘천상열차분야지도’를 통해 우리 민족이 오래 전부터 하늘을 바라보고 천문을 연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코페르니쿠스보다 100년 빨리 지동설을 주장했던 세종시대 천문학자인 이순지를 통해 우리의 시간을 찾아낸 것이 얼마나 큰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밤에 하늘에 떠있는 아름다운 별자리를 보면서 오리온, 카시오페아 등 서양식 별자리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자미원이니 태미원이니 하는 우리의 별자리 이름을 생각해 보고 견우와 직녀 이야기 같은 우리 식의 별자리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도 우리 역사에 흥미를 갖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