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로 지켜낸 우리말과 글
‘말모이’로 지켜낸 우리말과 글
  • 민성욱 박사
  • k-spirit@naver.com
  • 승인 2019.02.2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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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성욱 박사

“한 사람의 열 발자국보다 열 사람의 한 발자국이 더 낫다.”

대일항쟁시대, 우리 말과 글을 지키고자 하였던 스토리를 담은 영화 ‘말모이’에 등장하는 말이다. 이 말의 뜻은 결국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는 사람이며, 그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그 동안 ‘암살’, ‘밀정’ 등 대일항쟁을 주제로 만든 영화들이 많이 있었다. 대일항쟁기의 역사는 아프고 슬픈 역사이기에 영화 소재로는 자주 등장하였지만 영화로 만들어지면 흥행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다양한 관점과 새로운 해석으로 대일항쟁의 역사를 다시 쓴 영화들은 많은 울림들을 주기에 충분했고 흥행까지 하게 되었다.

하지만 영화 ‘말모이’는 기존 영화와는 다른 점이 있다. 주인공이 인물이 아니라 우리말과 글이다. 말은 마음의 알맹이며, 글은 말을 기록하기 위하여 긋는 것을 의미하고 긋다가 그 어원이 된다. 어원적으로 보면 글과 그림은 같은 말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말을 모은다는 의미이자 영화 제목이기도 한 ‘말모이’는 실제 주시경 선생이 1911년부터 만들기 시작했다고 알려진 최초 국어사전의 원고를 일컫는 말이며, “사람이 모이면 말이 모이고, 말이 모이면 뜻이 모인다.”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세상을 바꾼다.”는 의미이다. 말과 글은 정신이자 혼이다. 그래서 대일항쟁시기 일본은 조선을 영구히 지배하고자 우리말과 글을 못 쓰게 했다. 영화 ‘말모이’의 모티브가 된 사건은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일본은 1930년대 후반부터 조선을 영구히 지배하고자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하여 한국인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려 했다. 심지어 이름까지 창씨개명이라는 미명하에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할 것을 요구하였고, 조선어로 만든 신문은 폐간하였으며, 학교에서도 일본어로만 쓰게 하였다. 일본 왕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내용의 ‘황국신민서사’를 만들어 제창하게 하였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인을 참전시키고 전쟁 물자를 더욱 더 악랄한 방법으로 약탈해 갔다. 그야말로 민족의 수난과 약탈의 시기였다.

이러한 시기에 1921년에 창립된 조선어학회는 민족문화의 수호인 사전을 만들기 시작하여 사전 편찬의 바탕이 되는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 ‘조선어 표준말 모음(1936)’,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1940)’ 등을 제정하는 등 한글을 연구 및 정리하였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자 사전 편찬을 서두르게 되었고, 1942년 사전 편찬을 앞두고 사건이 하나 터지는데, 일본 경찰이 기차 칸에서 조선어로 말하던 여학생을 잡아 취조하는 과정에서 조선어학회에 가담한 인물이 나오게 되었고 그 인물로 인해 민족의식이 싹트게 되었음을 안 그들은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보고 학회에 가담한 인물들을 민족주의자로 몰아 투옥시킨 사건이 바로 ‘조선어학회 사건’이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사전 편찬을 위한 원고들은 압수되었고 결국 사전 편찬은 무산되었다. ‘치안유지법’ 중 내란죄 죄목으로 33명이 체포되어 16명은 수감되고, 12명은 기소유예 처리를 받게 되었으며, 수감된 16명 중 2명은 옥사하였고, 나머지도 1945년 광복이 되어서야 겨우 풀려났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중단된 민족의 숙원인 한글 사전 편찬은 광복 후 1947년 ‘조선말 큰 사전’ 첫 권이 나오고, 1957년 드디어 ‘큰 사전’ 6권이 완간됨으로써 국어의 기틀이 이때에 바로 잡혔다.

한글은 수많은 글 중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라고 한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지켜낸 세계기록유산 ‘훈민정음 해례본’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이 입증된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인지 조선의 자주독립을 주장하였던 미국인 헐버트의 한글 사랑은 지극하였다고 한다. 이렇듯 우리 민족의 고유한 말과 글이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목숨 걸고 맞서 싸워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고자 하였던 많은 분들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과 글이 있기에 우리는 역사적인 존재이며, 특히 우리나라는 수많은 기록의 역사를 가질 수 있었다.

묘향산 석벽에 새겨진 천부경, 그것으로부터 우리 정신의 근원을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기록의 역사는 기록유산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역사는 결국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와 땀의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1443년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셨고, 3년이 지난 1446년에 ‘훈민정음’을 반포하셨다. 이러한 ‘훈민정음’은 한말을 거쳐 대일항쟁시기에서는 일본어가 국어가 되었기에 우리글을‘한글’ 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말의 ‘한’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한’은 크다, 많다, 높다, 하나다, 근원, 하늘의 뜻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한글’은 ‘겨레의 큰 글’이라는 뜻이 된다.

국어학자 주시경 선생은 “문명 강대국은 모두 자국의 문자를 사용한다.”는 깨달음을 얻고 국어 연구를 시작하였다. 표기와 띄어쓰기가 통일되지 않은 말과 글은 배워도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1911년 주시경 선생은 제자들과 함께 사전 편찬 작업을 시작하였다. 하지만 1914년 주시경 선생이 세상을 떠나시고 일제의 탄압이 겹치게 되면서 사전 편찬 작업은 약 15년이 지나서야 재개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조선어학회 사건’과 그것을 소재로 만든 영화 ‘말모이’를 통해 역사적 사건 전면부에 나서지는 않았던 이름 없는 수많은 민중들이 어떻게 역사의 거대한 흐름에 끼어들어 역사를 바꾸어 놓았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 역사에서 근대 이후 1894년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외세(일본)를 몰아내고 주권을 되찾고자 했던 수많은 농민들이 의병들이 되었고, 그들은 다시 1919년 기미년 삼일항쟁의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수많은 민중이 되어 돌아 왔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의 원동력이 되었다. 1930년 이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민족정신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우리말과 글을 못 쓰게 하였으나 말과 글은 민족의 정신이자 혼으로 생각하였던 당시 조선인들은 일제의 온갖 탄압과 위협 속에서도 끝까지 지켜내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아름다운 우리말과 글을 통해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지켜낸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글로 인정받고 있고, 이들의 노력으로 인해 우리는 전 세계에서 20개 나라밖에 없는 자국어 사전을 갖고 있는 나라가 되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역사이고 소중한 우리 한글인가.

삼일항쟁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이 땅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모든 분들과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우리의 고유한 정신과 빛나는 얼을 위대한 유산으로 물려주신 분들을 잊지 말고 오래 동안 기억해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기억이 우리의 고유함을 이어주기 때문이다.

“말은 민족의 정신이요, 글은 민족의 생명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또 신분이나 지식 유무에 관계없이 조선인이기에 ‘말모이’에 마음을 모아 동참하였던 수많은 민중들의 모습을 통해서 왜 말이 민족의 정신인지, 사전을 편찬하는 것이 왜 나라를 지키는 일인지 우리는 이해하게 된다. 또한 역사는 위대한 인물의 열 걸음으로부터 창조되는 것이 아니고 지극히 평범한 수많은 사람들의 한 걸음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역사를 바꿀 선택을 할 수 있다.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인이기에 갖는 정서와 모습은 분명 존재한다. 그것을 두고 세계인들은 달리 평가할 것이다. 글로벌시대에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인이 갖고 있는 고유함이 한국인들의 저력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고 우리말과 글을 아끼고 사랑해야 될 것이다.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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