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서체 '궁체'는 언제 생겼을까
한글 서체 '궁체'는 언제 생겼을까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19.04.25 13: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 4월 30일~ 6월 30일 ‘조선시대 한글서체의 아름다움’ 전
권제(權踶)·정인지(鄭麟趾)·안지(安止) 등 |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1445년(세종 27) | 36.0×22.4 | 복제품 |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한글 창제 당시의 정사각형 서체와 좌우 대칭의 구조를 가지며, 붓끝을 가운데 모으는 필획에서 약간의 필사가 가미된 훈민정음체이다. 전반적으로 자형이 넉넉하고 근엄하고 단정한 느낌을 준다. [사진제공=문화재청]
권제(權踶)·정인지(鄭麟趾)·안지(安止) 등 |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1445년(세종 27) | 36.0×22.4 | 복제품 |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한글 창제 당시의 정사각형 서체와 좌우 대칭의 구조를 가지며, 붓끝을 가운데 모으는 필획에서 약간의 필사가 가미된 훈민정음체이다. 전반적으로 자형이 넉넉하고 근엄하고 단정한 느낌을 준다. [사진제공=문화재청]

인쇄문화가 발달한 조선은 서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한글 창제이후 한글 서체는 어떻게 발전해왔을까.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는 당시 한글 서체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창제 당시 한글의 형태는 대개 필기도구인 붓으로 쓰기 어려운 기하학 모양을 띠었다. 조선 전기 서체는 정사각형에 가까운 틀 속에서 동일한 두께와 각진 획의 모습을 보이며, 필기보다는 인쇄를 전제하여 흔히 판본체(板本體) 또는 판각체(板刻體)라고 부른다.

조선 중기 한글 서체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궁체(宮體)를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된다. 궁체의 특징은 보물 제1947호 ‘숙명신한첩’이 잘 보여준다. 조선 초기 판본이나 활자의 기본 형태에 붓으로 쓴 느낌이 가미하여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 전형(典型)이 만들어졌다. 궁체는 주로 왕실의 필사본 서적에서 빼어난 모습을 볼 수 있고, 붓의 꺾임과 부드러운 흐름을 조화롭게 구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숙명신한첩(淑明宸翰帖) | 1652년(효종 3)~1659년(효종 10) | 50.0×39.0 | 보물 제1947호 | 복제품 | 국립청주박물관.'숙명신한첩'은 효종(孝宗:1619~1659)의 둘째 딸인 숙명공주가 궁궐에서 출가한 후 40여 년간 왕과 왕비, 대비 등과 주고받은 한글로 쓴 친필 문안편지를 모은 서첩이다. 효종의 글씨는 행간을 많이 띠우지 않으며 세로줄은 맞추었지만 가로줄은 맞추지 않았고, 행의 중심축이 글자의 가운데에 있다. 효종의 글씨에서는 궁체 흘림의 형태도 나타난다. [사진제공=문화재청]
숙명신한첩(淑明宸翰帖) | 1652년(효종 3)~1659년(효종 10) | 50.0×39.0 | 보물 제1947호 | 복제품 | 국립청주박물관.'숙명신한첩'은 효종(孝宗:1619~1659)의 둘째 딸인 숙명공주가 궁궐에서 출가한 후 40여 년간 왕과 왕비, 대비 등과 주고받은 한글로 쓴 친필 문안편지를 모은 서첩이다. 효종의 글씨는 행간을 많이 띠우지 않으며 세로줄은 맞추었지만 가로줄은 맞추지 않았고, 행의 중심축이 글자의 가운데에 있다. 효종의 글씨에서는 궁체 흘림의 형태도 나타난다. [사진제공=문화재청]

한글 서체는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국문학의 융성으로 필사가 늘어나던 영·정조대를 거치며 정제되었고, 이후 순조부터 고종 대에 이르기까지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순조비인 순원왕후(純元王后), 순조의 셋째 딸 덕온공주의 글씨와 명성황후의 편지글은 조선왕실의 한글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료들이다. 이 밖에도 사대부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와 궁체로 거침없이 쓴 글, 그리고 민간에서 베껴 쓴 필사본 소설들에서 획의 변화와 강하고 약한 기운이 교차하는 선들을 볼 수 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소장 류근식)는 오는 30일부터 6월 30일까지 세종대왕역사문화관 기획전시실에서 ‘조선시대 한글서체의 아름다움’ 상반기 기획전을 개최한다.

명성황후 한글 간찰(明成皇后諺簡) | 1890년대 | 22.5×12.4 | 국립고궁박물관.명성황후는 여흥민씨 집안의 일원들과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흘림체로 필세가 속도감이 있으면서도 붓놀림이 유려하고 침착하여 궁체 흘림의 세련미를 보여준다. 줄을 맞추는 데 신경 쓰지 않고 거침없이 쓴 필체로 경쾌하고 율동미 있게 썼다. [사진제공=문화재청]
명성황후 한글 간찰(明成皇后諺簡) | 1890년대 | 22.5×12.4 | 국립고궁박물관.명성황후는 여흥민씨 집안의 일원들과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흘림체로 필세가 속도감이 있으면서도 붓놀림이 유려하고 침착하여 궁체 흘림의 세련미를 보여준다. 줄을 맞추는 데 신경 쓰지 않고 거침없이 쓴 필체로 경쾌하고 율동미 있게 썼다. [사진제공=문화재청]

이번 전시는 세종대왕 탄신 622돌(5월15일)을 기념하여 기획한 것으로, 한글 서체의 변화를 볼 수 있도록 조선 전기·중기·후기로 나누어 시기별 대표 유물을 선보인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이번 전시를 찾는 사람들이 조선 시대 한글 서체의 원류를 찾아보고 현대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의미를 되새겨 보았으면 한다.”고 밝혔다.

1
0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