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지원사업 ‘서울시 관광진흥을 위한 역사문화체험 프로그램’으로 23일 국립한글박물관을 방문하였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재학생 중에 역사에 관심이 있는 나를 비롯해 심은서, 이주호 친구도 함께 해서 더욱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 한글박물관 답사에 참가한 학생들이 해설을 듣고 있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의 훈민정음은 1443년 세종대왕이 만들어 3년 뒤인 1446년 집현전 학자들과 힘을 모아 해설서를 반포하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과학적인 언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지만 한글이 나라의 공식 문자로 인정받고 널리 알려지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훈민정음이 반포되자 대부분의 사대부들은 이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중 최만리는 한글 창제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려 세종의 노여움을 사 의금부에 갇히고 결국에는 관직을 떠나게 된다. 그 후에도 숙종이 한글로 된 유지(有旨)를 승정원에 내려 이를 한문으로 번역하게 하자 유명견이 반대 상소를 올려 결국 한글 유지는 삭제되고 말았다. 이렇듯 초반에 외면을 당했던 훈민정음은 조선 후기에서 들어서 국가 공식 문자로 인정받게 되고 점차 일상적인 문자로 자리 잡으면서 그 가치가 빛을 보기 시작하였다.

▲ 한글의 역사가 궁금한 학생들이 해설을 듣고 있다.

하지만 1910년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게 된다. 일본은 민족말살정책을 추진하면서 한국말 사용을 금하였고 수많은 서적을 없애는 등 우리나라의 고유한 전통과 역사, 민족정신까지 말살해버린다. 또한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을 일본으로 빼돌리기까지 하였다.  이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  많은 분들의 희생정신이 돋보였다. 특히 간송 전형필의 활약이 대단하였다. 학교에서 간송 전형필에 관해 배운 적이 있었는데 훌륭한 업적을 남기신 분이라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다.  그는 상속 받은 어마어마한 유산을 바쳐서 일본으로 빠져나가는 문화재들을 사들여 지켜내는 데 공을 세우신 분이다. 특히 훈민정음 해례본을 얻기 위해 기와집 10채의 가격을 주고 사면서 "훈민정음 해례본은 기와집 10채의 가치가 있는 보물이다"라고 하며 소중한 문화를 지켜내셨다. 또 6.25전쟁 당시 해례본을 품 안에 넣고 피난을 갔을 정도로 그 누구보다 훈민정음의 가치를 알아보셨다. 간송 전형필을 비롯한 많은 분들 덕분에 현재 우리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글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이지현, 심은서, 이주호 학생이 국립한글박물관 역사문화체험을 함께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확산하기 위해 쉽게 익혀 편히 쓸 수 있는 언해사업을 펼쳤다.  무엇보다 백성들을 위해서 만든 문자인 만큼 유학경전이나 농업, 의학, 병서 등을 훈민정음으로 바꾸어 써서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을 주고자하였다. 특히 충성, 효도, 공경 등에서 뛰어난 사람들의 행적을 다룬 도덕서인 '삼강행실도'를 언해하여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도 쉽게 익혀 책에 기록된 자들의 올바른 자세를 본받을 수 있게 하였다. 또한 한글을 익힌 백성들은 직접 책을 집필하기도 하였는데 임신과 출산을 다룬 ‘언해태산집요’나 음식조리법을 다룬 ‘음식디미방’, 가정의 살림 지침서인 ‘규합총서’ 등을 썼다. 세종대왕이 백성들이 문자를 몰라 어려움을 겪는 생활을 딱하게 여긴 덕분에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지 못했던 백성들은 일상생활까지도 기록할 수 있는 문자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글로 기록되어 있는 유명 서적들을 살펴볼 수 있다. 한글로 쓰인 최초의 기록인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 해례본보다 1년이나 앞서 쓰여졌으며 그 내용에는 외세에 흔들리지 않는 조선왕실을 뿌리 깊은 나무에 비유하여 조선왕조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찬양하고 후대 왕들에게 백성을 잘 다스리라는 조언이 담겨있다. 

▲ 국립한글박물관을 답사한 학생들이 야외에서 퀴즈를 풀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바로 편지였다. 정조가 큰외숙모에게 보낸 문안편지에서는 유일하게 한글로 ‘뒤죽박죽’이라는 단어가 적혀있다. 그리고 이응태의 무덤에서 그의 아내인 원이 엄마가 남편에게 한글로 쓴 편지가 발견되었다. 또한 원이가 입었던 옷, 자신의 치마, 머리카락으로 만든 짚신도 같이 발견되었다. 남편의 병이 갈수록 위독해지자 쾌유를 비는 아내의 간절한 내용이 담겨 있으며 구구절절한 사연을 다 담기에는 한지가 귀했기 때문에 여백이 남지 않게 채워서 썼다.

 또한 가장 오래된 무예서인 ‘무예제보’, 세조가 쓴 최초의 불경언해서인 ‘월인석보’, 최세진이 지은 한자 학습서인 ‘훈몽자회’ 등 한글로 작성한 많은 서적들이 전시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글을 크게 대중화시킨 ‘딱지본소설’, 최초의 국어사전의 원본인 ‘말모이 사전’, 최초의 국어 교과서인 ‘바둑이와 철수’ 등을 통해 한글이 점차 일상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잡은 것까지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뜻을 알 수 없는 신조어나 줄임말이 나오면서 올바른 언어생활을 망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또 문맹퇴치에  기여를  많이 한 개인이나 단체에게 주는 상 이름이 바로 훈민정음을 탄생시킨 주인공의 이름을 따서 만든 세종대왕상이다.

한글은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 매우 적합한 문자이며 목구멍, 혀, 입술의 움직임을 따서 만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문자이다. 우리는 한글의 우수성을 인식하고 보존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더 나아가 한글의 위대함을 전 세계로 알리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