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바뀔 때 세상이 바뀐다
사람이 바뀔 때 세상이 바뀐다
  • 민성욱 국학박사
  • k-spirit@naver.com
  • 승인 2018.05.23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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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성욱 국학박사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곳에서 석가는 아무 말 없이 연꽃을 들어 올려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람들은 석가의 얼굴 표정을 보면서 무슨 의미인지를 헤아리려고 했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은 연꽃을, 또 다른 사람들은 가리키는 손을 바라보며 의아해했다. 그런데 좌중에 가섭이라는 제자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화답하였다. 이때 부처가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전하고자 했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꽃을 피우지만, 꽃과 잎에는 결코 진흙을 묻히지 않은 채 밝게 피어난다. 사람들도 세상이라는 척박한 땅에 뿌리 내리고 살고 있더라도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정말 중요한 것은 고귀한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과 본성을 깨워 신성이 발현될 수 있도록 한다면 연꽃처럼 아름답고 밝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민족의 고유한 경전인『삼일신고』에 나오는 "자성구자 강재이뇌(自性求子 降在爾腦), 즉 스스로 본성을 찾아보면 너의 뇌 속에 이미 신성이 내려와 있을 것이다." 와 상통하는 의미다. 그래서 고귀하고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석가탄신일 등으로 불리던 명칭을 올해부터 ‘부처님 오신 날’로 변경하였다. 이것은 특정한 성인의 탄신일을 기념하기보다 부처와 같이 지혜와 깨달음을 얻기 바라는 염원에서 비롯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서기전 642년 음력 4월 8일에 석가가 탄생하였고 누구나 부처처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 고통스러운 중생들에게 광명을 주고자 했던 마음이 오늘에 되살아나야 함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고대국가가 형성될 때 불교를 도입하였다. 당시 누구나 부처처럼 깨달음을 얻으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백성이 희망을 갖게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왕이 곧 부처라는 인식을 심어줘 백성이 왕을 절대적인 신앙심으로 떠 받들게 하여 왕권강화를 통한 중앙집권 형태의 지배구조를 완성하였을 것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고대국가 형성의 사상적 기초가 되어 주었던 불교를 이러한 이유로 수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유체계만큼은 고유한 사유체계를 바탕으로 하였기에 본존불을 모신 전각을 한웅전의 의미를 갖고 있는 대웅전이라고 하였고, 사찰의 높은 곳에는 산신각, 삼성각, 칠성각 등을 두어 전통 신앙의 뿌리를 남겨 놓았다.

고려 때는 불교가 국교로 되면서 부처의 나라가 되었다. 불교는 왕권강화와 국가발전이라는 목적을 갖고 온 국가가 불국정토를 꿈꾸었다. 하지만 불교가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되면서 부패하게 되고 백성들의 삶은 도탄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반대급부로 나왔던 것이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이었다.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였다. 철저하게 불교를 배척하고 억압하였다. 지금의 사찰이 산 속에 많이 있는 것은 국가권력을 피해 은닉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조선 제11대 왕 중종의 제2계비였던 문정왕후가 등장하면서 불교의 중흥이 도모되었다. 문정왕후는 조선의 측천무후, 또는 철의 여인이라고 불릴 만큼 카리스마가 강력했던 인물이었다. 중종 사후 인종을 거쳐 어린 아들 명종이 즉위하자 수렴청정 하여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로 승려 보우와 함께 불교의 중흥을 도모하였다. 문정왕후는 독실한 불자였다.

금강산에서 수도하던 승려 보우는 어느 날 불교를 이렇게 산속에만 은폐시켜 놓을 것이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래서 한양으로 올라가 문정왕후를 만나 억압된 불교를 중흥하고자 노력하였다. 조선 건국 이래 숭유억불정책으로 억압을 받았던 불교는 독실한 불자였던 문정왕후를 만나면서 불교중흥의 기회를 맞게 된다.

그 과정에서 율곡 이이와 같은 당대의 대학자와 유생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다. 하지만 문정대비는 아랑곳 하지 않고, 폐지되었던 선종과 교종을 부활하고 승과를 다시 시행하였다. 이때 배출된 인물이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큰 전과를 올린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이다.

한편 율곡 이이는 문정대비 사후에 ‘논요승보우소’를 올려 귀양 보낼 것을 주장함에 따라 명종은 승려 보우를 제주도로 귀양 보냈다. 보우는 끝내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살해당하고 만다. 지난 시대에 대한 엄정한 반성과 개혁에 바탕을 둔 스스로의 불교 재건이 아닌 권력에 의존하여 중흥을 도모하고자 하였던 왕실불교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권력에 빌붙는 종교의 행태는 그것이 옛날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아 왠지 씁쓸해 진다.

승려 보우가 살해된 곳에는 연북정이라는 정자가 있는데, 정자 이름은 북(北)쪽을 사모[戀]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제주에서 북쪽에는 임금이 있는 한양을 의미하므로, 제주로 유배 온 유배객들이나 이곳에 부임한 지방관들이 임금을 그리워하는 장소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런 의미에서 연북정은 소외되고 격리된 선비들이 정신적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하지만 자신들의 이념인 성리학과 뜻이 같지 않다고 하여 당시 불교계를 대표하던 대승을 살해한 것은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일이다. 충이니 효니 하는 성리학의 이념도 결국은 사람이라야 추구할 수 있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인(仁)과 예(禮)를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자신들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잔인한 폭력을 가했던 조선 성리학의 배타성이 결국은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성리학의 배타적 이념이 가져다준 뼈아픈 결과로 인해 조선 500년 동안 백성들이 모진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이렇듯 이념이나 종교에 갇힐 것이 아니라 이념이나 종교도 사람이 창조한 것이므로 활용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구시대적인 관념에 얽매이기 보다는 서로 다른 이념이나 종교를 통해 배우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념이나 종교적 관념을 초월하여 하나 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중요할 것이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단군의 홍익정신이다. 이제 종교도, 정치도, 홍익종교, 홍익정치가 출현될 때가 아닌가. 국민이 주인이 되어 홍익정신의 기반 위에 종교도, 정치도 판단해야 될 것이다. 이념, 종교, 정치 자체가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사람이 바꿀 수 있고 사람이 바뀔 때 세상은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희망이고 그러한 사람이 희망이 될 때 세상은 아름답고 평화롭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 오신 날에 남북한 사찰이 공동 발원문을 채택했다. 연등은 가르침의 의미를 갖고 있고, 직접 등을 만들고 부처의 가르침을 새기고 깨달음을 얻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연등행사이다. 남북한의 화해 무드를 타고 통일의 염원이 이루어지는 날, 고려시대 때 전국적인 행사로 거행하였던 팔관회와 연등회를 다시 개최할 수 있기를 바란다.

21세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부처가 주는 역사적 의미는 깨달음의 실천과 상실한 자비를 복원하고 나눔을 통해 이념과 종교를 초월한 하나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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