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년 전 고조선 시대로 떠나는 시간여행
4000년 전 고조선 시대로 떠나는 시간여행
  • 민성욱 박사
  • k-spirit@naver.com
  • 승인 2018.08.2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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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민성욱 박사의 고조선과 고구려 유적지 중국답사3

중국답사 여행기 3일차 일정은 내몽고 지역 홍산후 유적지 – 홍산국가삼림공원 – 삼좌점 석성 유적지 – 이도정자 유적지 박물관 – 오한기 박물관 – 숙소인 오한국빈관(AOHAN STATE Guest House) 도착하는 것이었다. 3일차는 일출에 붉게 물든 홍산을 보기 위하여 새벽 4시에 출발할 예정이었다. 일출과 함께 보는 홍산은 붉은 산이라는 정체를 더 실감나게 해 줄 수 있었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새벽 2시30분 푹죽 소리에 깨어났다. 처음에는 도시 한 가운데에서 총격전이라도 일어난 줄 알았다. 우리 숙소인 호텔에서, 좀 떨어진 다른 호텔에서 시간차를 두고 폭죽이 터졌다. 알고 봤더니 결혼한 신랑과 신부를 축하하는 폭죽이었다고 한다. 정말 자다가 날벼락을 맞은 격이었다. 새벽에 홍산을 다녀 온 후 보니까 호텔입구에 세워진 차량 위에 폭죽의 흔적, 재들이 떨어져 있었다. 중국인들은 결혼식 때 악귀를 물리치고 경사스런 결혼을 축하하는 뜻에서 축포를 터뜨린다고 한다. 폭죽을 터뜨림으로써 액운을 없애고 복을 얻는다는 뜻으로 두 부부의 행복을 염원한다는 것이다. 중국인들의 폭죽 사랑은 대단하여 결혼식뿐만 아니라 개업식, 체육대회 등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폭죽을 터뜨린다고 한다. 폭죽의 요란한 소리를 냄으로써 불미스러운 일을 없애고, 복을 얻고자 하는 바람으로 폭죽을 ‘빵빵빵~!’ 터뜨린다. 폭죽도 날과 시간을 받아서 터뜨린다고 한다. 하여튼 새벽에 일어난 보람이 있으려면 서둘러서 홍산을 올라갔어야 했다.

홍산후 유적지.  내몽고자치구 적봉시에 있는 홍산문화 유적이다. [사진=민성욱]
홍산후 유적지. 내몽고자치구 적봉시에 있는 홍산문화 유적이다. [사진=민성욱]

중국 내몽고자치구 동남부에 있는 적봉(赤峰)시에는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붉은 색의 바위산이 있다. 이 산의 이름이 홍산(紅山)이며, 적봉이라는 도시의 이름도 여기에서 나왔다. 홍산문화는 1935년 홍산의 북쪽 기슭에 위치한 홍산후(紅山後) 유적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1954년 홍산문화라는 명칭이 사용된 후부터 지금까지 널리 통용되고 있다. 이 홍산문화는 만주지역 선사문화 기준점으로 B.C. 4000 ~ B.C. 3000년경 지금의 요령성 서부에 위치하였던 신석기시대의 고고문화를 가리키는 말이다. 홍산문화는 빗살무늬 토기와 적석총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로 중국의 중원문화와 구별되며 고조선 등 한반도 초기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홍산문화 연구는 1908년 일본의 인류학자 도리이 류조가 최초로 적봉시 일대에서 신석기 유적을 발견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하여튼 중원문화와 구별되고 우리 문화의 기원이 되는 홍산문화의 첫 발굴지역인 홍산후 유적지를 오르는데 가슴 벅찬 감동이 느껴졌다. 6000년의 시간을 압축해서 한 공간에서 보여주는 듯했다. 철 성분이 많아 산이 붉고 나무들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표지석에는 中國重点文物保护单位(중국중점문물보호단위), 红山遗址群(홍산유지군)으로 되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멋진 나무 한 그루 조차 보이지 않아 그저 보잘 것 없이 보이는 산에 불과해 보였다. 그런데 그 공간에 역사성이 부여되니 의미심장한 느낌이 들었다.

삼좌점 석성유적지.  적봉시 송산구 삼좌점촌에 있는 하가점하층문화 유적이다. [사진=민성욱]
삼좌점 석성유적지. 적봉시 송산구 삼좌점촌에 있는 하가점하층문화 유적이다. [사진=민성욱]

 

그렇게 찬란했던 역사와 문화의 현장이 지금은 왜 초라해 보이게 되었을까? 대표적인 요인 중 하나가 고대의 기후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고대의 기후가 한랭화를 거듭하면서 변화가 있었다. 기후변화는 꽃가루로 추측이 가능하다고 한다. 화분 분석을 통해 식물의 생태변화를 추측할 수 있는데 이것을 통해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인지 아니면 살 수 없는 곳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이렇듯 꽃가루는 기상에도 관계할 수 있다고 한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5~150㎛ 크기였던 꽃가루가 수분을 흡수하면서 원래 크기의 수천분의 1밖에 안 되는 나노미터(nm) 크기로 쪼개져 응결핵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즉 꽃가루가 구름을 만드는 기본 재료가 되며, 지표는 물론 대류권 상층까지 퍼져 나가 집중호우의 원인으로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꽃가루가 비를 만들고 비가 숲을 이루며 숲이 다시 꽃가루를 만드는 현상은 자연의 심오함을 보여준다.

홍산지역과 다르게 황하유역은 온도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문화가 지속적으로 융성할 수 있었다. 이렇게 문화가 융성하려면 연평균 강수량이 500mm이상이 되어야 한다. 연평균 강수량이 350mm 이하이면 문화가 쇠퇴할 수밖에 없다. 일종의 황폐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홍산후 유적지에서 20분만 더 가면 하가점촌이라고 한다. 일정이 있어 가볼 수는 없었지만 하가점하층문화의 그 첫 발굴지가 지척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이 되었다.

중국에서는 무덤 발굴을 하다가 중원문명이 아닌 다른 문명의 유물이 나오면 다시 묻는 경우가 허다하게 있다고 한다. 옛 고조선지역이 지금은 중국 땅이니 자유롭게 발굴을 할 수 없어 안타깝다.

백제와 고구려와 같은 부여계는 만주에서 비롯되었고, 신라계는 알타이 문화계통으로 몽고 서부지역인 적봉시의 홍산문화가 알타이문화로 형성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홍산문화는 동아시아문화로 분화되어 갔다. 1953년 북경대에서 발굴한 결과, 진한시기가 아니라 그 이전인 4~5천 년 전 문화가 존재한다고 인정하였다. 홍산국가삼림공원의 공원정비사업으로 인하여 홍산전(紅山前)유적은 보지 못하였다.

답사단의 일행 중 두 분이 지형학자이신데 한 분이 홍산 지역의 암석은 석영질의 변성암으로 6억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였다. 우리나라 지표면의 70%를 차지하는 화강암이 지각변동으로 큰 압력을 받으면 변성암이라고 하는 화강암질의 편마암 즉 화강편마암이 된다. 특히 정원석으로 사용하여 우리 주변에서 눈에 잘 띄는 암석이다. 조금 관심 있게 보면 검은색 줄무늬와 흰색 줄무늬가 무지개떡처럼 반복되어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몽고인 400만, 조선족 40만, 소수민족이 중국 인구 12억 중 1억이 안된다고 한다. 이러한 소수 민족에게도 고유한 문화가 있고, 전 인류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사유체계, 또는 나라마다 민족마다 고유한 사유체계가 존재하는데, 이것이 서로 영향을 미치고 영향을 받는다. 그것이 바로 문화다.

홍산후 유적은 기껏해야 진한시기는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지만 홍산전 유적 발굴로 연대가 상당히 올라갔다. 호텔로 들어오는 길에 아쉬움을 달래기 위하여 저 멀리 보이는 홍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동정자 유적지 박물관.  적봉시 이동정자촌 소재 하가점하층문화 유적. [사진=민성욱]
이동정자 유적지 박물관. 적봉시 이동정자촌 소재 하가점하층문화 유적. [사진=민성욱]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하가점하층문화 대표 유적인 석성 유적이 있는 삼좌점촌으로 이동하였다. 삼좌점석성 유적지 입구에 댐이 있다. 이 댐 공사를 하다가 발견된 곳이 삼좌점 석성 유적지이었다.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 츠펑(赤峰)시 삼좌점(三座店) 석성(石城), 댐 정상에 올라 경사면을 내려다보자 돌로 쌓은 성벽과 원형의 집터가 여럿 보였다. 절벽을 자연 방어선 삼아 조성된 초기 청동기시대 마을 유적이었다.

기원전 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삼좌점 석성의 축조 집단이 누구인가를 놓고 아직도 학계에서는 논쟁이 끝나지 않았지만 기록이나 고고학적 발굴 성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보면 어떤 집단인지 추정은 가능할 것으로 본다.

유적지 입구 쪽에 암각화가 새겨져 있는 바위들을 여러 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중 유난히 특이한 암각화가 새겨진 바위가 있었는데, 우하량 유적지에서 발견한 타원형 제단, 그 제단의 각도와 유사하였다. 즉 동지의 일출방향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고 한다. 즉 그 옛날 고조선 시대에 지금의 삼좌점촌에 석성을 쌓고 일정한 취락지구를 유지하며 살았던 사람들, 유물의 연대를 측정하면 하가점하층문화에 해당한다. 하가점하층문화는 기원전 24세기 전후부터 생성된 청동기 문화로 당시 만주지역에 집단체제와 조직화된 면모를 갖추고 있었던 집단은 고조선뿐이다. 특히 새해 첫날을 관측하고 그 날에 다 같이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집단은 분명 지금의 국가와 같은 체제를 갖추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홍산조신상(흥륭와문화시기 흙으로 만든 남신상), 오한기 박물관 소장. [사진=민성욱]
홍산조신상(흥륭와문화시기 흙으로 만든 남신상), 오한기 박물관 소장. [사진=민성욱]

 

지금으로부터 4000년 전 성터, 취락지구뿐만 아니라 성과 성 사이의 경계가 되는 성곽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신기할 따름이다. 또한 고구려 석성의 특징인 치의 모습도 확연하게 드러나 있다. 치(雉·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관찰하거나 막기 위한 시설)는 고구려 산성의 특징으로 중국 중원문화와는 다르다. 따라서 삼좌점 석성의 치가 고구려 석성으로 승계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세계적인 과학자이자 저술가로 꼽히는 리처드의 도킨스의 대표작 『이기적 유전자』. 진화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책으로, 다윈의 '적자생존과 자연 선택'이라는 개념을 유전자 단위로 바라보며 진화를 설명한다. 다윈주의 진화론과 자연선택을 기본 개념으로 독특한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저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생존 기계'이며, 자기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이기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주요 쟁점들은 물론, 다양한 현대 연구 이론들과 실험들을 함께 보여준다. 특히 유전의 영역을 생명의 본질적인 문제에서 인간 문화로까지 확장한 문화 유전론을 제시하고 있다. 문화인류학적 기반 위에 고고학과 문헌연구를 보완하여 옛 역사와 문화를 오늘에 되살리는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물론 기후변화 등도 잘 살펴보아야 할 분야이다. 온도에 따른 질병은 치명적이고 에너지 문제도 심각하다.

고고학자인 답사단 단장은 고고학은 영(0)으로 출발해야 되고, 기하학의 피타고라스의 정리처럼 직각삼각형 중 두 변의 길이를 알면 나머지 한 변의 길이를 알 수 있는 것처럼 오래된 역사일수록 무조건 주장하기 보다는 구조적으로 하나하나 퍼즐 맞추듯 맞춰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이중으로 구성된 원형 형태의 집터, 창고 같은 구덩이, 성곽과 치 등 분명 4000년 전 그곳에는 고도의 문명을 갖고 있었던 집단이 존재했음에는 틀림이 없다. 그 문명을 중화문명과는 구분해서 요하문명이라고 일컫고 있다.

삼좌점 석성 터가 있는 댐 정상에서 반대편 먼 쪽에 높은 산이 솟아 있는데 그곳에 또 다른산성이 있다고 한다. 그곳에는 하가점하층문화의 대표적인 두 줄로 치를 만든 석성이 거의 훼손 없이 보존되어 있다고 하였으나 도로가 공사 중이라 가보지를 못하였다. 하여튼 그 일대 꽤나 넓은 지역에 석성 유적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그냥 집단이 아니라 지금으로 생각해 보면 국가체제가 갖추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좌점 석성 유적지는 1993~1994년 사이 처음 발굴이 시작되었을 때는 유적 묻혀 있었고 돌 윗부분만 보였다고 한다. 이제는 도굴되거나 훼손되어 유적이 거의 없어지고 현재 보이는 것들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가히 그 규모가 어떠했는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2000년부터 다시 발굴이 시작되었고, 댐 건설을 위해 시굴하다가 유적의 실체가 드러났다고 한다.

성 입구에 암각화가 있었는데, 인면 암각화, 즉 사람 얼굴모양을 한 암각화였다. 하지만 단순 암각화가 아니라 모 천문학자가 와 보고서는 동지 관측 지점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새해 첫날 맞이를 위하여 성 안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모여 뭔가 의식을 행한 것 같았다. 4000년 전 유물 및 유적은 청동기시대의 하가점하층문화로 당시 국가 조직은 고조선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다. 성 터를 조사한 결과, 1만 명 정도가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고조선의 중심지라고 일컫는 조양과 그리 멀지 않았다. 만주지역에는 말이 많아서 말이 밭을 갈고 소는 쉬고 있는 모습을 자주 본다고 한다. 그리고 농경지 곳곳에 방풍림이 있었고, 방풍림은 미류나무 였다. 이러한 미류나무는 경계선 따라 조림되었다. 지붕각, 즉 처마가 짧은 이유는 추운 지역이라 햇빛이 많이 들게 하기 위해서다.

10시에 삼좌점촌을 출발하여 이도정자 유적 취락지구 보존지역으로 향했다. 이도정자박물관에 도착하였다. 박물관이 최근 건립된 것 같았다. 박물관 내부는 완공된 것 같았으나 외부는 한참 마무리 공사 중이었다. 박물관 내부에 들어가니 4000년 전 하가점하층문화인들이 살았던 취락지구(집단 생활 근거지)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특히 삼좌점 석성 유적을 먼저 보고 이도정자 취락지구 유적을 보니 동시대 유적이다 보니 좀 더 마치 이도정자 유적이 삼좌점 유적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듯 했다. 삼좌점 석성 유적에서 이중으로 구성된 집터와 관련하여 이동정자 유적에서 발견한 것은 공간이 좁아 통로로 사용하기는 어렵고, 여름철에는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기 위해서, 겨울철에는 추위를 막아주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도정자 취락지구 유적지가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고운 황토 혹은 황사가 뒤덮었고 그것이 빠르게 퇴적이 되었기에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박물관을 나와서 보니 밑으로 고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박물관의 천장 구조가 에어가 들어가 있는 돔 구조로 되어 있었고, 밑에 고속도로가 지나가니까 건물 진동에 강하고 무너지더라도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천천히 천장이 내려온다고 하였다. 그리고 점심식사 후 오늘의 마지막 여정인 오한기 박물관으로 이동하였다.

도로 이정표에 일도정자촌이 보여서 혹시 일도정자촌, 이도정자촌, 삼도정자촌이 아닌가 라고 하자 다른 일행분이 안성시에 가면 죽일면, 죽이면이 있는데, 그곳의 면장은 잘하든 못하든 죽일면장이 되니 난감했을 터, 언어교화 차원으로 지명을 일죽면과 이죽면으로 각각 바꾸었다고 한다. 죽일면을 일죽면으로 바꾸었다는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얘기를 들으며 이동하였다.

그리고 내몽고 지역은 끝없는 평원이 펼치고 처음에는 나무들이 많이 보였는데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초원지대가 많이 보였다. 들은 바에 의하면 100km 위로 올라가면 수목한계선이라고 해서 나무 한 그루 안 보이는 그야 말로 초원지대가 펼쳐진다고 한다.

가는 도로 좌우에는 옥수수밭이 내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저 많은 옥수수들을 누가 다 먹지 생각을 했다. 다른 일행분이 옥수수를 먹기도 하지만 대체연료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것은 흡사 대일항쟁기 때 일본이 군수물자를 확보하기 위하여 한반도 근해에 사는 정어리를 모조리 잡아다가 석유 대신에 사용했다는 수탈의 역사가 생각이 났다. 옥수수하면 우리나라 대학 찰옥수수가 맛있다. 대학 찰옥수수는 충북대학교 농과대학에서 찰옥수수 품종을 개발한 데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여행에서는 이러한 사소한 지식을 쌓는 것도 재미있는 것 같다. 알고 나면 쓸데없는 지식일지라도 흥밋거리는 충분히 될 수 있다.

중국 내몽고자치구의 지방조직은 자치구-시(市)ㆍ맹(盟)-현(縣)ㆍ기(旗)-향(鄕)ㆍ진(鎭)ㆍ촌(村)으로 구성되어 있다. 몽골족은 맹과 기로 부족을 엮었기 때문에 내몽고자치구에는 아직도 시와 격이 같은 ‘맹(盟)’, 현과 격이 같은 ‘기(旗)’가 있다. 적봉시는 내몽고자치구 내의 9개 시 가운데 하나이고 오한기는 적봉시에 속해있는 기인데 면적은 한국의 충청북도 보다 다소 작다. 해자로 둘러싸인 신석기 마을유적에서 한민족과 관련된 유물인 빗살무늬토기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옥, 중국 최초의 용 형상물 등이 발견된 흥륭와문화가 오한기의 흥륭와촌에서 발견되었고, 고조선 이전 시기 문화인 ‘홍산문화’와 고조선 시기의 문화인 ‘하가점하층문화’가 대거 발견되었다. 오한기는 요령성 건평ㆍ능원의 우하량 유적에 뒤지지 않는 홍산문화의 중심지가 바로 오한기이다.

오한기 박물관은 작은 규모의 박물관이지만 매우 가치있는 홍산문화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홍산조신상’으로 명명된 흥륭와문화 시기의 흙으로 만든 남신상, 돌을 다듬어서 만든 홍산문화 시기의 인물상인 ‘석각인두상’ 그리고 하가점하층문화(고조선)의 화려한 ‘채도’와 고조선의 표지 유물인 ‘비파형 청동검’ 등, 상고사와 고대사 그리고 우리 민족의 시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한기박물관에서 큰 감명을 받지 않을까.

이러한 오한기 박물관에서는 홍산 및 하가점하층문화 등 고대 내몽고 지역에 존재했던 다양한 시기, 다양한 문화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좋았다. 문명의 시작과 문화의 경계라는 문화 스펙트럼을 경험할 수 있었다. 문화의 빛이란 다양한 문화가 교류하고 그 결과 새로운 문명을 탄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나라마다 갖고 있는 문화의 다양성과 인류가 공동으로 갖고 있는 문화의 통일성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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