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2021년 11월호)에 ‘알타이어족’으로도 불리는 트랜스유라시아어족(Transeurasian languages) 언어 기원지가 ‘9000년 전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기장 농업 지역’이라는 연구 논문이 발표되어 주목받았다. 현재 트랜스유라시아어족에는 한국어를 포함하여 98개 언어가 속해있으며, 크게 한국어, 일본어, 몽골어, 튀르크어, 퉁구스어 계통으로 나뉜다. 트랜스유라시아어족 언어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은 영어나 중국어의 ‘주어+동사+목적어’ 순서와 달리, ‘주어+목적어+동사’ 순서로 되어 있고, 모음조화 현상이 있다는 점이다.

우실하 한국항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교수. [사진=김경아 기자]
우실하 한국항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교수. [사진=김경아 기자]

2021년 11월 12일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21세기의 술탄을 꿈꾸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주도로 트랜스유라시아어족 가운데 튀르크(=돌궐)어 계통을 사용하는 국가 터키,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으로 구성된 ‘튀르크어 사용 국가 기구(OST)’가 출범하여 1500년 전 돌궐제국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네이처 논문은 독일 막스-플랑크 인류사과학연구소의 마르티너 로베이츠(Martine Robbeets) 교수 연구팀을 중심으로 10개국의 학자들이 언어학, 고고학, 유전생물학 분야를 종합한 공동 연구로 작성한 것이며, 이는 고대 농업-목축 관련 어휘 분석, 신석기-청동기 시대 유적지에 관한 고고학 자료, 고대 농경민의 유전자 분석 결과 등을 비교한 대규모 연구였다.

이 논문이 네이처에 발표된 날 우실하 한국항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교수는 국내외의 벗들로부터 전자우편을 여럿 받았다고 한다. 이 논문으로 인해서 요하문명과 관련하여 우 교수가 내놓은 연구 결과가 이제는 빛을 보게 되었다는 내용들이었다. 우 교수는 “이 네이처 논문은 한국어의 뿌리를 밝힌 것 외에도 다른 여러 가지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라면서 “요하문명이 동북아시아의 시원문명임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우실하 교수를 만나 네이처에 발표된 ‘트랜스유라시아어족 언어의 기원’을 다룬 논문에 관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우 교수는 미리 준비한 자료를 여럿 내놓았다.

-- 먼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네이처 논문이 발표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11월 19일에 <뉴시스>에 그 논문에 담긴 또 다른 의미들를 다룬 장문의 기고문을 썼습니다. 사실 본래 기고문 초고는 신문에 싣기에는 너무 길어서 분량을 줄이느라고 더 고생했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이에 관해 좀 더 상세히 이야기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 네이처의 논문에서 트랜스유라시아어족 언어의 기원이 “9000년 전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기장 농업 지역”이라고 했습니다. 이 논문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지요?

이 논문의 가장 핵심적인 연구 결과는 ‘농경의 확산’을 통해서 트랜스유라시아어족(=알타이어족) 언어의 확산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밝힌 것입니다. 언어학적으로 기원이 같은 3,000여 개 언어의 계통수를 언어학, 고고학, 유전생물학 분야의 최신 정보를 종합하여 그린 결과 트랜스유라시아어족 언어의 기원지는 ‘9000년 전 서요하 유역의 기장 농업 지역’임을 과학적으로 밝힌 것입니다.

논문의 핵심은 (1) 트랜스유라시아어족 언어가 서요하 지역에서 기원해서 (2) 5500년 전에 ‘원시 한국어-일본어’로 5000년 전에는 ‘원시 몽골어-퉁구스어’로 1차로 분화되었고 (3) 청동기시대에는 ‘원시 한국어, 원시 일본어, 원시 몽골어, 원시 퉁구스어, 원시 튀르크(=돌궐)어’로 2차로 분화되었으며 (4) 이후에 각 지역으로 다양하게 확대되어 분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미지=우실하 제공]
[이미지=우실하 제공]

                              ( * 출처 : Martine Robbeets, Remco Bouckaert, Matthew Conte, etc., Triangulation supports agricultural spread of the Transeurasian languages, Nature, Published online: 10 November 2021, pp. 1-6. 2쪽 Fig. 1-b.)

 -- 기원지가 ‘9000년 전 서요하 유역의 기장 농업 지역’이라 것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네이처 논문에서 트랜스유라시아어족 언어의 기원지로 밝혀진 ‘9000년 전 서요하 유역의 기장 농업 지역’이 바로 제가 연구하고 있는 ‘요하문명(遼河文明)’ 지역입니다. 결국, ‘9000년 전 서요하 유역의 기장 농업 지역’이란 바로 ‘요하문명’ 지역이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요하문명의 가장 이른 신석기시대 고고학문화인 소하서문화(小河西文化: BC 7000 - BC 6500)의 시작이 바로 9000년 전입니다.

또한 이 요하문명 지역에서 ‘세계 최초의 재배종 기장[黍]’이 출토됩니다. 구체적으로 요하문명의 흥륭와문화(興隆洼文化: BC 6200 - BC 5200)에 속한 흥륭구(興隆溝)유적에서 발견된 8000년 전의 ‘세계 최초의 재배종 기장(黍: 1,460알 중 1,400알, 96%)과 조(粟: 1,460알 중 60알, 4%)’는 이미 2012년에 유엔(UN) 식량농업기구(FAO)에서 ‘세계 중요 농업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북경 서쪽 동호림(東胡林)유적(BC 9000-BC 7000)에서 발견된 기장은 시기는 앞서지만, 재배종이 아니라 아직 야생종에 가까운 순화 과정에 있는 것이어서 지정되지 못했습니다.

우실하 교수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2021년 11월호)에 발표된  트랜스유라시아어족(Transeurasian languages) 언어의 기원지가 ‘9000년 전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기장 농업 지역’이라는 연구 논문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우실하 교수가 최근 국제학술지 《네이처》(2021년 11월호)에 발표된 트랜스유라시아어족(Transeurasian languages) 언어의 기원지가 ‘9000년 전 서요하(西遼河) 유역의 기장 농업 지역’이라는 연구 논문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 이 논문이 기존 트랜스유라시아어족 언어의 ‘유목민 가설’을 뒤집었다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네이처 논문은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언어가 4000년 전을 기점으로 중앙아시아를 거쳐 들어온 유목-목축민이 전파했다는 기존의 ‘유목민 가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청동기시대 후기가 되어서야 서요하 지역과 중앙아시아-서유라시아의 유전 계통이 섞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곧, 유목-목축민들이 서요하 지역으로 들어온 것은 청동기시대 후기에나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대안으로 ‘9000년 전 서요하 지역의 농경민에게서 기원하여 확산되었다’는 ‘농경민 가설’을 새롭게 제시한 것입니다.

[자료=우실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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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우실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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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어의 뿌리인 트랜스유라시아어족 언어의 기원이 요하문명 지역이라면, 이 지역이 다른 분야에서도 한국과 연결이 되나요?

저는 ‘서요하 유역(=요서 지역)’에서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발굴되고 있는 ‘요하문명(遼河文明)’에 관해 여러 권의 책을 쓰며 연구해오고 있습니다. 네이처 논문은 한국어의 뿌리인 트랜스유라시아어족 언어의 기원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기원지가 ‘요하문명 지역’이라는 점은 여러 가지 역사-문화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제가 연구한 바에 의하면 ‘요하문명 지역’은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기원지일 뿐만이 아니라 (1) 9000년 전 최초의 빗살무늬토기, (2) 8000년 전 최초의 재배종 기장과 조 (3) 8000년 전 최초의 옥결(玉玦: 옥 귀고리) (4) 8000년 전 최초의 적석묘, (5) 7000년 전 최초의 복골(卜骨: 점을 친 뼈), (6) 7000년 전 최초의 흑도(黑陶), (7) 5500년 전 최초의 계단식 적석총과 (8) 4300년 전 최초의 ‘치(雉)를 갖춘 석성(石城)’ (9) 3000년 전 최초의 비파형동검 등의 기원지이기도 합니다. 이 가운데, (1), (4), (6), (7), (8), (9)는 요하문명과 한반도에서 모두 발견되는데, 황하문명 중심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들임이 우리에게 중요하죠.

[자료=우실하 제공]
[자료=우실하 제공]

‘요하문명’은 전형적인 북방문화 계통으로 ‘황하문명’과는 확실하게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네이처 논문에서도 황하문명 지역은 ‘중국-티베트어족’ 언어의 기원지이고, 요하문명 지역은 ‘트랜스유라시이어족’ 언어의 기원지라고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습니다. 곧 황하문명과 요하문명은 이질적이고 독자적인 문명권이었다는 것입니다.

[자료=우실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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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우실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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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놀랍군요. 그 외에 또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있을까요?

홍산문화 시기에 보편적으로 행해졌던 ‘편두(偏頭=褊頭)’ 전통도 주목해야 합니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는 진한(辰韓) 사람들은 “아이가 출생하면 곧 돌로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려 했기 때문에 지금 진한 사람의 머리는 모두 납작하다(兒生 便以石壓其頭 欲其褊 今辰韓人皆褊頭)”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진=우실하 제공]
[사진=우실하 제공]

      (*출처 : Zhang Q, Liu P, Yeh H-Y, et al. Intentional cranial modification from the Houtaomuga Site in Jilin, China: Earliest evidence and longest in situ practice during the Neolithic Age. American Jounal of Physical Anthropology. 2019;169:747–756. )

 

가야 시대 김해시 예안리고분(禮安里古墳)유적에서도 10점의 편두 두개골이 확인되어요. 이후에는 경북 경산시의 임당동고분군에서도 편두 두개골이 확인되었습니다. 경상 남북도 지역에 편두 전통이 확대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진한이나 변한뿐만이 아니라 흉노, 가야, 신라, 일본 등의 편두 전통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사진=우실하 제공]
[사진=우실하 제공]

 

그런데 홍산문화 후기의 대표적 유적지인 우하량(牛河梁)유적에서 발견된 남녀 두개골 17개 가운데, 76.47%에 달하는 13개가 편두임이 밝혀졌습니다. 남녀가 모두 편두를 했었고, 홍산인들에게 편두가 유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최근 길림성 대안시(大安市) 후투목알(後套木嘎, 허우타오무가)유적의 발굴(2011-2015) 과정에서 편두가 이 지역에서 12000년 전에 기원했다는 것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이 유적에서는 11점의 편두 두개골이 발견되었고 12000년 전부터 5000년 전까지 7000년이 넘게 지속되었다는 것이 드러났어요.

      곧 편두 전통은 (1) 요하문명 지역의 동북쪽 끝인 후투목알유적에서 12000년 전에 기원하여 7000년 동안 지속되었고 (2) 홍산문화 후기인 5500-5000년 전에는 보편화되었고 (3) 이후 서쪽으로는 ‘몽골 초원→유라시아 초원→유럽’으로 (4) 동쪽으로는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5) 동남쪽으로는 ‘한반도→일본’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사진=우실하 제공]
[사진=우실하 제공]

 

12000년 전 후투목알유적의 편두 모습은 우리나라 예안리에서 발굴된 것과 마찬가지로 편두가 뚜렷합니다. 홍산문화의 편두 두개골은 그렇게 뚜렷하지 않지만 인공적인 변형이 분명하게 확인되었고 발굴보고서에서도 학자들이 편두로 판정한 것입니다. 결국 편두 전통도 요하문명 지역에서 기원해서 사방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 이런 거대한 요하문명이 왜 수천 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잊히게 되었습니까?

서요하 지역은 요하문명이 꽃피는 시기에는 한반도 중부 지역과 기후 조건이 비슷했고 농경을 하면서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5000년 전을 기점으로 기온이 급강하하고, 건조한 지역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런 건조화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서요하 지역 요하문명의 한 가운데는 동서 약 500km 남북 약 200km의 거대한 카라친사막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신석기 말부터 이런 건조화-초원화-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인구 밀도도 낮아지고 사람들이 살지 않게 되면서 점차 잊혀지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거대한 사막 아래에는, 현재 발굴된 것보다 더 놀랍고 거대한 유적들이 묻혀있을 것을 봅니다. 언젠가 있을 후손들의 발굴을 기다리며.....

-- 한국어의 기원에 관한 내용 외에 네이처 논문이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의미는 무엇입니까?

네이처 논문은 ‘한국어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사실뿐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역사-문화 연구의 방향에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첫째, 동북아시아 상고-고대사, 문화사, 종교사 등등의 연구에서도 그 출발은 요하문명 지역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 요하문명 지역은 언어적으로도 황하문명 지역과는 별개의 독자적 문명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고, 요하문명이 중국보다는 한반도와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셋째, 결국 이제는 요하문명을 모르고서는 동북아시아의 언어, 역사, 문화, 철학, 종교 등을 논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실하 교수는 우리가 우리의 시각에서 요하문명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중국의 논리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며 이제라도 각 분야에서 또 국가 차원에서도 요하문명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우실하 교수는 우리가 우리의 시각에서 요하문명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중국의 논리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며 이제라도 각 분야에서 또 국가 차원에서도 요하문명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요하문명 지역은 한국어의 기원이 되는 지역이고, 언어적으로도 황화문명 지역과 별개의 독자적인 문명이었다면 우리나라 역사와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입니까?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요하문명 지역에서 발견되는 최초의 것들 가운데, (1), (4), (6), (7), (8), (9)는 요하문명과 한반도지역에서는 모두 발견되는데, 황하문명 중심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것은 요하문명이 한반도의 상고사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인들은 현재 중-고등학교 역사 시간에, 비파형동검이 출토되는 요하문명 지역을 ‘고조선의 문화권/세력권/세력 범위’ 등으로 가르치고 배우고 있습니다. 저는 요하문명 지역의 하가점하층문화 시기가 고조선의 초기 중심지라고 보고 있습니다. 수천 년 동안 아무도 알 수 없었던 요하문명이 새롭게 발견되었는데,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주류 고고-역사학계에서는 아직도 먼 산 보듯이 관망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중국 학계에서는 요하문명 지역을 중국인들의 조상이라는 황제족(黃帝族)이 일군 문명이자 중화문명의 발상지로 삼고, 동북아시아의 상고-고대사를 중국 중심으로 전면적으로 재편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에서 후대에 출현하는 모든 소수민족은 모두 황제족의 후손이고, 그 황제족 후손들의 역사는 모두 중국사의 일부라는 논리입니다. 이런 논리의 뿌리가 ‘통일적다민족국가론(統一的多民族國家論)입니다. 이런 이론적 바탕에서 우리 역사의 고조선, 부여, 고구려의 역사는 이미 중국사의 일부가 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 고조선도 이미 중국사가 되었다구요?

한국인들에게는 낯설고 놀라울지 모르지만, 중국에서는 고조선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1) 단군조선은 신화-전설에 불과하다고 인정하지 않으며 (2) 기자조선은 BC 1122에 ’한반도 북부‘에 세워졌고 (3) ‘화하족(華夏族)이 주체가 되어서 만든’ 중국의 지방정권이나 제후국(諸侯國) 혹은 번속국(蕃屬國)에 불과했고 (4) 따라서 ‘문화적으로나 혈연적으로나’ 오늘날의 남북한과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5) 주요 민족도 ‘중화민족’의 일부인 화하족(華夏族)과 부여족(夫餘族)이며 (6) 따라서 고조선은 ‘중국사’라는 것이 기본 입장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는 대표적이고 대중적인 인터넷 포탈인 백도(百度: 바이두)의 백과사전인 ‘백도백과(百度百科)’에서 고조선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지를 아래에 자료로 소개하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자료=우실하 제공]
[자료=우실하 제공]

 

 

-- 듣는 저도 그렇지만, 한국학계에 대해서 참 답답하시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요하문명에 관한 연구와 관련해서 한 말씀 해주십시오.

저는 이미 여러 책과 논문에서 요하문명을 ‘동북아시아 공통의 시원문명’이라고 논의한 바 있고, 이 지역이 바로 고조선의 초기 중심지라고 논의한 바 있습니다. 거대한 하나의 새로운 문명에 관한 연구는 역사-고고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집트문명에 관한 연구가 고고학, 역사학, 신화학, 종교학, 건축학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이제는 여러 학문 분야에서 요하문명과 연결하여 깊이 있는 연구를 해야 합니다.

요하문명을 일군 사람들이 동이족의 선조들이었고, 예맥족의 선조들이었고, 우리의 선조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시각에서 요하문명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중국의 논리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각 분야에서 또 국가 차원에서도 요하문명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어야 합니다.

 

-- 우리 학계의 적극적인 관심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우실하 교수(한국항공대  인문자연과학부)는 경북 상주 출신으로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양사회사상, 문화이론, 한국문화론, 한국문화/사상사를 연구한다. 현재 한국항공대학교 인문자연학부 교수(학부장 역임),  동양사회사상학회 회장, 고조선단군학회 부회장,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운영위원, 중국 내몽고홍산문화학회(內蒙古紅山文化學會) 회원이다.  중국 요녕대학(遼寧大學) 한국학과 교수 (요녕성 심양시), 중국 적봉학원(赤峰學院) 홍산문화연구원(紅山文化硏究院) 방문교수(내몽고 적봉시)를 지냈다. 

저서로 『요하문명과 한반도』,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요하문명』, 『3수 분화의 세계관』,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 『고조선의 강역과 요하문명』, 『동북공정의 선행 작업과 중국의 국가 전략』, 『전통 음악의 구조와 원리: 삼태극의 춤, 동양 음악』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