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조선 등 한국 상고사의 역사로 진입 가능성 열려 있다”
“단군조선 등 한국 상고사의 역사로 진입 가능성 열려 있다”
  • 정유철 기자
  • npns@naver.com
  • 승인 2020.09.23 17: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북아고대역사학회, 학회지 “동북아고대역사” 제3권 발간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최근 학회지《동북아고대역사》제3권을 발간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최근 학회지《동북아고대역사》제3권을 발간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동북아고대역사학회(회장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최근 학회지《동북아고대역사》제3권을 발간했다.

이번 제3권 《동북아고대역사》에는 “중국 섬서성 신목현 석묘촌의 석묘와 황성대 유적: 신화나 전설에서 역사로 진입한 중국의 유적과 단군조선”(최몽룡), “동북아의 백산신앙과 백두산-토착성과 월경성”(김철수), “갑골문의 최고신격 표상에 대한 한국선도적 해석”(최명희), “한국사와 역사철학”(민영현),  “통화 만발발자 제천유적 추보(推補) 연구:《통화만발발자유지고고발굴보고》를 중심으로”(정경희), 다섯 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최몽룡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는 “중국 섬서성 신목현 석묘촌의 석묘와 황성대 유적(中國 陝西省 神木縣 石峁村의 石峁와 皇城臺 유적): 신화나 전설에서 역사로 진입한 중국의 유적과 단군조선”이라는 논문에서 “중국은 중화문명탐원대공정을 통하여 황하를 중심으로 신화를 역사로 점차 탈바꿈시키고 있으며, 또한 이를 통해 중국 한족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정신적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며 “종전의 중국의 역사가 기원전 2200년경 우임금이 세운 하나라보다 약 1,000년 더 올라가는 삼황오제의 시절까지 소급시키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 명예교수는 그와 관련된 기록과 전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섬서성 신목현 석묘촌의 석묘와 황성대 유적도 그러한 추세에 맞추어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며 “석묘와 황성대 유적(기원전 2000년-기원전 1900년)에 발견된 도기는 용산문화(龍山文化)를 대표하는 끓이거나 찌는 취사도구인 ‘공삼족기(空三足器)인 격(鬲)이 위주인데 중요한 것은 한국의 청동기기대 초기(기원전2000년-기원전 1500년)에 보이는 돌대문토기(각목돌대문토기)의 장식과 유사한 점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중국 삼황오제의 경우 산서성 길현 여산 정봉의 여러 유적과 섬서성 신목현 석묘촌 유적에서 기록과 전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단군조선을 포함하는 신화나 전설 상의 한국 상고사가 역사적인 현실로 진입하게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고 말했다.

통화 만발발자 제천유적을 연구해온 정경희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기존 연구에 근간《통화만발발자유지고고발굴보고》를 추가하여 만발발자 제천유적의 분기별 변천상을 새롭게 조명하여 연구한 “통화 만발발자 제천유적 추보(推補) 연구:《통화만발발자유지고고발굴보고》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 따르면 1기-조단(B.C. 4000~B.C.3500년)의 시기, 선도사상의 요체인 삼원(천·지·인, 원·방·각)의 상징성을 요령 있게 담아낸 거대 규모의 적석단층, ‘3층원단(모자합장묘)ㆍ방대’가 조성되었다. 그 주인은 배달국 초 환웅족이 가져온 선진적 선도제천문화를 수용하여 토템족 웅족사회를 천손족 맥족(환웅족+웅족)사회로 바꾸어놓은 역량 있는 선인 지도자 웅녀군이었다.

1기(B.C. 4000~B.C. 3000년 배달국 전·중기) 제천단의 거대 규모와 대비되는 간결하고 담백한 제천의 흔적은 선도제천문화의 태동기, 군더더기 없이 기본에 충실한 선도제천문화의 출발점을 보여주었다.

2기(B.C.13세기~B.C. 8세기, 단군조선 후기) 만발발자의 드넓은 소도제천지에는 3층원단·방대의 국부에 주·부 제천사 2좌가 들어서 있을 뿐이었다. 1기에 자리잡힌 소도제천문화의 기본 틀이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3기(B.C.8세기~B.C.3세기, 단군조선 말기)가 되자 소도제천문화가 크게 형식화되고 번잡해졌으며, 이전에 보이지 않았던 위계성까지 생겨났다. 단군조선 말기 맥족사회의 분열·와해 국면에서 선도제천문화도 세속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4기(B.C. 3세기~3세기, 고구려 개창기)가 되자 종래 번속화 방향으로 흘렀던 소도제천문화는 재차 간결화하면서 새로운 안정 국면을 맞았다. 고구려의 개창으로 맥족 사회가 안정을 찾아가는 시대분위기와 맞물린 변화였다.

5기(3세기~5세기, 고구려 중기)에는 제천시설의 중첩 및 소규모화 현상, 또는 제천 공간의 축소 현상이 두드러졌다. 고구려 중기 선도제천문화의 위상이 서서히 악화되어가는 추세를 보여주었다.

정경희 교수는《통화만발발자유지고고발굴보고》에 관해 “철저하게 중국 동북공정 ‘요하문명론-장백산문화론’에 의거, 유구와 유물을 취사선택하는 방식으로 집필되었음을 우선적으로 인식해야 할 것이며, 이러한 인식 위에서 역시 취사선택적인 접근해야 한다고”고 강조했다.

이어 정 교수는 “만발발자 유적 발굴보고서는 한눈에 드러나는 동북공정의 시각, 또 그간의 발굴 상황과 발표 논문들을 두루 파악하고 있는 연구자들의 높아진 안목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의도적이고도 부실한 편집으로 인해, 그들이 기왕에 공포한 장백산지구 고제단군에 대한 관심을 잠재우기는커녕 중국 측의 유적 은폐와 역사 왜곡의 실상을 재삼 확인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학회지《동북아고대역사》를 매년 2월과 8월에 각각 발행한다.

16
0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