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에서 태어난 개국 시조
알에서 태어난 개국 시조
  • 민성욱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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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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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성욱 박사

"도요새 도요새 그 몸은 비록 작지만
도요새 도요새 가장 멀리 나르는 새”

그 몸은 비록 작지만 가장 멀리 날고, 가장 높이 꿈꾸는 새가 ‘도요새’라고 한다. ‘도요새의 비밀’ 이라는 가요의 가사 내용이다. 새는 알을 깨고서야 날 수 있고 높이 나는 새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가 있다. 우리 역사에서 새는 하늘의 전령사로 인식되어 왔고, 태양은 하늘의 뜻을 상징해 왔으며, 태양의 흑점에 산다는 삼족오도 등장하였다. 우리 역사에서 개국시조의 탄생 이야기를 보면 난생설화가 많은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우리 역사에서는 알에서 태어난 인물들이 있다. 신라의 박혁거세, 석탈해, 김알지, 고구려의 고주몽, 가야의 김수로왕이 그들이다. 모두 단군조선의 정통성을 계승하고 홍익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새로운 시대를 이끌었던 통치자들이었다.

우선 신라의 개국시조, 박혁거세의 탄생 이야기다.『삼국사기』기록에 따르면, “어느 날 고허촌장 소벌공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나정 곁의 숲 사이에 말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래서 가까이 가 보니 말은 보이지 않았고, 큰 알이 한 개가 있어 깨뜨려 보니 갓난아이가 나왔다. 소벌공은 그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잘 길렀는데, 10여 세가 되자 유달리 성숙하였다. 6부 사람들은 그 아이의 출생이 신기했으므로 모두 우러러 왕으로 모셨다. 삼한 중 진한 사람들은 표주박을 박(朴)이라고 하였는데, 혁거세가 난 커다란 알의 모양이 표주박처럼 생겼다고 해서 성을 박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경주 나정은 신라왕실의 성지가 되었고, 그 자리에 신궁 등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57년 경주 일대 6촌 촌장들의 추대로 13세에 왕위에 즉위, 용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는 알영 부인과 결혼하였으며, 60년 넘게 신라를 통치하다가 서기 4년 73세로 승하하였다고 한다.

석씨왕조의 시조, 탈해 이사금 석탈해는 왜국에서 동북쪽 1천 리 바깥에 있는 용성국(혹은 다파나국)의 왕자로, 왕비가 임신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고, 아버지인 함달파왕이 불길한 것이라고 생각해 배에 실어 내버렸다. 이후 배를 타고 신라 동해안의 아진포에 떠내려 온 걸 노파가 건져내 알에서 깨어난 탈해를 키웠다. 탈해는 물고기를 잡으면서 어머니를 부양했지만 양어머니는 탈해가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고 공부를 시켰다. 장성한 뒤에는 가야에 가서 왕위를 내놓으라고 했다가 김수로왕에게 밀려났고, 신라로 가서는 잘 먹고 잘 살고 있던 호공의 집을 속임수로 강탈하고, 그 소문을 들은 남해차차웅이 그가 지략가임을 알고 사위로 삼았다.

김씨 왕조의 시조, 김알지는 생전에 왕위에 오른 인물은 아니나 그의 후손들이 왕위에 올랐다. 미추이사금을 시작으로 내물이사금부터 김씨 왕조가 정립되었고 마지막 왕인 경순왕까지 신라의 왕위에 올랐다.『삼국사기』기록에 따르면 “탈해이사금 9년 3월에 왕이 밤중에 금성 서쪽 시림 숲속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자 호공을 보내어 이를 살펴보도록 하였다. 호공이 시림에 다다라 보니 금빛의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었다. 이 사실을 듣고 왕은 궤짝을 가져오게 하여 열어 보니 조그마한 사내아이가 그 속에 들어 있었는데 용모가 기이하게 뛰어났다. 왕은 기뻐하며 하늘이 그에게 아들을 내려 보낸 것이라 하여 거두어 길렀으니 그 아이는 자라감에 따라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나서 그 이름을 알지라 하였다. 또 금빛 궤짝에서 나왔다고 해서 성을 김씨라고 부르고 처음 발견되었던 곳인 시림을 계림이라 이름하고 이로써 국호로 삼았다.”

다음은 고구려 개국시조, 고주몽의 탄생 이야기다. 주몽은 원래 부여어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성씨는 원래 해씨였으나 후대에 고씨로 추존되었다.『삼국사기』기록에 따르면 “어느 날 해모수가 동생들과 함께 놀던 유화를 보고서는 꾀어내어 함께 하룻밤을 지냈으나 그 다음 날 혼자 승천해 버렸다. 유화부인은 중매도 없이 다른 남자와 잤다는 이유로 하백에게서 쫓겨나 떠돌다가 태백산 우발수까지 갔다가 동부여의 왕이었던 금와왕과 만나게 되었는데, 유화의 사연을 알게 된 금와가 유화를 궁 안으로 데려와 방안에 두었다. 이후에 햇빛이 방안으로 들어와 유화의 몸을 내리 쬐었는데 유화가 아무리 이를 피하려 해도 햇빛은 계속 유화의 몸을 비추었다. 그 이후에 유화는 임신을 하게 되었고, 괴상하게도 알을 낳았다. 금와왕이 알을 돼지나 짐승에게 주거나 들판에 버렸지만 짐승들이 알을 해치지 않고 보호하려고 하였고 껍질이 단단해서 깨뜨릴 수도 없어 결국 도로 유화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이윽고 알에서 아기가 태어났는데 그가 바로 추모왕, 즉 고주몽이었다.”

가야의 개국시조, 김수로는 흔히 ‘구지가’와 얽힌 6개의 알과 관련되어 있다. 42년 구지봉에서 모인 사람들이 모여 ‘구지가’를 부르며 춤을 추자 하늘에서 알 9개가 내려왔고, 그 알 중에 가장 먼저 깨어난 사람이 바로 김수로왕이다.

이와 같이 단군조선 이래로 열국시대를 거쳐 고대국가체제를 갖추는 과정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고대 국가들은 모두 개국신화를 갖고 있다. 개국신화의 특징은 대부분 난생설화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난생설화가 많은 것은 그 시대의 정신과 관련이 있다. 우리 민족은 하늘을 숭배하였고 심지어 하늘이고자 하여 백의민족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하늘은 밝음의 대상이었고 자연스레 태양 숭배로 이어졌다. 우주만물의 근원이자 태양과 닮은 알에서 태어난 것은 신성한 존재이며 하늘의 자손이고 태양의 후예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개국시조를 보편적인 출생방법이 아닌 알에서 태어난 것으로 설정하여 그것이 하늘의 뜻임을 상징함으로써 왕권의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 외에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시대가 갖고 있는 틀을 상징하였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 지도자는 기존의 틀에 갇힌 것이 아니라 그 틀을 깨고 새로운 시대를 연 사람들이었다. 틀을 깰 때 두려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 두려움을 이길만한 용기가 있을 때,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 다가올 새해를 맞이하면서 우리 역사가 전해주는 시대정신을 다시 한 번 일깨워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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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티 2019-01-05 16:34:02
개국신화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탈해 이사금은 어째 좀 거시기하네요.
자칫 나쁘게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그리고 김알지는 성은 다르지만
석탈해의 양아들인 셈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