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천년을 이어온 빗살무늬토기인들의 꿈
6천년을 이어온 빗살무늬토기인들의 꿈
  • 민성욱 박사
  • k-spirit@naver.com
  • 승인 2018.10.31 00:0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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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성욱 박사

“가을이 예쁘다.”
단풍으로 물든 가로수 따라 자연스레 시선이 멈추는 곳은 하늘이다. 가을이 예쁘다던 딸에게 물었다.
“가을의 무엇이 그렇게 예쁘냐?”
돌아온 답변은 “가을이 창조한 세상이 아름답다” 고 한다.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여 계절마다 바뀌는 세상은 우리에게 매번 아름다운 추억을 선물해 준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유기농 먹거리를 통해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모 생활협동조합의 가을걷이 행사에 다녀왔다. 가을걷이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악화로 올 한해 힘든 시간을 보낸 농민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추수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가깝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권장하기 위한 행사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수확의 계절이 다가오면 하늘에 감사하기 위하여 제천행사를 했다. 제천행사 후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확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하여 며칠 동안 음주 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천제 문화이자 천손 문화이다. 하늘을 숭배하고 하늘을 닮고자 하였으며 끝내 하늘이고자 했던 한민족의 전통 문화였다. 그런데 행사 장소가 눈에 띈다.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가 그곳이다. 
신석기인들이 인류사에 끼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농업혁명이라고 불리는 작물재배의 시작이 그때부터다.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신석기인들은 한 곳에 정착을 하기 시작하였고, 그러면서 문명이 생겨나고,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 한강유역 중 지금의 암사동 일대에 자리 잡은 신석기인들, 그들은 생산량의 혁신적인 변화를 이끌었다. 생산량의 변화에 따라 잉여생산물도 생겨나고 그것을 보관할 토기의 필요성도 생겼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빗살무늬토기이다. 신석기인들이 창조한 세상, 또 그들이 바라보았던 하늘, 6000년 전의 신석기인들이 한강에 최초로 정착한 이래로 역사와 문화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6000년 뒤의 후손들을 생각하며 그들이 바라본 하늘은 어떤 하늘이었을까?
언제나 그렇듯이 후손들이 바라볼 하늘이 더 아름답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고도의 문화를 창조해낸 동기였다.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하늘을 물려 줄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거꾸로 가는 시간의 역사 속에 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역사, 역사는 곧 사랑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하여 그들은 매일 하늘을 보며 다짐했을 것이다. 6000년 뒤의 후손들도 우리가 보는 아름다운 하늘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 또한 홍익이다.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 한강 유역에 정착한 신석기인들, 그들이 정착한 이래로 그곳에는 삼한 중 마한인들이 살았고, 고대국가로는 백제가 먼저 고도의 문화를 창조 했으며, 고구려와 신라로 이어지면서 주도 세력이 달라졌다. 고려 때는 남경이라고 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었고, 조선 시대 이래로 도읍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한국인들이 창조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 되었다. 서울은 6.25 전쟁의 상흔을 딛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내면서 세계적인 도시로 급부상했다. 그 중심에는 6000년 전에 이곳 한강에 처음으로 정착한 신석기인들이 있는 것이다.

암사동 선사유적지에는 신석기시대 유적인 움집을 1.5배 확대해서 제작한 체험용 움집이 있다. 움집 안으로 들어가 선사시대 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창을 손질하는 아버지, 고기를 썰고 있는 어머니, 물고기를 굽고 있는 아들, 음식을 먹고 있는 딸, 화덕, 음식물 보관시설이 보인다. 식량을 채집하고 가공하는데 사용된 괭이, 돌낫, 보습, 갈돌, 갈판 등과 수렵에서 사용된 석촉, 강가에서 어로 활동을 할 때 사용된 그물추 등이 발견되었고, 움집의 가장자리에는 토기를 이용하여 음식을 보관한 저장시설도 확인된다.
암사동 선사유적박물관 로비에는 “Future in the past of Han River” 라는 작품이 정면의 벽면과 바닥면을 장식하고 있다. 작가는 현재를 통해 미래와 소통한다는 의미로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암사동 선사유적 박물관 로비 설치 작품. [사진=민성욱]
암사동 선사유적 박물관 로비 설치 작품. [사진=민성욱]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며 서로의 시간을 상상하는 환상의 공간이다. 암사동 신석기인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오늘날의 우리를 상상했듯이 우리도 그들을 상상하면서 미래를 그리고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상상의 공간으로 들어서는 순간, 우리는 시간여행이 가능해진다.

농경, 간석기, 토기는 신석기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3대 문화로서 그 중 토기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품격을 높인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한반도에 처음 출현한 토기는 바닥이 편평한 형태였으나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 한반도 중남부 지방의 토기는 대부분 바닥이 둥굴거나 뾰족한 모양의 토기가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암사동 유적인 빗살무늬 토기는 토기 전체에 다양한 문양을 새겨 넣어 아름다운 생활예술문화가 탄생하였다. 신석기인들은 그들의 과학적인 발명품에 예술적 가치를 더해 생활하는 품격 있는 문화인들이었다. 한 토기에 여섯 가지 이상의 다양한 문양이 들어갔는데, 우선 맨 위에서부터 손톱무늬, 그 아래로 세모띠무늬, 무지개무늬, 겹톱니무늬, 문살무늬, 생선뼈무늬 등. 이것은 빗살무늬 토기 문양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설명해 주고 있다.

한강 정착 6000년의 역사

한강을 중심으로 조선왕조의 왕궁인 경복궁이 보이고,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중심인 서울시청도 함께 보인다. 그런가 하면 몽촌토성과 풍납토성도 보이며, 백제 초기 적석총도 보인다. 그 오래된 출발점에 6000년 전 암사동 석기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창을 던져 멧돼지 사냥을 하고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는다. 도토리도 채집하고 갈판에 올려놓고 갈돌로 갈아 가루로 만든 후 물과 함께 빗살무늬 토기에 넣고 끓인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익어갈 동안, 한쪽에는 그들의 주거 공간인 움집 수리에 여념이 없다. 움집 천장에는 일명 까치구멍이라고 해서 환기구를 만드는 것도 잊지 않는다.

6000년 전 한강변을 선택한 암사동 신석기인들은 비교적 쉽게 식량자원을 얻으며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한강은 신석기시대 이후로 백제의 한성, 고려의 남경, 조선의 한양, 그리고 대한민국의 서울로 이어지는 한반도의 중심지였다. 이렇듯 암사동 신석기인들의 선택은 한반도 역사를 향한 첫걸음이었다. 한강의 잦은 범람으로 퇴적과 침식을 반복하면서 암사동 유적에는 신석기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층이 형성되었다.

신석기인들이 발견한 다양한 도구와 그것을 발전시킨 기술은 그들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해 주었다. 토기의 탄생은 자연환경이 바뀌고 식량자원이 풍부해지자 사람들은 잦은 이동 대신 정착하면서 채집, 사냥, 물고기 잡이 등으로 얻은 식량을 조리하고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이렇듯 토기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인류 생활의 변화와 밀접한 관계 속에 탄생하였다. 토기 형태 중 빗살무늬토기는 주로 중국의 동북지역과 한반도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뒤이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지표유물인 비파형 청동검과 세형동검의 출토지역과도 겹쳐진다. 그런가 하면 청동기 시대에 국가가 등장했다고 하는 증거인 고인돌 유적 분포와도 상당 부분 겹쳐진다.

지금으로부터 6000년 전, 4000년 전 지금의 요하유역에서 일어났던 홍산문화와 하가점하층문화인들이 고도의 문명을 일으키면서 발전해 갔고, 그들이 기후의 변화와 전쟁 등의 요인으로 몇 차례 이동을 반복하면서 한반도로 들어왔고 그들이 암사동 신석기인들과 만나 문화가 전파되고 새로운 문명이 일어났다. 암사동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는 현존하는 빗살무늬 토기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단계로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토기를 이해할 수 있는 독보적인 문화유산이다. 암사동 유적인 빗살무늬 토기 문화는 신석기인들이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탄생시킨 생활 도구 기능에 예술을 접목한 문화적 생활유산이라는 점에서 탁월한 가치가 있다.

“인류의 획기적인 발명품인 토기, 신석기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새로운 아이콘이었다.”

신석기인들의 지혜를 엿보면, 흙에 물을 더해 빚으면 형태를 갖춘 그릇을 만들 수 있다는 신석기인들의 발견, 흙으로 빚은 그릇을 불에 구우면 더욱 견고해진다는 화학적 발견, 화학과 물리적 원리를 터득한 인류의 획기적인 발명품이다. 소중한 식량의 저장소, 채집과 농경으로 얻은 식량을 보관하는 저장 용기 역할을 했다.

암사동 신석기인들의 숨결이 과거에서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적지의 역할일 것이다. 서울시 강동구는 암사동 선사 유적지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선사시대를 주제로 지역축제도 열고,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한 일련의 노력을 하고 있다. 이제 유적의 보존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 전통을 오늘에 되살려 6000년 전 암사동에 정착한 빗살무늬토기인들의 꿈이 그러했듯이 미래를 위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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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혜 2018-10-31 13:32:29
빗살무늬 토기가 이런 의미가 있었네요. 유익한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