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같은 의병의 역사, ‘션샤인’으로 부활하다
불꽃같은 의병의 역사, ‘션샤인’으로 부활하다
  • 민성욱 박사
  • k-spirit@naver.com
  • 승인 2018.07.2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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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성욱 박사

“저물어 가는 조선에 그들이 있었다.

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이다. 원컨대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포스터 내용이다.

민성욱 박사
민성욱 박사

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구한말 격변의 시대에 등장하는 이름 모를 의병들의 이야기다. 한 명의 시청자로 흥미로운 역사 드라마를 보면 살아있는 우리 역사 이야기를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제대로 역사고증 없이 방영되면 자칫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게 되어 역사인식의 오류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염려가 되기도 한다.

역사 고증 문제로 논란도 있었지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그 동안 어느 드라마에서도 다뤄지지 않았던, 1900년 전후 격변의 조선을 살아간 의병들의 삶을 담고 있다. 대한제국의 주권을 찾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이름 모를 의병들, 그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당시에도 선택지는 있었다.

애국의 길 vs. 매국의 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묻고 있다. 당신이 그 시대에 살고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도 여전히 요청되고 있다. 과거 같지만 현재이고, 현재인 것 같지만 미래를 우리는 이야기 한다.

‘션샤인’은 Sunshine의 1900년대 표기법이다. 왜 제목을 <Mr. Sunshine>으로 했을까?

아마도 암울했고, 나라와 개인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그 누구도 예상하기 힘들었으며, 그래서 희망이 없어 보였던 시기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 한 번의 불꽃을 피우기 위하여 목숨을 걸어야 했던 그들의 이름은 의병이었다. 의병들의 삶은 불꽃과 같았다. 타고 나면 재만 남지만 그들은 기꺼이 불꽃같은 삶을 선택했고 그렇게 연기처럼 사라져 갔다. 어쩌면 그러기에 더 빛나고 찬란하다.

빛이 없으면 어둠도 없는 법이다. 시대의 명암이 엇갈리는 길목에서 그들이 선택한 숭고한 정신과 위대함은 역사가 되었고 오늘을 있게 했으며 밝고 찬란한 미래가 되어 주고 있다.

기억은 지워져도 사랑은 지워지지 않는다고 했다. 기록은 안 되었어도 의병들의 역사는 지워지지 않는다. 처음부터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워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잊지 못할, 잊어서는 안 될 의병들의 역사이다.

1866년 병인양요, 1871년 신미양요 이후 쇄국정책이 강화되었지만 흥선대원군이 물러난 후 1876년 조일수호조규(일명 ‘강화도 조약’)로 개항이 추진되고 일본의 야욕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시기를 맞이한다.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고, 결국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조선 침탈은 이미 예정된 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급기야는 조선의 궁궐 내에 일본군대와 낭인들이 침입하여 조선의 국모(‘명성황후’)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난다. 일본은 조선인들의 내부 소행으로 몰아갔지만 일본의 극우단체인 '흑룡회'와 일본의 미우라 공사가 치밀하게 준비해서 조선의 궁궐을 침략한 사건이며 그 배후에는 일본 정부가 있었다. 이때가 1895년 을미년이었다. 을미년에 일어난 의병이 을미의병이며 항일 의병의 첫 출발점이 되었다. 그 이후 1905년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실질적으로 나라의 주권이 상실되자 을사의병이 일어났고, 1907년 정미년에 고종이 강제퇴위 되고 군대해산 등이 이루어지자 정미의병이 일어났다.

이렇게 대한제국 말에 일어난 항일 의병의 역사가 1909년 만주 하얼빈역에서 안중근 장군이 이토오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대일항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게 하였으며, 1919년 기미년 독립선언과 함께 3.1 항쟁이 일어나 대일항쟁의 기폭제가 되어 주었고, 3.1 항쟁이후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어 독립군 및 광복군의 대일항쟁의 역사로 이어졌다.

영국 종군기자 존 맥켄지는 의병들을 만나기 위하여 1907년 접전지에 들어가 강원도 의병들을 직접 만났다. 그때 만난 의병은 모두 그저 평범한 농부였고, 하루 세끼 가족의 끼니를 걱정할 만큼 넉넉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고, 그들의 당당하면서도 숭고한 정신에 감명 받은 존 맥켄지는 그들과 만난 기록들을 훗날 책으로 펴내기도 하였다. 그들 중 한 명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하지만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 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1907년 일제는 고종을 쫓아내고 군대를 해산하며 행정 및 사법권을 강탈했다. 그러나 어떤 왕족도 나서지 않았고, 고관대작들은 매국행위에 앞장섰다. 나라가 위태로운 순간, 이름 없는 백성들의 목숨을 건 구국의 전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는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무수한 의병들이 등장했다. 이러한 의병들의 숭고한 희생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이 바로 의병들의 역사와 인물들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정부는 순국선열의 날을 11월 17일로 정해 국가와 민족을 위해 헌신하신 그분들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있다. 이날은 대한제국의 국권이 실질적으로 침탈당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로써 많은 분들이 이때부터 순국하셨기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현재의 순국선열의 날을 법정 기념일로 제정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대한민국정부가 1997년 정부기념일로 제정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대일항쟁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오늘을 있게 한 사람들, 그러나 오늘이 잊은 사람들. 우리의 역사가 자랑스럽게 느껴지게 하려면 그들을 잊어서도, 잊혀 져서도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을 기억하는 것만큼 우리의 역사도 발전할 것이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여주인공 ‘애신’이 말한 것처럼 “어차피 피었다 질 꽃이라면 제일 뜨거운 불꽃이고 싶다.”

* 본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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