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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건국시조의 어머니 정견모주, 혼인동맹을 맺다[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천손문화연구회 가야문화유산답사기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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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1.21  18:00:11
글/사진=강나리 기자  |  k-spirit@naver.com

한반도에서 500여 년의 역사를 이룬 ‘가야’. 삼국시대라는 시대구분으로 인해 5백 년이 넘는 가야는 있는 듯 없는 듯 미지의 영역에 머물렀다. 철갑기마무사와 철갑을 두른 말과 같은 군사유물로 대표되는 가야는 오랜 역사 속에서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연맹체로 존재했다가 끝내 신라에 복속되었다. 그들은 누구이고, 왜 통일국가로 나가지 못했을까?

 

지난 12월, 경상남도와 경상북도에 위치한 대가야, 금관가야, 다라가야, 아라가야 고분군과 경남 산청 깊은 골짜기에 7층 적석 피라미드 왕릉을 남긴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릉을 답사했다.

 

이날 답사는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정경희 교수가 이끌고, 대학원 천손문화연구회 석박사 과정자들과 함께 했다. 30대부터 60대까지 나이도 다양하고, 학교 교사, 역사단체 연구위원, NGO활동가, 번역가 등 사회 경험도 다채로웠다.

 

   
▲ 동서와 남북으로 뻗은 산줄기를 따라 고분들이 연이어 있다. 남북으로는 비교적 큰 고분이, 동서로는 작은 고분이 있다.


산등성이를 따라 수많은 고분군을 남긴 가야의 유적지 답사를 떠나는 날은 겨울임에도 햇볕이 따뜻했다. 답사버스는 동대구역에서 50분 남짓 첫 답사지인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에 있는 지산동 고분군으로 향했다. 버스를 스쳐가는 풍경은 산자락을 따라 앙상한 나뭇가지와 쓸쓸한 들판으로 인해 스산한 느낌이 강했다.

 

버스 안에서 고령 대가야의 건국과정과 그들의 선조가 되는 고조선과 부여족에 관한 신채호 선생의 연구 등 대학원생들이 준비한 발표가 있었다. 각자 준비한 방문지와 관련된 역사와 구전설화, 기록들에 관한 이야기가 앞으로 방문할 곳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 초가 지붕을 닮은 대가야 박물관의 지붕.(위) 대가야박물관의 뒷편으로 지산동 고분군이 펼쳐져 있다.(아래)

 

드디어 고령 대가야 박물관 앞에서니 초가로 된 움집과 다락 창고가 소담하게 맞이했다. 움집 처마를 형상화한 대가야 박물관 입구가 정겨웠다. 입구를 지나 완만한 산등성이까지 이어진 길을 따라 올라가 보니 동서와 남북으로 이어진 산줄기를 따라 크고 작은 대가야의 700여 기 고분들이 웅장하게 펼쳐졌다.

 

고분군으로 가는 길, 첫 마중은 가야 공통의 건국설화인 정견모주 이야기를 담은 안내문이었다. 기자에게 다소 낯선 이름인 정견모주는 누구일까?

 

“가야산의 산신, 정견모주(正見母主)는 하늘신 이비가(夷毗訶)와 만나 두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형 뇌질주일(惱窒朱日)은 대가야의 시조인 이진아시왕(伊珍阿豉王)이 되고, 동생은 뇌질청예(惱窒靑裔)로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首露王)이 되었다.”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최치원의 <석이정전>을 인용해 대가야의 건국신화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 가야 건국시조의 어머니 정견모주의 표준영정. 고령시가 2014년 정견모주 영정사업을 추진하여 문화체육관광부 영정동상심의위원회에서 고증 및 수정작업을 거쳐 2016년 최종 지정받았다.

 

그러나 박물관에서 안내하는 건국신화는 조금 더 정서적이다. “2,000여 년 전 가야산 깊은 골에 한 여신이 살고 있었다. 성스런 성품과 아름다운 용모, 착한 마음을 지닌 산신, ‘정견모주’였다. 그녀는 밤낮으로 정성을 다해 백성들이 살기 좋은 터전을 마련하려는 일념에 하늘에 소원을 빌었다. 어느 봄날 이를 가상히 여긴 하늘신 ‘이비가’가 오색 꽃구름 수레를 타고 가야산 중턱 가마바위에 내려앉았다. 산신과 하늘신은 물 맑고 공기 좋은 산 속에서 감응하여 옥동자 둘을 낳았는데, 형은 대가야의 시조 ‘이진아시왕’이 되었고, 아우는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

 

이 설화를 뒷받침하는 유적들이 있다. 정견모주가 천신 이비가와 만나 인연을 맺었다는 장소로 가야산 만물상 끝자락에 ‘상아덤’이 있다. 상아는 ‘여신’, 덤은 ‘바위’를 뜻하며 가마바위라고도 불린다. 이번 답사에는 빠졌으나, 자료를 찾아보니 뾰족한 화살촉 같은 바위가 땅에 있는 바위에 꽂혀 있는 듯 대단히 이색적인 형태이다.

 

눈에 띄는 것은 대가야의 후손인 이정, 순응이 가야산신 정견모주를 기려 세운 사당을 모태로 중창한 곳이 가야산 자락의 해인사라는 것이다. 이정과 순응에 관해서는 신라 대학자 최치원이 기록한 승려의 전기인 <석이정전>과 <석순응전>에 기록했다고 하는데 현재 전해지지는 않는다.

 

고려 대몽항쟁기 제작한 팔만대장경을 보유한 대표적인 법보사찰인 해인사의 대웅전으로 가는 우측으로 국사단(局司壇)이란 이름붙인 산신각이 있다. 가야산 산신으로 정견천왕(正見天王)이라는 남성 산신이 모셔져 있었고 현재 국사단에는 여성 산신도가 걸려있다. 아마도 부계중심 사회,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남성 산신으로 바뀌었다 다시 복구된 것이 아닐까.

 

정경희 교수는 “정견모주 신화를 볼 때 어떤 과거의 역사가 녹아서 이렇게 남게 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고조선 시대 문화 중심은 대륙이고, 한반도 남부는 문화의 변방지역으로 토착세력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 한나라에 밀려 선진문물을 보유한 고조선 부여계 유민들이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면서 주로 토착세력과 혼인정책을 통해 결합하여 국가를 세웠다. 그 과정에서 박혁거세 신화, 김수로왕 구지가 신화, 정견모주 신화 등 수많은 건국신화가 탄생했다.”며 “그 시기를 서기전 2~1세기, 빠르면 서기전 3세기”로 추정했다.

 

   
▲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정경희 교수는 "정견모주 신화를 볼 때 어떤 과거의 역사가 녹아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며 "가야의 역사는 북방 천신세력, 즉 천손족과 토착세력의 연합과 결합의 관점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한반도 남부에서 큰 고분과 철기, 기마무구가 나오며 문화 수준의 격이 달라진 것을 그 근거로 보았다. 일본도 서기전 3세기부터 3세기 사이에 야요이 시대를 맞으며 문화가 현격하게 올라갔는데 이 또한 이주세력의 영향으로 평가한다.

 

마찬가지로 신라의 경주 나정에서 거대한 솟대가 나온 것도 서기전 2세기경이며, 부여계 계통의 고분도 많이 나타난다. 이주의 역사 속에서 유물 유적이 바뀌고 신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신라의 뿌리를 “조선의 유민이 와서 산골짜기에 나뉘어 육촌을 이루었다”고 밝혔다.

 

가야의 토착세력인 정견모주와 천신이 감응을 했고, 신라도 고조선의 유민이 내려와 세웠는데 다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그 하늘은 무엇일까? 바로 고조선 부여계인 것이다. 정 교수는 “학자들도 신라왕실의 뿌리는 부여계라고 한다. 유물로 보면 부여계라고 하는데 연구가 거기에 머물러 있다. 유물을 가지고 내려온 세력이 어디를 거쳐 어떻게 내려왔는지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가야 역사도 북방 천신세력, 즉 천손족과 토착세력의 연합과 결합의 관점에서 재해석이 되어야 한다. 부여족의 이동을 계기로 가야의 역사에 큰 전기가 일어났다. 가야 연구에서 북방세력과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 앞으로의 연구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경희 교수는 이어서 “고령에서는 2014년 대가야의 시조 정견모주의 표준영정 작업을 추진해 고증작업을 거쳐 제작하고, 건국과정을 알리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경주에도 성모산(聖母山)이 있는데, 신라 초기의 역사인 박혁거세의 어머니, 파소신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 대가야의 지산동 고분군을 둘러보는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천손문화연구회 답사팀.

 

정견모주 설화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대가야를 세운 이진아시왕이 첫째 아들이고 금관가야를 세운 수로왕이 둘째아들이란 점이다. 반면 금관가야의 건국설화에서는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만약에 내놓지 않으면 구워 먹으리.” 라는 구지가를 불러 하늘에서 내려 받은 황금상자 안 6개의 황금알 중 첫 번째 알을 깨고 나온 것은 수로왕이었다.

 

6가야 역사의 전반기에는 금관가야가 종주국이었다. 399년 가야 연맹이 왜와 연합해 신라를 패망의 위기로 몰았다. 400년 신라를 도와 원정에 나선 광개토태왕에 의해 금관가야는 지배력을 잃었다. 이후 5세기부터 150여 년간 후기 가야연맹은 대가야가 주도했다. 두 신화의 차이는 가야연맹 종주국의 정통성에 관한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천신족으로 상징되며, 강인한 기마문화를 이끌고 신천지를 찾아 한반도 남부로, 다시 왜로 진출한 그들은 누구일까? 그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답사 일행은 고분전시관과 박물관으로 이동했다.

 

   
▲ 지난 12월 9일~10일 경상북도와 경상님도 일대 가야문화유적지 연구를 위해 첫 방문지로 경북 고령시 대가야 지산동 고분군을 찾은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천손문화연구회 답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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