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79호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5세기 말부터 6세기 초 사이에 조성된 대가야 시대 소형 석곽묘 10기와 석실묘 1기, 토제방울 1점과 소형 토기, 화살촉, 어린아이 두개골 편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소형 석곽묘 10기와 석실묘 1기 중 낮은 곳에서 확인된 제1호 석실묘의 경우 6세기 초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는데, 고령 지역에서 발견된 가장 이른 시기의 횡혈식 무덤이다. 대가야 시대의 묘제는 수혈식(구덩이식)에서 횡혈식(굴식)과 횡구식(앞트기식)으로 바뀌는데, 이러한 변천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횡혈식(굴식, 窟式) 묘제는 고분(古墳) 내부 구조를 만드는 방식의 하나로, 석재를 이용하여 널을 안치하는 방을 만들고 널방 벽의 한쪽에 외부로 통하는 출입구를 만드는 방식이다.

‘가야고분군’의 하나인 지산동 고분군은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발굴조사 중이다. 사진은 토제방울이 출토된 제5-1호 석곽묘. [사진=문화재청]
‘가야고분군’의 하나인 지산동 고분군은 지난 2월부터 현재까지 발굴조사 중이다. 사진은 토제방울이 출토된 제5-1호 석곽묘. [사진=문화재청]

어린아이가 묻힌 대가야 소형 석곽묘 규모는 길이 165cm, 너비 45cm, 깊이 55cm정도로, 조성 당시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당시 유물의 부장양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안에는 5세기 말경 조성된 토제방울 1점과 소형 토기 6점, 쇠 낫 1점, 화살촉 3점, 곡옥(曲玉) 1점, 어린아이의 치아와 두개골 등이 함께 출토되었다. 

특히, 직경 5cm가량의 토제방울은 거북과 관을 쓴 남자, 춤추는 여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6개의 독립적인 선각그림이 방울 표면에 새겨져있다.

각각의 그림은 고려 문종 때인 1075~1084년에 편찬된 가락국에 대한 역사서인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나오는 건국신화의 내용과 부합된다. 그 동안 문헌에서만 나오던 건국신화의 모습이 출토된 유물에 투영되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토제방울에 새겨진 그림을 통해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건국신화는 더 이상 금관가야만의 전유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졌다.

직경 5cm가량의 토제방울에 거북과 관을 쓴 남자, 춤추는 여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6개의 독립적인 선각그림이 방울 표면에 새겨져있다. 새겨진 선각그림은 가야의 건국신화를 상징하고 있다고 예상된다. [사진=문화재청]
직경 5cm가량의 토제방울에 거북과 관을 쓴 남자, 춤추는 여자, 하늘을 우러러보는 사람 등을 형상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6개의 독립적인 선각그림이 방울 표면에 새겨져있다. 새겨진 선각그림은 가야의 건국신화를 상징하고 있다고 예상된다. [사진=문화재청]

알에서 시조가 태어났다는 난생설화(卵生說話)는 가야지역 국가들의 공통적인 건국신화에 담긴 핵심요소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토제방울에 새겨진 그림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여러 가야의 건국신화를 재조명할 증거자료로서, 우리나라 고대사 특히 가야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무덤과 유물들은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 관한 학술정보 확대와 함께 대가야는 물론 모든 가야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경상북도와 문화재청은 '가야고분군'을 세계유산센터에 세계유산 잠정목록으로 신청했다. 이러한 사업추진의 일환으로 고령군은 ‘가야고분군’의 하나인 지산동 고분군을 지난 2월부터 발굴조사 중이다. 

고령군(군수 곽용환)은 20일 오후 2시 발굴 현장에서 유물들과 현장을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