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

14.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4)
 

오르테가는 《대중의 반역》 14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 5에서 당시 유행하던 ‘유럽의 몰락’이라는 주제를 검토한다.

그는 먼저 ‘유럽의 몰락’을 주장하기 시작한 이들이 바로 유럽인임이 놀랍다고 이야기한다. 즉 구대륙 바깥에서는 아무도 유럽의 몰락을 하지 않을 때 독일과 영국, 프랑스의 일부 사람들이 “우리가 몰락하기 시작한 게 아닐까?”라는 암시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이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이제는 모든 사람이 유럽의 몰락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르테가는 이 ‘유럽의 몰락’이 구체적이고 확실한 자료가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그러면서 ‘유럽의 몰락’을 이야기하는 것은 오늘날 유럽 국가들이 직면한 전반적인 경제적 어려움때문일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러한 어려움이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구대륙은 지금까지 경제분야에서 더 큰 어려움도 극복해왔기 때문에 이 또한 문제가 안 된다고 오르테가는 본다.

무엇이 문제인가? 오르테가는 독일인 또는 영국인의 정신 상태를 규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능력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자신들은 전대미문의 잠재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느끼면서도 그것을 실현하려고 할 때 치명적인 장애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오르테가는 “독일과 영국, 프랑스 경제의 치명적인 장애는 각 국가의 정치적 국경이다. 진정한 어려움은 이런저런 경제 문제에 있는 것이 아니고 경제력을 가동해야 할 사회생활 형태가 그에 걸맞지 않다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그는 “최근 유럽의 활력을 무겁게 짓누르는 위축감과 무력감이 현재 유럽이 지닌 잠재력의 규모와 이 잠재력을 발휘해야 할 정치조직의 규모 사이의 불균형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로테가에 따르면 이렇게 대륙의 정신을 짓누르고 있는 비관주의와 무기력증을 큰 날갯짓을 하다가 새장의 철창에 부딪쳐 상처를 입는 긴 날개의 새가 느끼는 그것과 아주 흡사하다. 유럽이 각각 소국가로 나누어져 있어 문제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태가 정치뿐만 아니라 지적인 분야, 국내 정치에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민주적 제도의 권위 상실, 의회가 권위를 상실했다는 주장은 믿어서는 안 되며 그것을 운영할 줄 모르며, 국가에 대해 어떠한 환상도 갖고 있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그래서 “잘 알려진 의회의 권위 상실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보면,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시민들이 자기 국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경제, 정치, 지식 등의 기획에서 자국의 한계에 부딪치자 유럽인은 그 기획들-즉 삶의 가능성과 생활양식-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규모에 비해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래서 영국인이나 독일인이나 프랑스인은 자신이 변방인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 점을 오르테가는 “유럽을 괴롭히는 몰락에 대한 느낌의 진정한 기원”이라고 생각한다.

오르테가는 자동차산업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 미국산 자동차의 우수성이 미국인들의 특별한 자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단순히 미국 회사가 아무 제약 없이 1억2천만 명에게 자동차를 공급할 수 있다는 데서 비롯한다. 이는 유럽의 자동차제조업자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오르테가는 유럽의 한 자동차 회사가 유럽의 전체 국가들과 그들의 식민지와 보호령으로 이루어진 상권을 갖고 있다면, 즉 5억 또는 6억의 인구를 고객으로 한다면 미국의 자동차보다 우수하고 더 저렴할 것이라고 말한다.

오르테가는 유럽은 국가 차원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아지는데, 각각 소국가로 나누어져 있는 게 문제라는 시각이다. 여기서 유럽의 통합, 유럽연합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그리고 오르테가는 유럽이 처한 진정한 상황을 이렇게 본다.

“이제 유구하고 화려한 역사는 모두 성장하여 새로운 단계로 유럽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과거로부터 살아남은 왜소한 구조가 현재의 확장을 저해하고 있다. 유럽은 소국가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떤 의미에서, 국민의 이념이나 정서는 유럽의 가장 특징적인 발명품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자체를 극복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것은 다가올 미래에 상영된 거대한 드라마의 줄거리이다. 유럽이 과거의 잔재에서 벗어날 것인가, 아니면 영원히 그것의 포로가 될 것인가? 일찍이 역사상, 위대한 문명이 전통적인 국가 개념을 바꾸지 못해 사멸한 예는 이미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