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 톺아보기]우리 시대 공포의 원인은 대중의 폭력적인 도덕적 반란
[명저 톺아보기]우리 시대 공포의 원인은 대중의 폭력적인 도덕적 반란
  • 정유철 기자
  • npns@naver.com
  • 승인 2022-02-21 0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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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 (3)

1부 대중의 반역

2 역사 수준의 상승(상)

오르테가는 1부 2 역사 수준의 상승에서 ‘대중의 반역’은 현대문명의 역사상 완전히 새로운 것이어서 현대문명의 발전과정에서 유사한 현상이 나타난 적이 없다며 만일 비슷한 것을 찾으려고 한다면 완전히 다른 세계, 즉 고대 세계로 들어가 그 멸망의 시기까지 파고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로마제국이다.

"로마제국의 역사 또한 대중제국의 봉기 역사이며 대중이 소수 지배자들을 흡수, 제거하고 그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또한 당시에도 ‘만원’, 밀집의 현상이 일어났다. 그래서 슈펭글러가 매우 잘 고찰한 것처럼, 로마제국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거대한 건물을 축조할 필요가 있었다. 대중의 시대는 거대함의 시대이다."

대중이 완전한 사회권력의 자리를 차지하면 눈에 보이는 현상이 ‘만원’ ‘밀집’이고 이에 더하여 ‘거대’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늘 만원인 대중을 수용하려면 도시가 커져야 하고 건축물도 당연해 대형화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도시에 대중이 밀집하는 과정이 초래한 비극은 그런 응집이 진행되는 동안 농촌 주민의 유출이 시작되고 제국 인구의 절대적 감소가 일어났다고 오르테가는 설명한다. 결국 로마제국은 대중의 반역에 의해 멸망했다고 본다. 그래서 고대 세계에 들어가 그 멸망의 시기까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슈펭글러(오스발트 슈펭글러, 1880~1936)는 독일의 사상가, 철학자로 유명한《서구의 몰락》(1918~22) 두 권을 펴냈다. 나중에 보겠지만 오르테가는 슈펭글러의 견해에 동조하지 않고 반박한다.

'대중의 반역' 저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대중의 반역' 저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대중 반역의 사례를 로마제국에서 찾은 만큼 이제 대중 반역의 내부를 파헤칠 차례이다. 이 장 서두에서 대중 반역의 특징을 '야만성'이라고 한 것을 여기서 다시 한 번 언급하여 '야만'을 호출한다.

“우리는 대중의 야만적인 지배하에 살고 있다. 정말로 그렇다. 나는 두 번이나 이 지배를 '야만'이라고 불러, 이 평범함의 신에게 제물을 바쳤다.”

이렇게 오르테가는 대중의 지배는 야만적임을 강조하여 각인시키고 대중을 ‘평범함의 신’이라고까지 부른다. 바로 앞 장에서 “대중은 평균인”이고 “우리 시대의 특징은 평균인이 자신의 평범함을 알면서도 평범함의 권리를 대담하게 주장하고 어디에서나 그것을 강요하려고 한다는 점”이라고 한 지적을 상기하면 바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신(神)’라고 부른 것은 그만큼 두려운 존재임을 시사한다. 그러니 더욱 깊이 잘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귀족주의적 역사해설

그런데 오르테가는 깊이 분석하기에 앞서 자신의 귀족주의적 역사해설관을 소개한다. 대중사회를 분석하는 데도 이를 기준으로 분석하겠다는 의미이다.

"나는 지금까지 인간 사회는 원하든 원치 않든 본질이 언제나 귀족주의적이고, 심지어 귀족주의적이면 귀족주의일수록 사회이고, 귀족주의적인 것을 그만두면 사회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해왔고, 날이 갈수록 그러한 확신이 더해지고 있다. 물론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사회에 관한 것이지, 국가에 관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귀족’은 계급에 의한 귀족, 세습 귀족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프랑스 혁명 시기 대중의 봉기에 찡그렸던 베르사유 귀공자들은 귀족주의적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그들은 숭고했던 귀족사회의 사망이며 부패라고 비판한다. 또 상류사회의 사교계에서 누구를 초대하고 초대하지 않는 것으로 살고 있는 소수의 집단도 귀족이 아니다.

진정한 귀족은 어떻게 하는가? 오르테가에 의하면 귀족의 진정한 사명을 아는 사람이라면 대중의 봉기 광경에 자극을 받아 자신을 불태운다. 마치 조각가가 대리석 원석을 바라보는 것처럼. 진정한 귀족의 사명과 미덕은 헤라클레스가 한 어려운 일과 같다고 오르테가는 본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여긴 열두 가지 어려운 일을 모두 해낸 영웅이다. 헤라클레스가 한 모험과 같은 일을 할 만한 이들이 사회권력의 자리에 있어야 사회가 유지된다는 암시이다. 진정한 귀족의 삶에 관해서는 1부 '7 고귀한 삶과 평범한 삶, 또는 노력과 게으름'에서 자세히 논한다. 귀족이라는 말이 거슬리면 ‘엘리트’로 바꾸어 인간 사회는 본질이 엘리트주의적라고 보면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귀족주의적 입장에 있기에 오르테가는 마드리드 사교계의 꽃인 젊고 현대적인 귀부인이 한 말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초대 손님이  800명이 못 되는 무도회는 정말 견딜 수 없어요."

이 말에서 오르테가는 대중의 행동양식이 현대 생활의 모든 면에서 승리를 거두고 ‘행복한 소수(happy few)’를 위해 마련해둔 마지막 안식처에서조차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알았다. 대중이 ‘행복한 소수’마저 위협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1장에서 본 것처럼 이전에는 ‘모든 사람’은 통상 대중과 뛰어난, 전문자질을 갖춘 소수자의 복합체였는데, 이제는 '모든 사람'은 오로지 대중뿐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행복한 소수(happy few)라는 말은 셰익스피어의 사극 《헨리5세 》 4막 3장 왕이 성 크리스핀 축일에 한 대사에서 나온 말이다. 다섯 배나 많은 프랑스군과의 전투를 앞두고 웨스모얼랜드가 "오, 지금 여기에, 고국에 남아 오늘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 중에 만 명만 더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하자 헨리왕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행복한 소수는 한 형제들이다(we happy few, we band of brothers). 오늘 나와 함께 피 흘리는 자는 영원히 나의 형제가 될 것이다. 아무리 비천한 신분일지라도 이제 고결한 대우를 받을 것이다. 지금 잉글랜드의 침대에서 편히 놀고 지내는 이들은 오늘 이 자리에 함께 있지 못했던 것을 후일 자신에게 내린 저주로 한탄할 것이다. 성 크리스핀 축일에 우리와 같이 싸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용감하게 나서지 못했음을 수치로 여길 것이다."

이 행복한 소수는 헨리왕과 함께 1415년 아젱쿠르 전투에서 프랑스군과 싸워 승리했다. 이들이 행복한 것은 왕의 군대로 왕과 함께 싸우고 왕의 형제가 되고 영원히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Happy’는 운좋은(lucky), 행운의(fortunate)을 의미한다. 오르테가가 무도회에 주로 참석하는 이들이 귀족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행복한 소수'라 한 것으로 보인다. 운좋게 귀족으로 태어난 이들말이다.

대중의 폭력적인 도덕적 반란

이렇게 압도하는 대중의 지배에 직면하여 오르테가는 우리 시대를 해석할 때 대중의 실질적인 지배 아래 은폐되어 있는 적극적인 의미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도, 그리고 대중의 지배를 아무 두려움 없이 기쁘게 수용하는 것을 모두 배격한다. 대중의 지배가 가공할 뿐 아니라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운명에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모든 것을 압도하는 대중의 폭력적인 도덕적 반란이다. 이것은 모든 운명이 그러하듯 압도적이며 제어할 수 없으며, 믿을 수 없다. 이것은 우리를 어디로 이끌고 가는 것일까? 그것은 절대악, 아니면 있을 수 있는 선일까? 그것은 거대하여 우리 시대 위에서 거인처럼, 우주의 의문부호와 같이 덮고 있는데, 언제나 형태가 확실하지 않아 단두대나 교수대 같기도 하고 또한 개선문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오르테가는 두 가지 사실을 검토하려고 한다. 첫째, 오늘날 대중은 과거에 소수자의 전유물로 여기던 것과 대부분 일치하는 중대한 역할들을 하고 있다.

둘째, 동시에 이 대중은 소수자에 온순하지 않다. 이들은 소수자에게 복종하지 않고 따르지 않으며 존경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소수자를 밀어내고 그들을 대신한다. 이것은 대중 반역의 결과이자 특징이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첫째에 관해 이후 집중 분석한다.

법적, 사회적 기술을 누리는 대중

오늘날 대중은 과거 소수자의 전유물로 여기던 것들을 이용하고 있다. 전에는 소수자만의 자산이었기 때문에 세련된 것으로 평가되었던 것들에 오늘날에는 대중이 필요성과 욕구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1820년 파리에는 욕실이 있는 개인 주택이 10채가 못 되었다. 오늘날에는 모든 개인 주택에 욕실이 있다. 이뿐만이 아니고 오늘날 대중은 전에는 특수한 훈련을 받았던 이들만이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을 많이 알고 있고 상당 부분 이용하고 있다.

오르테가는 그보다도 훨씬 중요한 법적, 사회적 기술에 관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는 소수자가 큰 역할을 했다.

18세기에 어떤 소수자 집단은 모든 개인은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그 사실만으로, 또한 어떠한 특별한 자격이 요구되지 않고도 기본적인 정치적 권리, 즉 인간과 시민의 권리(인권과 시민권)를 갖고, 더 나아가 엄격히 말해 그러한 권리는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며 실재하는 유일한 것임을 알았다. 이것은 처음에는 소수만이 가진 단순한 이론, 사상이었는데, 곧 우수한 소수자들은 이 사상을 실천하고, 이를 실현하도록 요구하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대중은 어떠한 상황이었나? 1장에서 오르테가는 “사회는 언제나 소수자(minorías)와 대중이라는 두 요소로 구성된 역동적 통일체이다”라 한 점을 염두에 두고 보자.

"19세기 내내 대중은 이런 권리들을 하나의 이상으로 보고 점차 열광하였지만, 권리로는 느끼지 못하고, 그것을 행사해보지도 않았고 그 효력이 발휘되도록 시도하지 않았다."

오르테가는 19세기의 대중을 가리켜 “민주적인 법률 아래 살면서도 여전히 구체제하에 있는 것처럼 인식하고 살았다”고 지적했다. 이 ‘민중’(pueblo)-당시에는 이렇게 불렀다-은 자신들이 주권자임을 알았으나, 그러나 그것을 믿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대중의 이런 상황은 20세기가 되면서 달라진다. 그 이상은 하나의 현실이 되었다. 사회생활의 외형적인 강령인 법제도 속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의 마음속에서도 현실이 되었다. 각 개인의 이념이 무엇이든, 심지어 그가 반동적, 즉 그러한 권리를 승인하는 제도를 파괴하거나 악용하려고 하는 경우조차도 예외가 아니다.(저자 이탤릭체 강조)

법과 모든 개인의 마음속에 현실이 된 이상은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사상이다. 여기에 더해 개인들의 마음속에 이러한 사상을 보장해주는 사회제도, 즉 법이라는 개인의 외부에서 공공생활에서 권리의 보장과 그 한계를 정한 것까지도 파괴하거나 악용하려는 경우까지도 현실이 되었다. 대중은 권리를 보장해주는 법까지도 파괴할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대중의 이 심리상태는 “기이하다”.

“이 기이한 대중의 도덕적 상황(정신상태)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오늘날 세계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일을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오르테가의 지적이다.

1장에서 말한 초민주주의(超民主主義, hiperdemocracia)하에서 대중은 직접 행동하여 법 밖에서 자신들의 열망과 욕망을 물리적인 압력을 활용하여 강요하는 데 이의 심리적 요인이 대중의 심리상태라고 할 수 있다.18세기부터 2세기에 걸쳐 탁월한 소수자들이 깨닫고 노력하여 제도화한 자유주의와 법에 의한 지배가 그 혜택을 누리게 된 유럽의 대중이 오히려 그 제도를 파괴하려고 하고 있으니 오르테가는 대중의 반역으로 국민, 국가뿐만 아니라 문명에서도 유럽은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고 본 것이 아닐까?(하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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