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대중의 반역

4. 삶의 확장(상)

이 '삶의 확장'에서 오르테가는 대중의 지배와 삶의 수준 상승, 시대의 높이가 의미하는 바는 ‘세계의 확장’, 이와 더불어 ‘생(生), 삶의 확장’이라고 제시한다. 그로 인해 평균인, 즉 대중의 삶도 세계화되었다는 것이다.

“대중의 지배와 삶의 수준 상승, 이것이 보여주는 시대의 높이는 더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사실을 암시하는 징후에 불과하다. 이 사실은 단순 명백하여 이상하고 믿을 수 없기까지 하다. 그것은 바로 세계가 갑자기 더 확장되고 세계와 더불어 그리고 세계 안에서 생, 삶 자체도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삶이 사실상 세계화되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려는 바는 오늘날 평균인의 삶이 세계 전체와 관련되며, 각 개인은 언제나 전 세계와 더불어 생활한다는 점이다.”

공간의 확장

그리고 먼저 세계의 확장을 ‘공간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소개한다. 즉 1년여 전 세비야인들은 매시간 신문을 통해서 북극 탐험 장면을 추적할 수 있었다. 이제 지구상의 모든 지역이 지리적으로 한정된 각자의 장소에 갇혀 있지 않고, 지구상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고, 많은 인간의 생적 작용, 즉 인간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멀리 있는 것이 가까워지고, 부재물(不在物)이 눈앞에 있게 되는” 공간의 확장은 각 개인의 삶의 지평을 믿을 수 없을 만큼 확장하였다.

시간의 확장

세계는 또한 시간상으로도 확장하였다. 즉 선사학(先史學)과 고고학은 상상 속에 존재한 세계에서 광대한 역사적 영역을 발견하였다. 이름도 몰랐던 문명과 제국들이 마치 신대륙처럼 우리의 기억에 더해졌다. 삽화를 게재한 신문이나 영화는 이러한 아득히 먼 세계의 단편을 대중에게 직접 보여주었다.

그러나 오르테가는 이러한 세계의 공간적, 시간적 확장은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단언한다. 물리적인 공간이나 시간은 우주에는 전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에 의해 구성되는 속도도 그 구성요소인 공간과 시간에 못지않게 무의미한 것이지만, 시간과 공간을 소멸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얻는 것은 무엇인가. 오르테가는 “우리는 공간과 시간을 소멸함으로써 오히려 시간과 공간을 살려서 삶에 유용하게 한다”고 말한다. 쉽게 말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후에 우리는 이를 활용하여 삶에 도움이 되게 한다. 구체적으로는 우리는 이전보다도 많은 장소에 갈 수 있고, 더욱 많은 왕래가 가능해졌다. 또한 이전보다 더 짧은 삶의 시간에 더 긴 우주적 시간을 소비할 수 있다.

세계의 실질적 확장

지금까지 세계의 물리적 확장에 관해 살펴보았다면 이제 실질적 확장을 검토한다.

오르테가는 세계의 실질적 확장은 그 크기의 확대에 있지 않고 더 많은 것을 포함한다고 본다. 가장 넓은 의미로 보면 우리가 욕망하고, 시도하고 만들고, 파괴하고, 만나고, 향유하고, 거부하는 것, 모두를 포함한다. 이 모두 생, 삶의 행위를 의미한다. 세계의 실질적인 확장은 삶의 행위의 확장인 것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구매행위를 들어 20세기인과 18세기인이 각자의 시대에서 화폐가치로 환산하여 동일한 비율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하고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의 목록을 비교한다. 현대의 20세기의 구매자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실로 무한대에 가깝다. 오늘날에는 산업의 발달로 거의 모든 상품의 가격이 하락하여 훨씬 더 많은 물건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실제로 구매하기 위해서는 이 상품을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지 가능성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구매행위를 통해 보면 “삶이란 이런 구매의 가능성으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보면 본질적으로 우리의 삶은 매순간,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자신에게 가능한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 삶에는 언제나 다양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중에서 선택, 결단해야 하는 가능성의 문제가 발생한다.

오르테가는 “우리가 살고 있다는 말은 우리가 일정한 가능성의 환경 속에 있다는 말과 같다”고 한다. 그리고 이 선택·결단의 가능성이라는 영역은 보통 ‘환경’이라고 부른다.

“모든 삶은 ‘환경’ 곧 우리를 둘러싼 ‘세계’ 내에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세계’라는 개념의 본래 의미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우리 삶의 가능성을 모아놓은 집적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세계는 우리의 삶과는 별개로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고, 삶의 주변 그 자체이다. 세계는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는 모습, 우리 삶의 잠재력을 나타낸다.”

덧붙이자면 오르테가의 《돈키호테 성찰》(신정환 옮김, 을유문화사, 2017)을 참고해 ‘환경’의 의미를 보면 ‘환경’으로 번역된 circunstancia의 정확한 의미는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들’이다. 오르테가에게 환경이란 나를 직접 둘러싸고 있는 한정된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즉 환경이란 사실상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신체, 심리, 지식 그리고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포함하는 것으로서 ‘상황’의 현상학적 개념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나 자신과 나의 환경이다”라고 말한 오르테가에게 ‘환경’은 그의 철학을 보여주는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이다.

삶의 잠재력 확장

여기서 오르테가가 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삶이 잠재력 측면에서 얼마나 확장되었는지 밝히려는 데 있다. 오르테가가 보기에는 “오늘날의 삶은 이전보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삶의 잠재력 확대는 지적인 면, 직업, 유희의 영역만이 아니다. 체력과 스포츠에서도 알려진 과거의 수준보다 오늘날의 기록이 월등하다. 빈번한 신기록 갱신은 우리 시대에서 인간의 신체조직이 그 어느 시대보다도 우수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과학분야에서도 불과 10년 사이에 우주의 지평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확대하였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이 매우 방대한 공간으로 확장되어, 뉴턴의 낡은 물리학은 그중에서 겨우 작은 다락방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주체적 잠재력의 확장을 의미하는데, 아인슈타인이라는 인간이 뉴턴이라는 인간보다 더 큰 엄밀한 정신과 더 큰 자유로운 정신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오르테가는 이 주체적 잠재력의 확장을 강조한다.

이러한 삶의 잠재력 확대를 대중도 알게 되었다. 바로 대중매체덕분이다.

“영화나 사진, 화보가 평균인의 눈앞에 지구상에서 가장 먼 곳을 보여주듯이 신문이나 대화는 그에게 새로운 지적 업적에 관한 소식을 전해주고, 이는 신기술상품에 의해 확인되며 이 상품을 그는 상품진열장에서 본다. 이 모든 것은 평균인의 뇌리에 현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대중은 세계의 물리적 확장에 관한 것은 영화나 사진, 화보를 통해 알게 되고 신문과 대화를 통해 세계의 정신적 확장에 관해 알게 된다. 여기서 오르테가가 말하고 있는 점은 어디까지 양적 또는 능력적 증대를 말하는 것이지 삶의 질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오르테가는 현대인의 의식과 삶의 특징을 “현대인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더 큰 잠재력이 있다고 느끼고, 대조적으로 과거의 모든 것을 왜소한 것으로 보는 점이다”고 주장한다.

 

4. 삶의 확장(하)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