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

14.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5)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중의 반역자》 2부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 14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 6에서 그리스-그리스-로마 세계에 관해 새로운 시각으로 분석한다. 이 공동체들은 공공 광장을 만들고 그 주위에 농촌과 분리된 도시, 우르브스(urbes, 고대로마의 도시), 폴리스(polis, 고대 그리스의 도시)를 건설함으로써 인류 문화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리스-로마 문명은 들판, ‘자연’ 식물생태계와의 분리를 선택했다. 그들은 들판의 일부에 담을 세워 내부의 유한한 공간과 무형의 무한한 공간을 구분하였다. 이렇게 하여 광장이 탄생하였다. 우르브스나 폴리스는 공지(空地) 즉 포로(foro, 고대 로마시대의 공공광장)나 아고라(agora, 고대 그리스의 공공광장)에서 출발하였다.

폴리스는 원래 주거지가 아니라 시민들의 집회 장소이자 공공 기능을 위해 지정된 공간이었다. 우르브스는 공적인 일을 논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는 새로운 종류의 공간, 아인슈타인의 공간보다도 훨씬 더 새로운 공간이 발명되었음을 의미한다. (아인슈타인은 우주 공간이 휘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아인슈타인은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휘어져서 펼쳐져 있는 공간면 위를 굴러다닌다고 상상했으며, 이것은 중력이 공간과 시간의 만곡에서 유래한다는 아이디어의 시각화였다. 뉴턴의 힘을 부드러운 면의 만곡으로 대체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은 중력에 대해 완전히 새롭고도 혁신적인 그림을 내놓았다.)

이어 국가의 탄생을 설명한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도시란 집 또는 인간 이하 동물의 둥지를 초월한 초대형 집이며 오이코스(oikos, 가(家))보다 더 추상적이고 고차원적인 실체다. 그것은 남녀가 아니라 시민들로 구성되는 폴리테이아(politeia, 고대 로마의 정치체)인 레푸블리카(republica, 고대 그리스의 정치체)이다. 동물에 더욱 근접한 원시적인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이 인간에게 주어졌다. 여기서는 이전에는 단순한 인간에게 불과했던 자들이 최상의 에너지를 발휘한다. 이렇게 하여 도시가, 이어서 국가가 탄생했다.

하지만 오르테가는 “국가란 인간이 선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애써 건설해가야 하는 사회 형태”라는 것을 강조한다. 국가는 유목민이나 부족을 비롯하여 인간의 협력 없이 자연이 만들어낸 혈연에 기초한 사회와는 다르다. 그와 반대로 국가는 혈연으로 소속이 결정되는 자연 사회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시작된다. 혈연 이외에도 다른 자연의 원리, 이를테면 언어를 언급할 수도 있다.

국가란 원래 여러 혈연과 여러 언어의 혼합으로 이루어진다. 국가는 자연 사회를 초월한다. 국가는 혼혈과 다언어 사회이다. 도시는 이렇듯 다양한 민족들의 결합으로 탄생한다. 그리고 동물학적인 다양성 위에 법이라는 추상적 동질성을 세운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국가 탄생 직전의 역사적 상황을 관찰해보면 언제나 소규모의 다양한 집단이 존재하는데, 그 사회 구조는 내부 지향적으로 생활하도록 되어 있다. 이 집단들은 인접 집단들과의 접촉 없이 고립된 상태로 스스로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 각각의 사회구조는 내부적 공존에만 도움이 된다. 그런데 다른 집단과 교류를 하게 되어 그 결과 두 종류의 공동생활, 곧 “내적 생활”과 “외적 생활” 사이에 불균형이 나타났다. 기존의 사회 형태-법, 관습, 종교-는 내적 생활에 도움을 주지만 새롭고 더욱 광범위한 외적 생활에는 장애가 되었다.

이를 극복하려는 것이 국가 건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의 원리는 내부 지향의 사회 형태를 폐지하고, 그것을 새로운, 외부 지향의 생활에 적합한 사회 형태로 대체하는 운동이다.

그런데 오르테가는 국가 건설에는 상상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특정 민족들이 전통적인 생활 형태의 구조를 버릴 능력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구조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국가 건설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국가 건설은 진정한 창조이다. 국가는 절대적인 상상 활동에서 비롯한다. 상상이란 인간이 가진 해방의 힘이다. 한 민족이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은 그 민족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모든 민족에는 국가의 발전에 각각 한계가 있는데, 그것은 자연이 상상력에 부여한 한계이기때문이다.

오르테가가 보기에 그리스-로마인들은 들판의 산재(散在), 곳곳에 있는 들판을 극복하는 도시를 상상해낼 수 있었지만, 그 도시의 성벽에 갇히고 말았다.

그리스-로마의 발상을 훨씬 크게 발전시키고 그들을 도시로부터 해방하고자 한 인간이 있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브루투스로 대표되는 로마인의 상상력 한계가 카이사르를 암살했던 것이다. 고대에서 가장 상상력이 풍부한 인물을 말이다.

오르테가가 이렇게 그리스-로마 역사를 거론하는 것은 오늘날 유럽의 역사 또한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