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대중의 반역

12. 전문주의의 야만

오르테가는 “19세기 문명이 자동적으로 대중인을 낳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개별적인 사례를 통해 대중을 낳는 산출 메커니즘, 생산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오르테가는 “19세기 문명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기술이라는 두 가지 큰 차원으로 정리할 수 있다”고 했다. 이 두 가지 중 기술만을 분석한다. 기술 가운데도 “자본주의와 실험과학의 결합에서 나온 근대의 기술”을 대상으로 하고 과학이 뒷받침하지 않는 기술은 제외했다.

그렇게 살펴본 결과 “오직 유럽의 근대 기술만이 과학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기반에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오르테가는 “유럽의 근대 기술만이 지닌 특성”이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유럽 이외의 기술, 즉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그리스, 로마, 동양의 기술은 더는 넘을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하게 되면 곧바로 퇴보하기 시작한다.

이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유럽의 기술이 유럽 인구의 엄청난 증가를 가져왔다. 유럽 인구 증가에 관해 앞 부분 ‘5 하나의 통계적 사실’에서 거론한 바 있다는 점을 오르테가는 상기시켰다.

“유럽의 인구는 5세기부터 1800년에 이르기까지 1억8,000만명을 넘어선 적이 없었다. 그런데 1800년부터 1914년까지 4억6천만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 정도의 비약적 증가는 인류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기술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더불어 양적인 의미의 대중을 만들어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유럽 인구의 비약적인 증가, 대중의 양적인 증가는 기술과 자유민주주의가 가져온 것이다. 그러나 오르테가는 이러한 양적인 증가보다는 질적인 의미에서의 대중, 나쁜 의미에서 대중도 유럽의 근대 기술이 낳았다는 점에 더 주목한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대중이 “노동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내가 말하는 대중은 하나의 사회계급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모든 사회계급 속에 나타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 시대를 대표하며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듯한 인간의 종류 혹은 인간의 존재 방식을 가리킨다.”

이어 대중이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음을 고찰한다.

오늘날 사회적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 시대에 자신의 정신구조를 밀어붙이는 사람은 부르주아지이다. 부르주아지 중에서도 우수한 계급, 오늘날 귀족으로 여겨지는 사람은 “기사, 의사, 재계인사, 교수 등의 전문가”이다. 이 전문가 중에서도 가장 고도로 그리고 가장 순수하게 전문가를 대표하는 사람은 ‘과학자’이다. 과학자는 유럽인의 정점(頂点)에 있다. 그래서 오르테가는 만일 우주인이 유럽을 방문해서 유럽을 평가하려고 하면 유럽인은 기꺼이 과학자를 소개하고, 우주인은 유럽의 통칙, 즉 ‘과학자’의 일반 유형을 물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과학자가 대중의 전형이라고 오르테가는 말한다.

“따라서 오늘날 과학자는 결과적으로는 대중의 전형인 셈이다. 게다가 그것은 우연이 아니고 각 과학자의 개인적 결함에 의한 것도 아니고 과학문명의 기반 자체가 그들을 자동적으로 대중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즉 과학자를 근대의 원시인, 근대의 야만인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오르테가는 여기서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연구자가 전문화되는 과정을 검토한다.

실험과학은 16세기 말에 시작되었고(갈릴레이), 17세기 말에 체계화되어(뉴턴), 18세기 중엽부터 발전을 시작하였다. 과학의 발전을 위해 과학자들의 전문화가 필요했다. 이것은 과학자의 전문화이지 과학 자체의 전문화가 아니다. 과학은 전문분과적인 것이 아니다. 만약 전문분과적인 것이라면 진정한 과학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과학은 통합되어야 한다. 이를테면 실험과학의 집합명사인 물리학의 체계화에는 통합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물리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통합과는 반대의 성격, 과학자의 전문화가 필요하다. 과학과 관련된 노동은 불가피하게 전문화해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오르테가에 따르면 연구자의 일이 점차 전문화되어 가면서 과학자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연구 영역을 좁히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다른 분야의 과학이나 우주에 관한 통합적 해석과의 접촉을 점차 잃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이 우주의 종합적 해명은 유럽의 과학, 교양, 그리고 문명에 어울리는 유일한 이름이다.

이어 오르테가는 전문화에 의해 세대별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고찰한다.

전문화는 바로 ‘백과전서파’를 교양인이라고 부른 시대에 시작되었다. 백과전서파는 18세기 프랑스 계몽 시대에, 《백과전서, Encyclopédie. 부제는 과학, 예술, 기술에 관한 체계적인 사전(Dictionnaire raisonné des sciences, des arts et des métiers)≫의 집필과 간행에 참가하였던 계몽사상가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그로부터 3세대 만에, 1890년대 세 번째 세대가 유럽의 지적 패권을 쥐는 시기가 되자 우리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유형의 과학자를 만나게 된다. 양식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알아야 할 모든 것 중 오직 하나의 특정 과학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그 과학에서도 자신이 실제로 연구하는 아주 작은 부분에만 정통한 사람이다. 이들은 자신이 직접 연구자로 참여하는 좁은 분야의 밖에 있는 모든 것을 모르는 것을 미덕이라고 공언하기에 이르렀고, 지식 전반에 대한 호기심을 딜레탕티슴(dilettantism)이라고 부른다. 딜레탕티슴은 학문이나 예술을 취미나 도락으로 하는 아마추어수준, 어설프게 아는 지식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을 검토하여 오르테가는 기괴한 사실을 강조한다. 즉 실험과학의 발전이 상당 부분 놀라울 정도로 평범한 인간, 심지어는 평범하지도 못한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즉 근대 문명의 근원이자 상징인 근대과학은 지적으로 특별히 뛰어나지 않은 자들도 환영하며, 그런 사람이 훌륭한 일을 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새로운 과학과 새로운 과학이 지도하고 대표하는 문명 전체에서 가장 큰 이점이자 가장 큰 위험, 즉 기계화에 있다.

"그런데 현실에는 자신의 좁은 시야에 갇혀 있는 그들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 그들이 거의 알지도 못하는 과학을 발전시키고, 그로 인해 그들이 의식적으로 모르고 있는 사상의 총체를 발전시키고 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리고 또 실제로 가능한 것일까? 여기서 다음과 같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의 기괴함을 강조해 둘 필요가 있다. 즉 실험과학의 발전은 대부분 놀라울 정도로 평범한 인간, 범용 이하조차 어떤 인간의 작용에 의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된 원인은 새로운 과학과 새로운 과학이 지도하고 대표하는 문명 전체에서 가장 큰 이점이자 가장 큰 위험이 되는 것, 즉 기계화에 있다."

연구자가 무수히 많기 때문에 과학은 작은 분야로 나눠지고 그 중 한 분야를 맡으면 그 하나에 틀어박혀 다른 것을 돌아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방법의 확실성과 정확성 덕분에 이러한 지식의 일시적·실제적 분할이 가능하다. 연구자는 그러한 방법의 하나를 기계를 조작하듯 다루면 되는 것이지 풍부한 결과를 얻기 위해 그러한 방법의 의미와 원리를 명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벌집 속의 꿀벌처럼 혹은 고기를 굽기 위해 쇠코쟁이를 돌려대는 주방의 하인처럼 자신의 작은 실험실에 틀어박혀 과학 전체의 발전을 뒷받침한다.

이런 과정에서 전혀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창조해낸다. 즉 “전문가는 자신이 연구하는 우주의 극히 미세한 한 분야는 잘 ‘알지만’ 나머지 분야는 전혀 모른다.” 오르테가는 이러한 인간을 가리쳐 “역사상 유례가 없는 유형”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이전에는 인간을 단순히 지식이 있는 자와 무지한 자, 다소나마 지식이 있는 자와 다소 무지한 자로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전문가는 그 두 범주 어느 쪽에도 속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르테가는 전문가를 ‘무식한 유식자’라고 말한다.

“자신의 전문 영역과 무관한 것은 모르기 때문에 유식한 자가 아니고, ‘과학자’로서 미세한 전공 분야는 매우 잘 알기 때문에 무식한 자도 아니다. 우리는 그를 ‘전문가 바보’라고 불러야 할까. 이는 매우 심각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모르는 모든 분야에 관해 무식한 자로 처신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처럼 유식한 자의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전문가는 이렇게 행세한다.

“그는 정치와 예술, 사회 관습, 그리고 다른 분야의 학문에 대해 원시인의 태도, 전혀 모로는 자의 태도를 취하면서, 그러한 태도를 강력하고 빈틈없이 관철하기 위해서 해당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이것이 역설이다). 문명이 그를 전문가로 만들었을 때 그를 자신의 한계에 안주하여 거기서 만족하는 폐쇄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이 자기만족과 자신이 유능하다는 감정은 그를 자신의 전문 분야 이외의 영역까지도 지배하려는 욕망을 부추긴다. 따라서 대중과는 정반대로 뛰어난 자질을 갖춘 최고의 인간일지라도 그는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특별한 자질이 없이 대중처럼 행동한다.”

오르테가는 자신이 대중의 특징으로 거듭 강조한 바 있는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고”, 높은 권위에 따르려고 하지 않는 태도는 바로 전문가에게 완벽하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그들이 오늘날 대중의 지배를 상징하는 동시에 그 지배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그들의 야만성이야말로 유럽을 타락하게 하는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다. 오르테가의 지적이다. 

이 균형 잃은 전문화가 가져온 가장 직접적인 결과로 오르테가는 그 어느 때보다 ‘과학자’가 많은 오늘날 ‘교양인’의 수는 1750년 무렵보다 훨씬 적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문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과학의 진정한 발전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오르테가는 우려한다. 왜냐하면 발전을 유기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과학은 종종 재조정 작업이 필요하고, 이는 통합을 위한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통합은 지식 전체의 광범위한 영역과 점점 더 관계가 복잡해지고 있어 더욱더 어려워진다.

아인슈타인은 통합을 위해 노력을 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물리학은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으며, 그것을 위기에서 구출하는 길은 과거의 것보다 더욱 체계적인 새로운 백과전서파뿐이다는 게 오르테가의 진단이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지난 한 세기에 걸쳐 실험과학의 발전을 가능하게 해 온 전문주의는 만약 더 뛰어난 세대가 실험과학을 위해 더욱 강력한 새로운 용광로를 만드는 일을 맡지 않으면 자력으로 전진할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전문가가 문명이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다.

“전문가가 자신이 종사하는 과학의 내적 생리를 모른다면 그 과학이 존속하기 위한 역사적 조건, 즉 연구자를 계속 배출하기 위해 사회나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더더욱 무지할 수밖에 없다.

최근 과학자를 천직으로 선택하는 자가 감소하고 있는 사실은 문명이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하는 모든 사람에게 우려할 만한 징후다. 하지만 오늘날 문명의 정점에 서 있는 전형적인 ‘과학자’에게는 문명에 관한 이러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과학자 또한 문명이 대지나 원시림과 마찬가지로 단지 거기에 존재한다고 믿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