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저 톺아보기]대중, "다른 모든 것, 우수한 것, 개성 있는 것, 특별한 재능을 갖는 것, 선택된 모든 것을 억압"
[명저 톺아보기]대중, "다른 모든 것, 우수한 것, 개성 있는 것, 특별한 재능을 갖는 것, 선택된 모든 것을 억압"
  • 정유철 기자
  • npns@naver.com
  • 승인 2022-02-14 16: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 (2)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대중의 반역》은 ‘1부 대중의 반역’ ‘2부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1부 대중의 반역 ‘1 밀집의 사실’에서는 대중의 대두, 대중의 정의, 대중 사회의 특징을 다룬다.

1 밀집의 사실

"그것이 좋든 나쁘든, 현재 유럽사회에는 극히 중대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대중이 완전한 사회 권력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다. 대중은 정의에 의하면 자신의 존재를 조율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되며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회를 통치할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사실은 유럽이 현재 국민, 국가, 문화가 최대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위기는 역사상 몇 번 발생한 바 있다. 그 특징과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 그 명칭 또한 잘 알고 있다. 그것을 대중의 반역이라고 부른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이하 오르테가)는 《대중의 반역》 1부 ‘1 밀집의 사실’을 이렇게 시작한다. 이 책에서 현재는 1920~30년대를 의미한다. 여기서만 보면 대중의 반역은 ‘대중이 사회권력’을 차지한 것을 의미한다.

첫 장의 제목이 번역한 책에 따라서는 ‘밀집의 사실’ ‘충만의 사실’ ‘대중의 출현’으로 각각 다르게 옮겼는데 스페인어 원문을 영문으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차이가 발생했다. 스페인어 원문 제목 ‘EL HECHO DE LAS AGLOMERACIONES(밀집의 사실)’을 영문으로는 ‘THE COMING OF THE MASSES(대중의 출현)’으로 번역하였다.

‘반역’ ‘대중’ ‘사회권력’ 용어의 범위

​이어 오르테가는 ‘반역’ ‘대중’ ‘사회권력’ 이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범위를 설명한다. 이런 용어를 보면 먼저 정치적인 의미를 생각하기 쉬운데 오르테가는 오로지 정치적인 의미만을, 또는 1차로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사회생활은 정치뿐만 아니라 동시에, 아니 그 이전에 지적, 도덕적, 경제적, 종교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에는 우리의 모든 집단적 관습, 특히 의복이나 유희의 유행까지도 포함한다. 그러니까 오르테가가 말하는 ‘반역’은 정부나 정치체제를 뒤엎는 뜻보다 훨씬 넓은 의미로 기존 질서, 문화, 문명을 거스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오르테가는 '대중의 반역'을 분석하기보다는 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광경을 제시한다. 그는 대중의 반역을 한 마디로 ‘만원(滿員)’, 즉 밀집의 사실로 명명하고 대중이 밀집한 현상을 묘사한다.

도시, 주택, 호텔, 기차, 찻집, 거리, 저명의사 진료실, 흥행물, 해변-사람들로 붐빈다. 그래서 빈 공간을 찾아야 하는 문제가 이제 날마다 발생한다. 전에 없던 일이다. 이렇게 대중의 출현을 사회현상으로 소개하고 양적으로 접근한다.

이어 오르테가는 밀집의 사실이라는 표층을 찔러 심층을 살펴보고 놀란다. 왜?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군중(muchedumbre), 문명이 만들어낸 장소와 시설을 차지한 군중이다. 이런 일이 전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현상이 지금 일어났는가? 변화가 있었다! 오르테가는 이 변화에 주목하였다.

문명이 만들어낸 장소와 시설을 차지한 군중은 그 이전에는 어떻게 존재했는가?

"군중을 구성하는 개인들이 과거에도 존재했는데, 그때는 군중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소집단이나 개인별로 도처에 흩어져 따로 별개의 생활을 영위했다. 개인이든 소집단이든 마을과 읍, 소도시와 대도시의 한 구역에서 저마다 따로 고유의 장소를 점유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들은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이 이제는 홀연 밀집의 형태로 나타나 우리가 가는 곳마다 군중을 목격하게 되었다. 아니, 그들이 나타나는 곳은 인류문화의 상대적으로 세련된 소산, 명확하게 말하면 그때까지는 소수자 집단을 위해 확보해둔 최상의 장소에 나타난 것이다. 군중이 홀연 대두하여 사회의 주요 장소, 특권적인 장소를 차지했다. 예전에는 존재했어도 사회라는 무대의 뒤쪽에 있어서 눈에 띄지 않았던 이들이 이제는 무대 전면에 진격하여 조명받는 주역이 되었다. 그래서 주연들은 사라지고 합창단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대중의 개념은 양적이고 시각적이다.

대중은 평균인

오르테가는 이어 대중의 개념을 질적으로 파악하여 평균인이라고 본다.

"사회는 언제나 소수자(minorías)와 대중이라는 두 요소로 구성된 역동적 통일체이다. 소수자는 특별한 자질을 갖춘 개인이거나 개인들의 집단이고, 대중은 그런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집합이다. 따라서 대중을 단순히 ‘노동대중’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대중은 특별한 자질이 없는 사람들의 집합이다. 그러니 대중이 바로 노동대중이라고 볼 것이 아니다. 대중은 질적으로 보면 '평균인'(hombre medió)이다. 평균인이란 “공통의 자질과 사회적 무소속성을 특징으로 하는 존재, 자신을 타인과 구별하지 않고 오히려 일반적인 유형을 되풀이하는 사람”이다.

평균인인 대중은 특별한 자질이 없다는 공통점이 있고 사회적 소속이 없어 뿌리가 없는 존재이다.

오르테가는 심리적 사실을 기반으로 대중을 정의한다. 정신을 강조한다. 

"대중이란 특정한 기준에 따라 자신에 대해 좋고 나쁨의 가치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다른 모든 사람’과 동일시하면서 그것에 불편함을 느끼기보다는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 모두를 의미한다."

이렇게 심리적 사실로 대중을 정의할 수 있기 때문에 개인이 대중의 형태로 출현하는 것을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오르테가는 말한다. 이 정의에 의하면 개인 한 사람도 대중이 될 수 있다.

오르테가는 인간을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두 부류로 나눈다. 하나는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스스로 어려움과 부담을 가중하는 사람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에게 뭔가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고, 산다는 것도 기존의 자신을 반복하는 데 지나지 않고, 자기완성에의 노력을 하지 않고 매순간 물결을 따라 표류하는 부표 같이 표류하는 사람이다.

바로 이 두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 대중이다. 대중은 특별한 자질이 없는 평균인으로 자신에게 뭔가 특별한 요구를 하지 않고, 산다는 것도 기존의 자신을 반복하는 데 지나지 않고, 자기완성에의 노력을 하지 않고 매순간 물결을 따라 표류하는 부표 같이 표류하는 사람이다.

선택된 소수

그러면 첫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앞에서 말한 소수자(minorías)이다. 앞서 오르테가는 “사회는 언제나 소수자와 대중이라는 두 요소로 구성된 역동적 통일체이다. 소수자는 특별한 자질을 갖춘 개인이거나 개인들의 집단이고, 대중은 그런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집합이다.”고 했다. 여기서 소수자는 수량이 적다는 의미보다는 소수의 사회지배자라는 의미가 강하다. 영어의 리더(leader), 프랑스어의 엘리트(elite)에 해당하는 단어라고 볼 수 있다.

오르테가는 소수자를 ‘선택된 소수(minorías selectas)’라고 하기도 한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선택된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사람이 아니고, 남에게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심지어 자기 혼자서는 처리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다. 소수자는 특별한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남들보다 자신이 우수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스스로 어려움과 부담을 가중하는 사람이다.

이 책에서 ‘소수자’는 대중과 대조되어 자주 나온다. 소수자의 특성을 잘 이해하여야 대중을 이해할 수 있다. 《대중의 반역》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회권력을 장악한 대중을 그 이전 사회라는 무대의 뒤쪽에 있던 대중과 비교하고, 또 대중을 소수자와 비교하기때문이라 생각한다.

오르테가가 사회를 대중과 우수한 소수자로 구분하는 기준은 인간적인 계급이다. 그러므로 사회계급을 기준으로 상층, 하층으로 나눈 서열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선택된 소수자는 상층이고 대중은 하층인 게 아니다. 각 사회계급 안에는 대중과 진정한 의미에 선택된 소수자가 동시에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소수자와 대중은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오르테가의 설명을 보자.

“사회에는 다양한 업무, 활동, 기능이 존재하고 그 중에는 원래 전문적인 것이 있고, 그러한 것은 결국 특별한 재능이 없으면 제대로 수행할 수 없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고급예술의 유희나, 공공문제에 관한 정부의 기능이나 정치적 판단 말이다. 예전에는 그러한 특별한 활동에는 자질 있거나, 적어도 그러한 자질 있다고 자부하는 소수자가 종사했다.

대중은 그런 활동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았다. 만일 그렇게 하길 원한다면 그에 필요한 자질을 갖춰야 하고, 대중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그들은 건강하고 역동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대중의 반역이 일어나기 이전의 사회 모습인데 오르테가의 귀족주의, 엘리트주의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를 재구축하기를 바라는 오르테가의 뜻이 엿보이다.

이렇게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던 대중이 이제 태도를 바꾸었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앞에서 이야기한 ‘밀집’ 사실들이다. 이는 우리의 눈에 띄게 가장 명확한 방식으로 새로운 현상을 보여준다. 즉 대중은 대중이기를 포기하지 않은 채 소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대중의 반역이다. 

대중의 정치지배, 초민주주의

오르테가가 심각하게 보는 것은 소수자의 활동영역을 떠맡으려는 대중의 결정이 유희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시대의 일반적인 특징이라는 점이다. 그 사례로 정치와 지적인 분야를 소개한다.

먼저 오르테가는 최근 정치 혁신이라는 것은 바로 대중의 정치지배를 의미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어 과거의 민주주의와 대중이 정치를 지배한 후의 민주주의를 비교해 설명한다.

“내 생각에 최근의 정치 혁신은 바로 대중의 정치지배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에 민주주의는 충분한 자유주의와 법에 대한 열광에 의해 절제되었다. 이러한 원칙을 위해 개인은 자신을 억제하여 자신에게 엄격한 규율을 계속 유지하도록 의무화하였다. 자유주의 원칙의 비호와 법의 지배 아래서 소수자는 살 수 있었고 행동할 수 있었다. 민주주의와 법-법 아래서 공동생활-은 동의어였다.”

과거의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법에의 열광이 제어작용을 했다. 과거의 민주주의에서 대중은 소수자가 결점과 약점이 있지만 공공문제에 관해서는 소수자가 대중보다 더 잘 이해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대중은 정치의 실행을 자질 있는 사람들에게 맡겼다. 그런데 대중의 정치지배하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오늘날 우리는 초민주주의(超民主主義, hiperdemocracia)의 승리를 목격하고 있는데 그 안에서 대중은 직접 행동하여 법 밖에서 자신들의 열망과 욕망을 물리적인 압력을 활용하여 강요한다. [......]대중은 카페에서 자신들이 화제 삼았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고 그것에 법으로서의 힘을 부여할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믿는다. 나는 다수의 사람이 직접 지배하게 된 오늘날과 같은 시대가 역사상 다른 시기에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초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대중의 정치 지배는 초민주주의, 과잉민주주의, 또는 과대민주주의라는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초민주주의에서 대중은 직접 행동으로 법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열망과 욕망을 물리적인 압력을 활용하여 강요한다.

이어 지적인 분야의 대중화를 본다.

오르테가는 앞서 “우리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전통적으로 선택된 소수자의 집단에서조차도 대중이나 범인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지적 생활, 본질적으로 자질을 요구하고 그것을 전제로 하는 이 분야에서도 자질이 없고 자질을 평가할 수 없는, 그리고 정신구조상 부적격한 사이비 지식인들이 점차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지적인 분야를 대중이 지배하면서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난다.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오늘날 저자는 펜을 들어 자신이 깊이 연구한 주제에 관해 쓰려고 할 때, 다음과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즉 평균적인 독자는 그 주제에 전혀 관심이 없으며, 그가 그것을 읽는다면 저자로부터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평범한 사실들과 저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저자를 비판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독자, 즉 대중은 뭔가를 배우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의견을 내면 비판한다.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어떻게 하는가? 감탄과 경이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놀람과 기이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해로 향하는 첫걸음이다. 그것은 지식인의 스포츠이자 그들 특유의 호사이다. 이들 종족의 행동 특징은 경이에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크게 뜬 눈에는 기이하고 신비로운 것이다. 이 경이의 능력은 축구애호가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즐거움이지만, 반면 지적인 사람은 삶 속에서 무한한 환상의 황홀경에 빠져들게 하는 즐거움이다."

대중화된 지적 분야의 비판은 오르테가가 대학교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자아성찰, 자아비판으로 볼 수 있다.

대중사회의 특징, 야만성

이렇게 대중이 사회 전면에 나선 우리 시대의 특징은 "평균인이 자신의 평범함을 알면서도 평범함의 권리를 대담하게 주장하고 어디에서나 그것을 강요하려고 한다는 점"이라고 오르테가는 강조했다. 스페인어 책에는 이탤릭체로 되어 있다. 

오르테가가 보는 대중사회는 이런 모습이다.

"대중은 다른 모든 것, 우수한 것, 개성 있는 것, 특별한 재능을 갖는 것, 선택된 모든 것을 억압한다. 모든 사람과 같지 않은 사람, 모든 사람과 같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배척될 위험이 있다.

그래서 물론 분명한 것은 이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전에는 ‘모든 사람’은 통상 대중과 뛰어난, 전문자질을 갖춘 소수자의 복합체였다. 오늘날에는 '모든 사람'은 오로지 대중뿐이다."

오르테가는 이런 가공할 사실을 접하고, 대중사회의 특징인 야만성을 지적한 것이다. 왜 야만적인지는 책 뒤에서 설명한다. 

3
0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