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

14.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3)

오르테가는 '14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에서 명령과 복종의 기능이 사회적으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개인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회에서 누가 명령하고 누가 복종하느냐의 문제가 모호하면 다른 모든 것이 어설프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각 개인의 가장 깊은 내면마저도 혼란스러워지고 왜곡될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인 구조상 사회적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는 집단에만 영향을 미치는 변화에 의해 개인의 내면까지도 교란되어 버리는 것이다.

오르테가는 이 같은 현상을 스페인의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스페인은 수세기 전부터 지배와 복종의 문제에서 추한 양심을 갖고 살아온 국가라는 사실이 평균 스페인인에게 거대한 내면적 퇴폐와 타락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말하는 타락이란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것과 변칙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체질화된 하나의 변칙 상태를 말한다. 본질이 범죄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에 개인은 부당한 것에 자신을 적응하게 하여 스스로 범죄나 부당한 것과 동질화한다.

오르테가는 스페인인 내면의 양심이 거부하는 자의 지배에 반기를 드는 대신에 최초의 속임수에 적응하기 위해 자신의 나머지 전체를 왜곡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지적했다.

어느 나라나 지배해서는 안 될 사람이 지배를 시도한 시대가 있었다. 그럴 때 다른 나라에서는 강력한 본능을 통해 그들의 에너지를 집결하여 변칙적인 지배권을 분쇄하였다. 그리고 일시적인 변칙성을 거부하고 공공의 도덕을 재확립했다.

그러므로 그 국가, 그 통치 혹은 지배가 체질적으로 기만적인 사회는 역사 속에서 품위를 유지하는 어려운 과제에 유연하게 대응할 힘을 갖지 못한다고 오르테가는 말한다.

이어 오르테가는 유럽이 정체되고 있는 점을 분석한다.

오르테가에 따르면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뭔가에 자신을 바쳐야 한다. 이는 기묘하지만 우리의 존재에 각인된 불가피한 조건이다. 삶이란 한편으로는 각자가 자신을 위해 그리고 자신 때문에 하는 그 무엇이다. 나에게만 중요한 삶일지라도 무언가에 바치지 않으면 긴장도 형체도 없이 뿔뿔이 흩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는 자신을 바칠 곳이 없어 자신만의 미궁 속에서 헤매는 무수한 인간의 삶이 빚어내는 가공할 광경을 보고 있다. 계명과 질서가 모두 미해결 상태이다.

그 결과는 기대한 것과 정반대이다. 각자의 삶이 해방을 얻었지만 자기 자신을 상실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공허한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뭔가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내키는 대로 자기 자신을 위장하고 내면의 진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헛된 것에 몰두한다.

“산다는 것은 무언가를 향해 내던지는 것이고 목표를 향해 걷는 것이다. 그 목표는 나의 여정도 아니고 나의 삶도 아니다. 그것은 내가 내 삶을 거는 무엇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내 삶의 저 멀리 있는 것이다. 만약 내가 내 삶의 내부에서만 자기중심적으로 걸을 생각이라면 나아가지도 않고 어디에도 가지 못할 것이다. 같은 곳을 당당히 돌아다닐 뿐이다. 이것이 미궁이며 어디에도 닿을 수 없는 길, 자기 안에서 길을 잃고 그야말로 자기 내부를 돌아다니기만 하는 길이다.”

세계대전 후 유럽인은 자기 내부에 틀어박혀 자기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 유럽은 역사적으로 10년 전과 동일한 상태에 머물러 있가고 오르테가는 본다.

“지배는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지배는 다른 자들 위에 행사되는 압력에 근거한다. 그러나 그것만을 근거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뿐이라면 폭력에 불과할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배한다는 것은 이중적인 효력을 갖는 것이다. 즉 누군가에게 명령하는 일면과 그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명령하는 일면이다. 그리고 그 명하는 무엇인가는 결국 어떤 기획, 어떤 역사적인 큰 운명에 참여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삶의 계획 없이,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지배자에게 어울리는 삶의 계획 없는 통치는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유럽이 현대까지 수행해 온 세계 지배에 대한 의문이 미성숙함 때문에 아직 선사시대를 살고 있는 민족을 제외한 나머지 민족을 타락하게 만들어 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대한 것은 이 ‘답보상태'가이 유럽 자체를 철저히 타락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오르테가는 유럽이 지배하지 않는 데 익숙해진다면, 구대륙과 전세계는 한 세대 반이 못되어 도덕적 무력 상태와 지적 불모 상태, 전반적인 야만 상태에 빠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배하는 것에 대한 꿈, 그리고 그것이 고무하는 책임감이 가져오는 규율만이 서구의 정신을 긴장 상태로 유지한다. 과학, 예술, 기술, 기타 모든 것은 지배 의식이 만들어 내는 의지 강한 분위기에서 나온다. 만약 그 의식이 없으면 유럽인들은 타락할 것이다. 유럽인의 정신은 모든 차원에서 위대하고 새로운 사상을 획득하기 위해 대담하고 정력적이고 집요하게 몰두한 자기 자신을 근본적인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유럽인은 어쩔 수 없이 하루살이 사람이 될 것이다. 창조적이고 여유 있는 노력도 못하고 언제나 어제란 과거와 습관과 일상에 빠질 것이다. 몰락기의 그리스인과 비잔틴 시대를 살았던 인간처럼 상투적이고 인습적이며 공허한 존재로 전락할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창조적인 삶은 어떤 삶인가?

오르테가는 “창조적 삶은 고도의 정신 위생 상태와 위대한 품격, 그리고 존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부단한 자극 체제를 전제로 한다. 창조적인 삶이란 정력적인 삶이다. 그것은 다음의 두 가지 상황 중 하나에서만 가능하다. 즉 자신이 지배자이든지 아니면 지배의 권리를 충분히 인정받는 자가 지배하는 세계에 살든지, 이 두 가지 중 하나, 즉 지배인가 복종인가이다. 여기서 복종한다는 것은 참고 잠자코 지내는 것이 아니고 그 반대로 지배자를 존중하고 그를 추종하며 그와 연대하면서 그의 깃발 아래 열정적으로 동참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