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

14.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7)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대중의 반역》 14장 누가 세계를 지배하는가 8에서 르낭의 유명한 말을 언급하며 국가의 역할을 이야기한다.

“과거에서 공통의 영광, 현재에서 공통의 의지를 갖고서 공통의 위대한 과업을 함께 성취하며 나아가 다른 과업도 하려고 하는 것 이상의 것이야말로 하나의 민족이 되는 본질적인 조건이다. ...과거에는 영광과 회한의 유산이 있고, 미래에는 실현해야 할 동일한 계획이 있다. ...국민의 존속은 일상적인 국민투표이다.”

이 말이 유명해진 이유로 오르테가는 “국민의 존속은 일상적인 국민투표이다”라는 마지막 구절때문이라고 한다. “국민이 나날의 국민투표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생각은 일종의 해방선언이라는 것이다. 공통의 혈연, 언어, 과거는 정적이고 숙명적이고 유통성이 없고 불활성적인 무기력한 원리이다. 국민투표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은 이러한 감옥에서 해방되게 한다.

그러면 국민의 삶과 국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먼저 인간의 삶을 보면 인간의 삶은 미래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이다. 우리는 현재의 순간을 살면서 장차 일어날 일에 관심을 갖는다. 미래와 관련이 없는 것은 인간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국가의 과거는 미래를 향해 꿈을-현실이든 상상이든-줄 수 있다. 우리는 미래에도 국가가 계속 존속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국가를 방어하는 데 발 벗고 나선다. 혈연을 위해서도 언어때문에도, 공통의 과거를 위해서도 아니다. 우리가 국가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내일을 지키는 것이지 과거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르낭의 말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즉 내일을 위한 훌륭한 계획으로서 국민 말이다. 국민투표는 미래를 결정한다.

오르테가는 “국가는 그 자체의 계획이 있으면 존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스페인이 중남미 여러 민족과 과거, 인종, 언어를 공유했지만 그들과 더불어 국가를 형성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미래를 공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한다. 스페인은 동물학적으로 유사한 그런 집단을 끌어들일 장래 계획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어 오르테가는 국민국가 속에서 국민투표의 역사적 구조를 살펴본다. 먼저 국가는 본질적으로 첫째 공동 과업을 통한 전면적인 공동생활 계획, 둘째로 이 매력적인 과업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라는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사람의 지지’는 국민국가와 고대국가 전체를 구별하는 기준이다.

고대국가에서 상이한 집단들에 대한 국가의 외압에 의해 통일이 이루어지고 유지된 반면, 국민국에서는 ‘국민들’의 자발적이고 뿌리 깊은 응집력에서 국가의 활력이 솟아난다. 실제로 이제는 국민이 국가가 되었고 그것을 국민과 무관한 어떤 것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이 점을 오르테가는 국가의 새롭고도 경이적인 측면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오르테가는 “국가는 결코 완성된 것이 아니다. 국민국가는 이 점에서 다른 유형의 국가들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국가는 언제나 형성 중에 있거나 해체 중에 있다. 제3의 가능성은 없다. 국가는 왕성한 과업을 제시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지지를 얻거나 상실한다.

이어 오르테가는 유럽의 국가 형성 과정을 소개한다.

첫 단계에서는 다양한 민족이 하나의 정치적 또는 정신적 공존체로서 융합한 것을 국가라고 인식하는 서구 특유의 본능이 지리, 민족, 언어적으로 가장 근접한 집단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그것은 이 근접성이 국민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근접한 집단 간의 다양성을 극복하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제2단계에서는 결합 강화의 시기이다. 신생 국가 밖의 다른 민족을 이방인이나 적으로 간주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국민의 발전 단계가 배타주의적이고 국가 내부로 결집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요컨대 오늘날 우리가 내셔널리즘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다른 민족을 이민족이나 경쟁자로 느꼈지만, 경제적·지적·정신적으로 공존하고 있다. 내셔널리즘 전쟁은 기술과 정신의 격차를 평준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종래의 적이 점차 역사적으로 동질화되었다. 그들이 적대하는 민족도 우리 국가와 동일한 인간의 범주에 속한다는 의식이 싹튼다. 그렇지만 그들을 여전히 이민족이나 적으로 생각한다.

3단계에서는 국가는 완전한 통합을 자랑한다. 어제까지 적이었던 민족과의 통합이라는 새로운 계획이 등장한다. 도덕이나 이해관계에서 그들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확신과 그들과 함께 더 멀리 있는, 훨씬 먼 관계에 있는 다른 외국인 집단들에 맞서 하나의 국가권을 형성할 수 있다는 확신이 커진다. 이렇게 하여 새로운 국가 이념이 무르익는 것이다.

오르테가가 유럽의 국가 형성 과정을 소개한 것은 유럽인들에게 유럽이 국가 개념으로 전환될 기회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러한 생각하는 것은 11세기에 스페인과 프랑스의 통일을 예언했던 것보다 훨씬 더 훨씬 더 현실적이라고 확신한다. 서구의 국민국가는 그 진정한 실체에 충실할수록 곧 하나의 거대한 대륙국가로 나아가 점점 순화될 것이라는 게 오르테가의 전망이다. 오늘날 유럽연합의 탄생을 오르테가가 전망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