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수 작가의 개인전 'The Universe in the Golden Eye'가 7월 12일 아뜰리에 아키에서 개막했다. [사진 정유철 기자]
권기수 작가의 개인전 'The Universe in the Golden Eye'가 7월 12일 아뜰리에 아키에서 개막했다. [사진 정유철 기자]

 금색을 배경으로 오방색 나무가 각각 한 구루씩 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 네 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뜰리에 아키에서 7월 12일 개막한 권기수 작가의 개인전 〈The Universe in the Golden Eye〉의 모습이다. 권기수 작가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국화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이며 동시대 미술 영역에서 공고한 위치를 다져왔다.

이번 전시는 2019년 이후 아뜰리에 아키에서 선보이는 두 번째 개인전으로 ‘금(金)’이라는 매체가 지닌 상징적인 의미를 해체하며 새로운 서사를 구축한 신작 20여 점을 선보였다. 특히 이번 전시는 작가가 보여주는 재료에 대한 깊이와 형식적 독창성을 비롯하여 그간 밀도 있게 구축해온 고유의 작업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이다.

Kwon Kisoo, Universe Forest-Gold, real gold leaf and acrylic on canvas on board, 227.3x181.8cm, 2022. [사진 제공 아뜰리에 아키]
Kwon Kisoo, Universe Forest-Gold, real gold leaf and acrylic on canvas on board, 227.3x181.8cm, 2022. [사진 제공 아뜰리에 아키]

권기수 작가는 1990년대 후반부터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동양의 전통적인 사상과 기법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업을 선보여 왔다.

작가는 “100년 전 조선의 회화가 일제강점기를 겪지 않고 순조롭게 서양 문물과 만나 발전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며 작업을 한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는 사군자(四君子), 파초의 모습이 연상되는 것은 이런 연유이다. 작가는 재작년부터 파초 시리즈 작업을 하고 있는다.

작가는 “파초도 대나무 못지않게 조선시대 왕이나 선비가 사랑했던 식물인데 남쪽 따뜻한 나라 추운 겨울이 없는 나라에 대한 기원이 파초에 굉장히 많이 들어있다. 그것이 또한 나의 이상향이다”라고 말했다.

Kwon Kisoo, Two Eyes-sky blue, acrylic on canvas on board, 60x60cm, 2021. [사진 제공 아뜰리에 아키]
Kwon Kisoo, Two Eyes-sky blue, acrylic on canvas on board, 60x60cm, 2021. [사진 제공 아뜰리에 아키]

또한 그는 “여기에 이번 작품에 금박 은박을 많이 써서 물질적인 것의 고귀함과 천박함, 세속적인 것과 고상한 것, 또 종교적인 것과 타락하는 것들을 대비하여 나의 그 이상향을 기리는 마음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금은 신성함, 위엄, 고귀함, 권력, 힘, 부(富) 등을 나타내는 강한 상징적 요소를 내포한다.

작가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강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 금(金)을 고유한 회화 언어 일부로 승화하였다. 하지만 권기수의 작업에서 금이라는 소재의 상징성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작가에게 금은 하나의 매체일 뿐,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어떤 의미를 강요하지도 않으며 대상을 바라보는 관습적 시선에서 탈피하고자 한다. 이는 관습적 시선에서 벗어남으로써 더욱 새로운 방식으로 현실을 인식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현대 사회에서 작가의 역할을 끊임없이 자문하는 권기수 작가의 고찰과 작업을 대하는 본질적 태도를 담아낸다.

Kwon Kisoo, Bubbly-a Yellow Boat-Gold,  real gold leaf and acrylic on canvas on board, 90.9x116.7cm, 2021-2022. [사진 제공 아뜰리에 아키]
Kwon Kisoo, Bubbly-a Yellow Boat-Gold, real gold leaf and acrylic on canvas on board, 90.9x116.7cm, 2021-2022. [사진 제공 아뜰리에 아키]

여러 작품에 등장하는 ‘동구리’도 눈길을 끈다. 권기수 작가는 성별이나 나이로 규정지어지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는 기호인 동구리를 창조, ‘사회적 상호 작용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작가의 고찰을 작업에 담아낸다. 웃고 있는 동구리는 마치 캐릭터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의 작업을 성급하게 ‘팝아트’로 보는 평론가도 있다. 동구리를 통해 작가는 사회적 관계에서 비롯되는 희로애락(喜怒哀樂) 속 웃음이라는 사회적 가면을 쓴 현대인의 모습을 선명히 드러낸다. 또한 단순화한 형상의 캐릭터가 지닌 한계를 확장하기 위해 작가는 강열한 색감을 기반으로 다채로운 소재를 선택, 구성하며 화면 안에 담아낸다. 전통회화에서 기본으로 하는 오방색을 활용하였다.

전시 작품 <Bubbly-a Yellow Boat-Gold>에서 배를 타고 있는 동구리의 형상은 현대 사회 속에서 의미 없이 부유하는 현대인들의 초상을 담아내며, 근원을 알 수 없는 모호함과 외로움 등의 익숙하면서도 낯선 감정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Kwon Kisoo, Untitled,  acrylic on canvas on board, 78x162cm, 2020-2022. [사진 제공 아뜰리에 아키]
Kwon Kisoo, Untitled, acrylic on canvas on board, 78x162cm, 2020-2022. [사진 제공 아뜰리에 아키]

 

작가는 소재에 의미를 부여할 때 과거와 현재를 구별하지 않는다. 작가의 작업 속 색면으로 처리된 대나무는 한국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중요한 소재로 은자(隱者)의 공간을 상징한다. 조선시대로 말하면 죽림칠현(竹林七賢)의 공간이다. 하지만 현대적인 의미에서 보면 수직적인 형태감이 강조된 마천루의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작가 특유의 통시대적 의미 부여는 한국화의 전통을 잇는 방법이 단순히 붓과 먹을 사용한 표현방식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박제된 한국화가 아니라 계속 진화하고 발전한 한국화, 우리 시대의 한국화를 그는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동구리를 중심으로 계속 변화하고 있다. 권기수 작가가 2021년부터 선보인 ‘Two Eyes시리즈’를 통해 작가에게 중요한 원천으로 자리 잡은 ‘동구리’라는 캐릭터의 눈을 통해 발현된 권기수의 새로운 전환을 보여준다. ‘동구리의 눈동자 속 세계’라는 더욱 직설적이고 유니버셜한 개념으로 확장된 작가의 세계관은 폭넓고 실험적인 작업 스펙트럼을 나타낸다. 그의 화면 속 칼로 도려낸 결과로서 나타나는 예리한 단면은 원색의 색면을 더욱 강조한다.

한국의 단청색을 떠올리게 하는 선명한 색채 사용은 세심하게 계산하여 재단하였고, 테이핑 작업을 수없이 반복하여 덧칠한 결과로서 노동집약적인 작업이다. 이러한 색의 사용은 권기수가 작업을 통해 회화로서의 가치를 최대한 발휘하고자 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을 사진으로는 평면으로 보여 매우 단순한 것처럼 보이지만 직접 보면 여러 개의 레이어로 이루어진 입체화이다. 권기수 작가의 작품은 사진이 아니라 직접 보아야 알 수 있다.

Kwon Kisoo, Untitled, real gold leaf and acrylic on canvas on board, 78x162cm, 2022. [사진 제공 아뜰리에 아키]
Kwon Kisoo, Untitled, real gold leaf and acrylic on canvas on board, 78x162cm, 2022. [사진 제공 아뜰리에 아키]

권기수 작가는 “화면에 더 어려운 게 애초에 컴퓨터로 디자인을 하기 때문이다”며 “컴퓨터 디자인, 그러니까 손으로 작업할 수 없는 어떤 레이어를 만들고 그것을 다시로 작업하려고 하다 보니, 그냥 그리면 되는데 왜 저렇게 할까 할 정도로 어려운 기술들을 많이 쓰고 있다”고 작업의 어려움을 이야기했다. 작가는 원하는 화면의 최종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만들고 싶어 힘들어도 이겨낸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권기수의 작업이 어떻게 진화되고 확장되어 왔는지 그리고 이를 어떠한 매체를 통해 표현해왔는지 등 작가의 폭넓은 예술세계를 밀도 있게 조망하는 유의미한 자리가 될 것이다.

Kwon Kisoo, Untitled, real gold leaf and acrylic on canvas on board, 116.8x91cm, 2022. [사진 제공 아뜰리에 아키]
Kwon Kisoo, Untitled, real gold leaf and acrylic on canvas on board, 116.8x91cm, 2022. [사진 제공 아뜰리에 아키]

사회 속에서 발견한 소재를 자신만의 독자적인 언어로 해석한 권기수의 작업은 단순한 예술적 실험을 넘어 관람객과 전시 작품 사이의 관계성을 창조, 화면 안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권기수 작가는 홍익대학교와 동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였다. 베니스 비엔날레, 부산 비엔날레, 상하이 Long Museum, 로스앤젤레스 Museum of Contemporary Art(MOCA), 샌프란시스코 Asian Art Museum, 일본 MORI ART Museum, 런던 Saatchi Gallery, 뉴욕 Museum of Arts and Design(MAD), 뉴욕 UN 본부, 타이베이 MoCA Taipei, 북경 Today Art Museum 등 해외 유수 기관에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특히 2015년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장학 재단 중 하나인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 (Fulbright Scholar-in-Residence) Visiting Professor 선정 및 2008년 ‘아이구글 (igoogle) 아티스트 프로젝트'와 2010년 ‘The art of a homepage’까지 총 두 번에 걸쳐 Google 아트 프로젝트에 선정되며 동시대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권기수 개인전 'The Universe in the Golden Eye' 모습. [사진 정유철 기자]
권기수 개인전 'The Universe in the Golden Eye' 모습. [사진 정유철 기자]

 

 

권기수 작가의 개인전 〈The Universe in the Golden Eye〉는 아뜰리에 아키(서울특별시 성동구 서울숲2길 32-14 갤러리아 포레 1F / B1F)에서 8월 20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