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ndscape with a tiny red boat, Acrylic on canvas on board, 120 x 44cm, 2019  [사진 자하미술관]
Landscape with a tiny red boat, Acrylic on canvas on board, 120 x 44cm, 2019 [사진 자하미술관]

권기수 작가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한국화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이며 동시대 미술 영역에서 공고한 위치를 다져왔다. 과거의 산수화를 기호와 기하학적 형식으로 재구성하여 현대적 감성을 부여한다.

그는 사람 모양을 단순화한 기호 ‘동구리’로 친숙한 작가이다. 작품 곳곳에 자리한 동구리는 둥근 얼굴에 항상 미소를 짓고 있다. 보름달처럼 둥근 얼굴의 동구리를 보면 과거 사대부들이 달빛 정취를 느끼며 몽유도원을 노래하던 풍경이 떠오른다.

권기수 작가의 서울 마포구 연남동 작업실이 있는 마포의 강변에는 조선시대 담담정(淡淡亭)과 희우정(喜雨亭)이 있었다.

조선 최고의 문화예술 애호가이자 수집가였던 안평대군은 자하미술관 인근의 무계정사와 마포의 별서 담담정(淡淡亭)에서 당대 문인들과 함께 자연 풍광을 즐기고 시문과 서화를 겨누었다. 특히 그림을 좋아했던 안평대군이 당대 최고의 화원이었던 안견에게 ‘몽유도원도’를 그리게 한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Over the rainbow-Light blue, Lenticular, 40 x 40cm, 2020 [사진 자하미술관]
Over the rainbow-Light blue, Lenticular, 40 x 40cm, 2020 [사진 자하미술관]

또한, 희우정(喜雨亭)은 오늘날 망원정으로 불리는바 한강 변의 절경으로 세종대왕의 형 효령대군이 풍류를 즐기며 살았던 별장이다. 가뭄이 심했던 해에 세종이 이 정자에 들렀을 때 마침 단비가 흠뻑 내려 희우정이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전한다. 이후 희우정에서 문종이 신하들에게 귤과 시를 나누어준 일화도 유명하다. 안평과 효령을 비롯한 문인들은 이처럼 마포 강변에서 완월장취(玩月長醉)의 뜻 그대로 아름다운 달빛 아래 술과 자연 풍광을 즐겼다.

담담정과 희우정에서 옛 문인들이 바라보던 풍경에는 이제 아파트, 학교, 음식점과 같은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자연의 정취를 즐기며 시서화를 짓던 문화도 옛 일이 되어버렸다.

Reflection of the Moon-Black, Acrylic on canvas on board, 130 x 97cm, 2012 [사진 자하미술관]
Reflection of the Moon-Black, Acrylic on canvas on board, 130 x 97cm, 2012 [사진 자하미술관]

다만 권기수의 회화 속에서 동구리는 옛 문인들의 시구절처럼 오늘날에도 이상향을 찾아 매화가 가득 핀 산과 강 그리고 대나무숲을 소요한다. 동구리가 나룻배를 타고 건너는 수면에는 파문이 둥글게 일어난다. 이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많은 이들이 품어 온 이상향을 향한 염원을 보여주는 듯하다. 달빛 아래 산과 강을 유유자적하는 동구리는 예술과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의 염원을 반영하는 듯하다.

역사적 소재를 동시대 미술과 연결하는 기획을 지속해 온 자하미술관에서 11월 25일부터 12월 25일까지 권기수 작가의 개인전 <동동, 완월장취>를 연다.

자하미술관은 이번 권기수의 개인전 <동동, 완월장취>를 통해 안평대군과 문인들이 찬미했던 자연의 정취를 되새기고 시서화를 짓던 문화가 사라진 오늘날에도 아직도 많은 이들이 꿈꾸는 이상향을 그려본다. 찬 공기 속 하늘이 더욱 맑아가는 겨울, 보름달처럼 둥근 동구리를 쫓으며 달빛에 흠뻑 취해보는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권기수 개인전 '동동, 완월장취' 전시 장면 [사진 자하미술관]
권기수 개인전 '동동, 완월장취' 전시 장면 [사진 자하미술관]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 동양화과를 졸업한 권기수 작가는 그간 베니스비엔날레, 샌프란시스코 아시안아트 뮤지엄, 일본 모리아트뮤지엄, 런던 사치갤러리, 뉴욕 Museum of Arts and Design(MAD), 뉴욕 UN 본부 등 해외 유수 기관에서 작품을 선보였다. 지난 2015년에는 세계에서 유명 장학재단 중 하나인 풀브라이트 장학 프로그램의 방문 교수(Visiting Professor)로 선정되었다. 2008년과 2010년에는 미국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 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 프랑스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과 함께 'Google 아트프로젝트'에 선정되어 글로벌 아티스트로의 입지를 다졌다.

권기수 개인전 <동동, 완월장취>는 12월 25일까지 자하미술관(서울시 종로구 창의문로 5가길 46)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