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품은 산, 아카이벌피그먼트프린트, 90x35.6cm, 2021. [사진 김미형]
바다를 품은 산, 아카이벌피그먼트프린트, 90x35.6cm, 2021. [사진 김미형]

김미형 작가가 제주로 이주한 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겨울 담쟁이넝쿨이었다. 화려했던 여름날을 다 보내고 가을에 잎을 다 떨구고 남은 넝쿨. 대부분의 넝쿨이 무성한 잎들을 떨구고 자신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넝쿨은 아름다운 자태로 시선을 끄는가 하면, 섬뜩할 만큼의 기운을 뿜으며 접근을 허락하지 않기도 했다. 이 경이롭고 매력적인 담쟁이넝쿨을 사진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넝쿨에서 새로 움트는 새싹이 힘차고 유연한 선들을 방해하지 않을 때는 그 모습도 담았다. 연두와 초록이 온기를 불어넣으며 넝쿨들을 더 신령스럽게 했다.

치열한 삶의 흔적인 넝쿨선들의 형태에 주목해 김미형 작가는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 낸 사진 작업으로 드로잉이란 개념을 새롭게 확장하였다. 치열한 삶의 흔적인 넝쿨의 선들. 그 형태에 주목해 다양한 모습을 만들어가는 이번 작업을 ‘넝쿨드로잉’이라 정했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을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사랑하기때문에, 아카이벌피그먼트프린트, 99.3x140cm, 2021. [사진 김미형]
사랑하기때문에, 아카이벌피그먼트프린트, 99.3x140cm, 2021. [사진 김미형]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문화예술재단(이사장직무대행 박철수)은 2022 예술공간 이아 선정작가전 김미형 작가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7월 8일(금)부터 8월26일(금)까지 예술공간 이아 전시실1 (B1층)에서 개최한다.

예술공간 이아는 지난 2~3월 예술공간이아 전시작가를 공모하여 총 2건의 전시를 선정했다. 이번 전시는 2022년 예술공간이아 선정작가전 첫 번째 전시이며, 김미형 작가의 제10회 개인전이다. 전시에서는 김미형 작가의 사진, 회화(드로잉), 입체 및 설치 작품을 볼 수 있다.

새롭게 선보이는 넝쿨드로잉 작업들과 함께 구멍 난 잎, 죽은 곤충의 날개, 몇 년 동안 채집한 매미 허물 등의 자연물을 오브제로 한 드로잉 연작과 소소한 입체 작업은 소멸해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기억과 아픈 마음을 담고 있다.

처음에는 좀 징그러웠던 매미 허물이 어느 순간 전혀 징그럽지 않았다. 매미 허물로 하는 작업을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물질의 표면을 이루는 단단한 물질을 껍데기라 부르고 단단하지 않는 것들은 껍질이라 말한다. 허나 세상의 분류대로 늘 똑 떨어질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 단단함의 정도에 대한 기준도 문제이고 딱딱하지는 않지만 매우 질겨 단단함을 갖는 것들도 있다. 매미허물은 껍질에 속하지만 들여다보면 나름 단단한 구조를 가졌다. 매미가 울어대는 계절이 되면 나는 매미 허물을 찾아 그것들을 채집했고 이 허물들로 뭔가를 만들겠다며 몇 년을 모아 나갔다. 궁리를 거듭한 끝에 모은 허물들은 나의 허물을 덮어주는 심정으로 허물에 허물을 덮어나가며 형태를 만들어 나갔다. ‘허물이 있음에도 우리는 본래 부처다’라는 말을 되뇌이면서 말이다. 작업을 하느라 매미허물을 손으로 만지다보면 허물의 다리가 내 손가락에 딱 달라붙어 털어도 좀처럼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매우 절실한 마음으로 나무 기둥을 타고 올라갔을 매미의 삶을 떠올린다."

나의 허물-시카다싯달타, 91x116.8cm, 캔바스천에 매미허물, 2022. [사진 김미형]
나의 허물-시카다싯달타, 91x116.8cm, 캔바스천에 매미허물, 2022. [사진 김미형]

작가는 관람객이 이번 전시에서 “상처를 껴안으며 고단하지만 빛나고 아름다운 삶을 기억하고, 자신을 비롯한 세상 모든 존재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죽은 줄 알았던 메마른 넝쿨이 싹을 틔우며 자라는 걸 보았고, 처참하게 뜯겨져 무리에서 훼손되어 죽은 넝쿨도 보았다.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죽은 넝쿨은 마치 처음부터 담과 하나였다는 듯 비바람을 견디며 오랜 시간 존재한다. 약해 보이면서도 질기고 강한 생명력의 담쟁이넝쿨들은 깊은 울림을 준다.” (작가 노트)

또한 8월 6일에는 2022 예술공간 이아 선정작가전 김미형 개인전 ‘사랑하기 때문에’ 전시연계프로그램 '구멍 난 잎, 구멍 난 마음'을 진행한다.

작가가 종이에 구멍을 뚫기 시작하면서, 구멍 난 잎들을 채집하면서 느꼈던 이야기를 전하며 참여자도 함께 마음속 상처들을 이야기해 보는 자리이다. 예술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상처나 흠집도 보기 흉한 것이 아니라 귀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느끼는 프로그램이다.

촛불의 의미, 구멍난잎에드로잉, 14x20cm, 2018. [사진 김미형]
촛불의 의미, 구멍난잎에드로잉, 14x20cm, 2018. [사진 김미형]

참가자들은 예술공간 이아 B1층 1전시실에서 종이에 구멍을 뚫어도 좋고, 찢거나 구긴 것을 이용해 이미지를 만들게 된다. 바느질기법이나 물감으로 뿌리기, 흘리기 등 상처나 아픔, 슬픔 등 추상적인 감정을 표현할 다양한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현대미술의 표현 방식을 접한다.

김미형 작가는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했다. 금호미술관과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 다방 등에서 9회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작가는 신세계 미술제에서 수상하고 문화예술진흥원 우수작품 전시,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창작발표활동 등에 선정됐다. 국립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 등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