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 금민정 작가는 개인의 감정치를 작품에 반영하여 변화하는 자연경관을 동영상 화면에 접목하여 마음의 장소화를 시도한다. 회화 정직성 작가는 삶에 대한 의지와 극복의 풍경을 ‘자개’라는 매체를 통해 풍경으로 표현한다. 허미회 작가는 부재의 시간과 공간을 아크릴 상자에 담아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인식하고자 한다.

금민정, 정직성, 허미회 작가의 작업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갤러리이배(부산 수영구)는 7월 13일부터 8월 28일까지 미술의 각 장르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금민정(미디어아트), 정직성(회화), 허미회(사진조형) 세 여성작가를 초대하여 경관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심상풍경연구’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철학적 사유와 함께 작가들만의 독특하고 탁월한 표현방식으로 해석하고 표현한 작품 16점을 선보인다.

금민정, 비 오는 강, DMZ 27x18x10cm(00.01.20 loop), single channel video on LED screen, sculptured framed by the artist(ed.5-2), 2022. [사진 제공 갤러리 이배]
금민정, 비 오는 강, DMZ 27x18x10cm(00.01.20 loop), single channel video on LED screen, sculptured framed by the artist(ed.5-2), 2022. [사진 제공 갤러리 이배]

자연경관과 인문경관이 어우러진 공간에 사람의 온기와 숨결이 더해지면 공간은 더 이상 공간이 아닌 장소가 된다. 그래서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장소’는 매우 인간적인 교감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항상 머물게 된다. 각 개인이 처한 상황과 환경은 공간을 그들만의 장소와 경관으로 변모시킨다. 도심에서, 자연에서 경험하고 흡수된 각자의 생각은 장소를 포함한 경관에 이입되어 심상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인간의 생각이 개입된 경관은 다양한 예술적 표현방식을 통해 풍경으로 재현되어 작가들이 경험한 특정한 자연이나 장소가 마음속에서 어떻게 재생되는지 보여준다. 마음속 풍경, 즉 심상풍경을 미디어 아티스트 금민정은 영상으로, 회화작가 정직성은 자개와 옻칠로 그리고 조형예술가 허미회는 붓이 아닌 카메라로 재구성한다.

정직성, 202021, 202022, 202023, 각 160x48.5cm, 자개, 나무에 삼베, 옻칠 마감, 2020. [사진 제공 갤러리 이배]
정직성, 202021, 202022, 202023, 각 160x48.5cm, 자개, 나무에 삼베, 옻칠 마감, 2020. [사진 제공 갤러리 이배]

 특정 장소에서 그 장소가 기억하는 경관을 작품으로 다루는 금민정 작가는 그 장소의 낯선 기억을 영상작품으로 만든다. 실재 공간과 영상작품으로 투사되는 가상의 공간이 만나는 방식을 각기 조각과 모니터에 대응하는 비디오로 표현한다. 금민정의 작업은 각 개인의 감정치(emotional value)를 작품에 반영한 심상의 풍경이다. 쉼 없이 움직이는 심리적 동요와 동시에 응시하고 있는 경관 혹은 장소는 서로 합치되어 마음의 장소화를 실현한다. 장소에서 느끼는 감정을 기본적인 도형의 형태로 치환한 다음 그 도형과 그래픽으로 재현된 자연환경의 실사를 섞고 융합하여 자연현상을 움직이며, 영상 표면의 좌표값과 시간축을 설정해 새로운 알고리즘으로 작업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실재 장소의 벽, 바닥, 문 등 건축적 요소를 조각으로 만들고 장소나 경관에 대한 심리적 경험이나 감정을 시각화한 영상 이미지를 설치하여 조각과 영상이 하나가 되는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작가 정직성은 삶을 직관하는 인간의 내면을 ‘자개’라는 매체를 통해 풍경으로 표현한다. 작업 과정과 결과물이 일관성 있게 삶의 여정과 맞물려있다. 작가의 열정적인 노고로 생명력을 얻고 빛을 발하는 아름다운 풍경은 물리적인 풍경이 결코 아니라 삶에 대한 의지와 극복의 풍경이다. 자개로 표현한 나뭇가지와 꽃, 바위는 힘을 지닌 메타 언어로서 우리에게 다가온다. 작가는 공간에 형성된 리듬과 동선, 움직임, 기세에 많은 관심을 표현하며, 펄의 반짝임으로 인해 튀어나오는 자개의 독특하고 강한 물성을 활용하여 회화 형식 논리에 균열을 가하는 새로운 개념의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유선형의 조개껍데기인 자개에 균열을 가하는 타발법을 회화의 즉흥적인 붓질처럼 사용하며, 자개패를 손으로 부러뜨려 배치하고 칼로 즉흥적으로 쪼개고 붙여 직관적으로 조형한다. 이러한 기법을 전통문양을 반복하는 데 쓰는 것이 아닌 즉흥적인 드로잉을 그대로 살리는 방식으로 활용한다.

허미회, Entre-deux,130x87x8.5cm, 사진, 투명접착필름, 플렉시글라스, 2022. [사진 제공 갤러리 이배]
허미회, Entre-deux,130x87x8.5cm, 사진, 투명접착필름, 플렉시글라스, 2022. [사진 제공 갤러리 이배]

작가 허미회는 ‘시간과 공간’을 아크릴‘상자’에 담아 실재했지만 실재하지 않은 장소를 재현한다. 살아오면서 충분히 몰두하고 교감한 특별한 장소, 그리고 그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피사체로 고스란히 상자 속에 담아 공간의 입체감을 끌어낸다. 작가에게 애초에 공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머물렀던 모든 곳이 기억의 장소로 각인된다. 작가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는 이미 죽어버린 부재의 시간과 공간을 시각화하는 것이며, 카메라로 느껴지는 느낌을 다양한 색으로 표현하여 회화 같은 사진을 만들어낸다. 투명 필름지에 출력된 촬영본은 아크릴판 위에 붙어 상자로 만든다.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서로 겹치는 이미지들은 안과 밖, 현실과 허구, 서로 다른 두 이미지 등이 어우러져 입체효과를 보여주며 그림과 사진,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고 간다. 작품명 Entre-deux(두-사이)처럼 작가는 상자의 앞면과 뒷면 두-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수하고도 미묘한 이미지와 색의 두-사이를 통해 삶의 진정한 두-사이를 보여준다.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난 금민정 작가는 홍익대학교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국립현대미술관, 금호미술관 등 국내외에서 16회의 개인전과 서울시립미술관 기획전, 창원조각비엔날레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가하였다. 삼성전자, 렉서스 등 기업과의 협업, 그린리버프로젝트 등 공공미술프로젝트에도 참가하였다. 서울시립미술관, 금호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정직성 작가는 1976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장흥아뜰리에, 서울-베를린 등 다수의 레지던시에 참여 작가로 활동하였다. 2002년에 시작한 <연립 주택>연작으로 국내 미술계에 회화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졌고, <공사장 추상>, <푸른 기계> 연작 등 도시의 풍경을 특유의 추상적인 필치로 표현한 작품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현재는 나전칠기기법을 전용한 현대 자개회화 연작을 발표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하여 유수 미술관과 주요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난 허미회 작가는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학교에서 조형예술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9년 귀국하여 국내외에서 전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2003년 프랑스 리옹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1회의 개인전을 모두 성공리에 마쳤다. 다수의 단체전과 Asia Now, Art Miami, KIAF 등 국내외 주요 아트페어에도 참가하였다. 작가의 ‘Entre-Deux'시리즈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하여 국내외 주요 기관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