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 서거 70주기 추모식이 26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엄수됐다. 이날 추모식에는 김형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문희상 국회의장, 이병구 국가보훈처 차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오제세 국회의원, 주호영 국회의원, 이언주 국회의원, 민갑룡 경찰청장, 김원웅 광복회장을 비롯해 백범 김구 선생 유족과 각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했다.
 

백범 김구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이 16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사진=김민석 기자]
백범 김구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이 16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사진=김민석 기자]

이날 추모식에서 김형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그리고 백범 선생의 서거 70주년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우리는 그 새로운 시작의 출발선에 섰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겨레의 혼불 백범이시여. 당신께서 그토록 염원하셨던 완전한 독립, 통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는 용기와 지혜를 주소서.”라며 추모식사를 했다.
 

김형오 백범김구기념사업협회 회장이 백범 김구 선생의 영정을 바라보며 추모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김형오 백범김구기념사업협회 회장이 백범 김구 선생의 영정을 바라보며 추모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었을 뿐만 아니라, 가장 성숙한 민주주의의 모범이 되는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선진국으로 우뚝 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직 국민통합, 조국의 통일이라는 과제를 해내지 못했다. 오늘 이 자리를 통해 민족의 단결과 하나 된 조국을 강조하셨던 백범 김구 선생의 정신을 되새겨 본다.”고 추모사를 전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26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백범 김구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문희상 국회의장이 26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백범 김구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이병구 국가보훈처 차장이 대독한 추모사를 통해 “조국의 독립과 민족 통일을 위해 평생을 노력한 백범 선생께 깊은 애도를 표한다. 선생께서는 일제의 식민지하에서 암흑 속에 신음하던 우리 민족을 항상 먼저 생각하시는 사상가이자 진정한 독립운동가였다. 선생께서는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실현되기를 바라셨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은 그 뜻을 온전히 이어받아 한반도에 평화를 이룩할 역사적인 기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선생의 위대한 발자취와 애국 헌신의 정신을 우리 후손들이 길이 계승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병구 국가보훈처 차장이 26일, 백범 김구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에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의 추모사를 대독하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이병구 국가보훈처 차장이 26일, 백범 김구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에서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의 추모사를 대독하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김원웅 광복회장은 “백범 김구 선생께서는 민족의 자주적 역량을 강화하고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시다 그만 변을 당하셨다. 그 사건은 개인의 비극으로만 끝난 것이 아닌 대한민국의 민족 정통성을 훼손하고, 항일독립운동 역사를 왜곡하며 6·25전쟁으로 남과 북이 갈라서게 되는 민족의 대참극이었다. 이 나라를 하나 된 자주독립 국가로 완성하고, 평화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가도록 온 심혈을 기울여 선생의 정신을 기리겠다.”고 추모사를 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이 26일, 백범 김구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김원웅 광복회장이 26일, 백범 김구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에서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추모사 이후 숙명여자대학교합창단과 역사어린이합창단의 추모공연이 이어졌다. 뒤이어 백범 김구 선생의 유족과 추모식 참가자들이 선생의 영전에 헌화하며 추모의 마음으로 선생의 명복을 빌었다.
 

숙명여자대학교합창단(상단)과 역사어린이합창단(하단)이 26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백범 김구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에서 추모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숙명여자대학교합창단(상단)과 역사어린이합창단(하단)이 26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백범 김구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에서 추모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26일 엄수된 백범 김구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에서 김구선생 유족과 각계 인사들이 김구 선생 영전에 헌화하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26일 엄수된 백범 김구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에서 김구선생 유족과 각계 인사들이 김구 선생 영전에 헌화하고 있다. [사진=김민석 기자]

겨레의 큰 스승인 백범 김구 선생은 1876년 황해도 해주 백운방(白雲坊)에서 가난한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1896년에는 일제의 명상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를 위해 황해남도 은천군 안리 동북쪽에 있는 포구인 치하포에서 일본 육군중위 스치다를 처단하며 항일활동을 해왔다.

1899년에는 황해도 각지에 학교를 설립하는 등 신교육 운동에 노력했으며, 1905년에는 을사늑약 무효투쟁을 벌이는 등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했다. 2년 뒤인 1907년에는 국권회복운동의 국내 초대 비밀조직이었던 신민회에 가입해 황해도 총감으로 활동했다. 1919년에는 3·1운동이 일어나자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참여했다. 백범 선생은 임시정부 경무국장과 내무총장, 국무령 등을 역임하면서 당시 어려운 상황에서도 임시정부를 지키고 활성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1931년에는 한인애국단을 조직해 의열투쟁을 전개했으며, 1년 뒤 이봉창, 윤봉길 의거를 일으켜 내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선생은 일제의 추격을 피해 피신 생활을 하면서, 한인청년들을 중국군관학교에 입학하게 하여 군사훈련을 받게 하는 등 다가올 독립전쟁에 대비했다. 1940년 충칭에 정착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에 임명된 백범 선생은 한국광복군을 조직해 군사활동을 펼쳤으며, 독립운동 세력의 통합을 이루었다. 또한, 연합국으로부터 전후 한국의 독립을 보장받는 등 항일운동의 최선봉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투쟁했다.

1945년 선생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에서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가 결정되면서 이에 반대하고, 민족 스스로 통일국가 건설을 주장하며 반탁운동을 전개했다. 1948년에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실시한다는 유엔소위원회의 결의에 반대하며, 남북한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협상을 제의하고 평양에서 열린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했다. 그러나 통일 운동을 저해하려던 친일·반통일 세력에 의해 1949년 6월 26일, 암살을 당하여 세상을 떠났다.

백범 김구 선생이 쓴 자서전인 백범일지에 ‘나의 소원’ 가운데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라는 대목에서 “나는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檀君)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며 홍익인간 사상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문화강국 대한민국을 꿈꿨던 선생의 마음을 엿볼 수 있고, 그 전문을 보면 우리가 기억하고 알릴 가치가 있다. '나의 소원' 일부를 소개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대한(大韓)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各員)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 말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하다. 사랑하는 처자를 가진 가장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한없이 주기 위함이다. 힘드는 일은 내가 앞서 하니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자를 위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네가 좋아하던 인후지덕(仁厚之德)이란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동포, 즉 대한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얼굴에는 항상 화기가 있고, 몸에서는 덕의 향기를 발할 것이다. 이러한 나라는 불행하려 하여도 불행할 수 없고, 망하려 하여도 망할 수 없는 것이다.

민족의 행복은 결코 계급투쟁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개인의 행복이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계급투쟁은 끝없는 계급투쟁을 낳아서 국토의 피가 마를 날이 없고, 내가 이기심으로 남을 해하면 천하가 이기심으로 나를 해할 것이니, 이것은 조금 얻고 많이 빼앗기는 법이다. 일본의 이번 당한 보복은 국제적·민족적으로도 그러함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실례다.

동포 여러분! 이러한 나라가 될진대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네 자손을 이러한 나라에 남기고 가면 얼마나 만족하겠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