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청장 김재현)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나라꽃 무궁화 명소’를 공모한다고 27일 밝혔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공모는 나라꽃 무궁화의 위상을 높이고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으로 지자체에서 조성한 아름다운 무궁화동산, 가로수길을 대상으로 한다.

산림청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7월 9일부터 8월 13일까지 ‘나라꽃 무궁화 명소’를 공모한다. [사진=산림청]
산림청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7월 9일부터 8월 13일까지 ‘나라꽃 무궁화 명소’를 공모한다. [사진=산림청]

산림청(청장 김재현)은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나라꽃 무궁화 명소’를 공모한다고 27일 밝혔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하는 이번 공모는 나라꽃 무궁화의 위상을 높이고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으로 지자체에서 조성한 아름다운 무궁화동산, 가로수길을 대상으로 한다.

무궁화(無窮花)는 왜 무궁화인가. 무궁화라는 이름은 꽃이 7월부터 10월까지 100여 일간 계속 피므로 무궁화라고 불렀다고 한다.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산해경(山海經)』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기원전 8∼3세기 춘추전국시대에 저술된 지리서(地理書)로 알려진 문헌으로, 동진(東晉) 때 곽박(郭璞)이 그 때까지의 기록을 종합, 정리하였다. 

이 책 ‘해외동경(海外東經)’에 “군자의 나라가 그 북쪽에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의관을 갖추고 칼을 차며 짐승을 먹는다. 두 마리의 큰 호랑이를 부리며 곁에 두고 있으며 예절을 중시하여 서로 다투지 않는다. 이곳에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 간유시의 북쪽에 있다고도 한다.”(君子國在其北,衣冠帶劍, 食獸, 使二文虎在旁, 其人好讓不爭. 有薰華草, 朝生夕死. 一曰在肝榆之尸北.)

군자국은 우리나라를 말하며, 훈화초는 무궁화의 옛 이름이다. 이로 미루어 아주 예로부터 무궁화가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신라 효공왕이 문장가 최치원(崔致遠)에게 작성시켜 당나라에 보낸 국서(國書) 가운데 “만약 폐하의 뛰어난 생각과 외로운 결단이 신필로 내려지지 않았다면, 근화향(槿花鄕, 신라)의 염치와 겸양의 기풍이 가라앉고 호시국(楛矢國,발해)의 독통(毒痛)이 더욱 성하게 되었을 것이라(非陛下英襟獨斷 神筆橫飛 則槿花鄕廉讓自沈 楛矢國毒痡愈盛云云)”고 한 것이 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또 고금기에는 군자의 나라는 사방 천리이고 목근화가 많다(又古今記曰, 君子之國地方千里, 多木槿花."라고 하고 "고려 때 표사(表詞에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이라 칭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은 신라시대 이미 우리나라를 근화향,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불렀고 그것이 고려로 이어졌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고려 공민왕 12년 행촌 이암이 강화도에서 저술한 『단군세기』에 무궁화(桓花)에 관한 기록이 있다.

5세 단군 구을(丘乙)은 “16년 정축(丁丑)에 친히 장당경(藏唐京)에 행차하여 삼신단(三神壇)을 쌓고 제사를 지내고 환화(桓花, 무궁화)를 많이 심었다.”

13세 단군 흘달(屹達) 때 기록을 보면 “무술 20년(戊戌, 서기 전 1763)에 소도(蘇塗)를 많이 설치하여 천지화(天指花)를 심고 아직 결혼을 안 한 자제(子弟)들에게 독서와 활쏘기를 익히게 하였으니 이를 국자랑(國子郞)이라 하였다. 국자랑이 나와 다닐 때에는 머리에 천지화를 꽂았기 때문에 그때 사람들은 이들을 천지화랑(天指花郞)이라 불렀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 숙종 원년(1675)에 북애자가 저술한 『규원사화』에도 무궁화의 기록이 나온다.

“경인년은 벌음 임금 원년이다. 훈화를 뜰 아래 심어 정자를 만들었다.(庚寅歲, 壬儉伐音元年. 種薰華於階下, 以爲亭.)”

환화, 천지화는 무궁화를 일컫는 말이다.

조선 세종 때 강희안(姜希顔)이 저술한 한국 최고의 화목에 관한 책인 『양화소록(養花小錄)』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단군(檀君)이 개국할 때 무궁화[木槿花]가 비로소 나왔기 때문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일컫되 반드시 ‘무궁화의 나라(槿域)’라 말하였으니, 무궁화는 예로부터 우리 나라의 봄을 장식하였음이 분명함을 알 수 있다.”라는 기록도 있다.

또한, 1935년 10월 21일 ‘동아일보’ 학예란에 ‘조선의 국화 무궁화의 내력’이라는 제목 아래 “아마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조선에도 개화풍이 불어오게 되고 서양인의 출입이 빈번해지자 당시의 선각자 윤치호(尹致昊) 등의 발의로 양악대를 비롯하여 애국가를 창작할 때 애국가의 뒤풀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넣었다"고 하였다. 이 구절이 들어가면서 무궁화는 조선의 국화가 되었다.

산림청은 1차 서류심사를 거친 6개소를 대상으로 2차 현장심사를 진행하며, 생육환경의 적합성·규모성·접근성·사후관리 적절성·명소화 가능성 등을 종합 평가해 9월 중 결과를 발표한다. 최우수 기관에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과 상금 300만 원을 수여한다.

접수 기간은 오는 7월 9일부터 8월 13일까지이며, 서류는 공모를 하려는 시·도에서 산림청으로 접수하면 된다.

산림청 김주열 도시숲경관과장은 “이번 공모를 통해 아름다운 무궁화 동산과 가로수길 명소를 선정하고 널리 알릴 계획”이라며 “나라꽃 무궁화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리고 무궁화가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꽃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산림청은 1차 서류심사를 거친 6개소를 대상으로 2차 현장심사를 진행하며, 생육환경의 적합성·규모성·접근성·사후관리 적절성·명소화 가능성 등을 종합 평가해 9월 중 결과를 발표한다.

최우수 기관에는 농림축산식품부장관상과 상금 300만 원을 수여한다. 접수 기간은 오는 7월 9일부터 8월 13일까지이며, 서류는 공모를 하려는 시·도에서 산림청으로 접수하면 된다.

산림청 김주열 도시숲경관과장은 “이번 공모를 통해 아름다운 무궁화 동산과 가로수길 명소를 선정하고 널리 알릴 계획”이라며 “나라꽃 무궁화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리고 무궁화가 국민에게 친근하고 사랑받는 꽃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