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만발한 북촌가는 길. 관람객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꽃 그늘 아래서 방문인증 사진을 남긴다. 사진 강나리 기자.
봄꽃이 만발한 북촌가는 길. 관람객들이 한복을 차려입고 꽃 그늘 아래서 방문인증 사진을 남긴다. 사진 강나리 기자.

외국인에게 서울에서 5대 궁궐만큼 잘 알려진 명소가 북촌 한옥마을이다. 삼삼오오 한복을 차려입고 북적이는 이곳은 조선왕조 초기부터 명문대가가 자리잡았던 곳이라 현재까지 600여 년의 역사와 함께 수많은 인물의 흔적들이 켜켜이 쌓인 곳이기도 하다.

이번에 간 곳은 북촌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서 있는 정독도서관이다. 여행자에게 도서관은 특별히 선호하는 공간이 아닐 수 있지만, 서울의 역사만큼 깊은 시공간의 이야기가 잠든 곳이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정독도서관으로 가는 길은 왼쪽에 북악산과 인왕산 전경이 펼쳐진 ‘열린 송현’, 오른쪽에 서울공예박물관(안동별궁 터) 사이에 놓인 감고당길이다.

열린 송현과 서울공예박물관 사이 감고당길을 오르면 정독도서관으로 곧장 갈 수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열린 송현과 서울공예박물관 사이 감고당길을 오르면 정독도서관으로 곧장 갈 수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조선 사극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소재 중 하나가 18C 초 숙종과 장희빈, 인현왕후의 러브스토리이자 궁중 암투극이다. 감고당은 인현왕후(1667~1701)의 친정이 있던 곳으로, 장희빈과의 격돌 끝에 왕비에서 폐위되어 복위될 때까지 5년간 머문 곳이다.

실제는 왕실 치정 문제가 아니라 서인세력인 인현왕후와 남인세력인 장희빈을 폐위, 복위하면서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을 단행함으로써 많은 권신을 숙청과 권력이동으로 조정한 숙종의 ‘환국정치’라고 평한다.

이후 영조는 효성이 지극했던 인현왕후를 기려 ‘감고당’이라는 편액을 하사했으며, 현재 그 자리에 덕성여자고등학교가 세워졌다. 맞은편 덕성여자중학교 터는 천도교를 비롯한 종교계 지도자들이 3.1운동 계획을 논의했던 옛 천도교 중앙총부가 있던 곳이다.

(왼쪽부터) 감고당터였던 덕성여자고등학교, 덕성여자중학교, 여성독립운동가의 길 표지석. 사진 강나리 기자.
(왼쪽부터) 감고당터였던 덕성여자고등학교, 덕성여자중학교, 여성독립운동가의 길 표지석. 사진 강나리 기자.

감고당길의 또 다른 이름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길’이다. 일제강점기 덕성여자 중‧고등학교의 전신인 근화여학교 학생들이 1930년 일제에 항거한 광주학생운동에 호응해 시위를 전개한 독립운동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은 “살되 네 생명으로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라는 교훈으로 학생들을 가르쳐 2002년 독립유공자(건국훈장 애족장)로 서훈되었다.

정독도서관 초입의 표지석. 이곳이 왕실의 정원을 관리하던 장원서 터이자 충의의 상징인 성삼문 선생이 태어나 살던 곳, 그리고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공간이다. 사진 강나리 기자.
정독도서관 초입의 표지석. 이곳이 왕실의 정원을 관리하던 장원서 터이자 충의의 상징인 성삼문 선생이 태어나 살던 곳, 그리고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공간이다. 사진 강나리 기자.

440m의 길 끝에 정독도서관 초입에는 이 공간의 역사적 여정을 알 수 있는 표지석들이 나란히 놓여있다. 먼저, 이곳은 조선 건국 초부터 왕실의 정원과 전국의 과수원을 관리하며 궁중과 여러 관아에 과일과 화초 등을 공급하던 관청인 장원서 터였다.

그리고 쫓겨난 어린 임금 단종의 복위를 꾀했던 사육신 중 한 분인 성삼문이 태어나 자란 곳이기도 했다. 그는 18세에 생원시에 합격했고 학문과 인품이 뛰어나 세종이 직접 집현전 학사로 발탁한 인재로, 세종이 어린 원손(단종)을 부탁한 것을 끝까지 지켰다. 도모한 일이 발각되어 국문장에서 고신拷訊을 당할 때도 서슬 시퍼런 세조를 ‘나으리’라 부르며 맞섰고 끝내 능지처사 당했다.

정독도서관은 학교 건물을 도서관으로 바꾼 형태라 구조가 독특하다. 사진 강나리 기자.
정독도서관은 학교 건물을 도서관으로 바꾼 형태라 구조가 독특하다. 사진 강나리 기자.

세 번째 표지석에는 이 터가 중등교육의 발상지로 1900년 고종황제의 칙령에 따라 1938년 우리나라 최초로 건립된 관립중등학교인 경기고등학교가 있던 자리라고 기록되어있다. 정독도서관에 들어섰을 때 1동과 2동, 3동이 뒤쪽으로 늘어서 있어 일반적인 도서관 구조와는 다른 이유도 학교 건물로 지었기 때문이다.

4월 초 정독도서관 정원은 봄을 맞아 활짝 핀 벚꽃을 보러온 관람객으로 들썩인다. 사진 강나리 기자.
4월 초 정독도서관 정원은 봄을 맞아 활짝 핀 벚꽃을 보러온 관람객으로 들썩인다. 사진 강나리 기자.

1동과 2동 사이 옛 언덕 터에는 디딜방아의 확돌과 좌대座臺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이곳이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청백리 맹사성과 그 후손들이 살아 ‘맹동산’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그때의 흔적이 아닐까 한다.

(왼쪽) 디딜방아의 확돌. (오른쪽) 구조물을 받치고 있던 좌대. 정독도서관 윗 편에는 세종대왕 때 소박한 성격과 청렴한 생활로 청백리로 칭송받던 맹사성 집터가 있는데 이곳 정독도서관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왼쪽) 디딜방아의 확돌. (오른쪽) 구조물을 받치고 있던 좌대. 정독도서관 윗 편에는 세종대왕 때 소박한 성격과 청렴한 생활로 청백리로 칭송받던 맹사성 집터가 있는데 이곳 정독도서관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한편, 표지석에는 없지만, 또 다른 역사 인물의 흔적이 있다. 현재 도서관 구내식당 건물인 ‘소담정’은 조선 말 개화파로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김옥균의 집터였다. 북촌에 연암 박지원의 손자이자 개화파의 스승인 박규수의 집이 있었고, 그곳에서 똑똑한 양반 자제들을 가르쳤는데 김옥균과 홍영식, 박영효, 유길준 등이 그의 제자였다.

(맨위) 정독도서관 정원의 '겸재 인왕제색도기념비'. (중간) 우측 측면에 새긴 '인왕제색도'. (맨 아래) 인왕제색도의 실물 풍경(3월 26일 촬영)이 보인다. 지금은 화려한 벚꽃에 가려 산새가 잠시 모습을 감추었다. 사진 강나리 기자.
(맨위) 정독도서관 정원의 '겸재 인왕제색도기념비'. (중간) 우측 측면에 새긴 '인왕제색도'. (맨 아래) 인왕제색도의 실물 풍경(3월 26일 촬영)이 보인다. 지금은 화려한 벚꽃에 가려 산새가 잠시 모습을 감추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정독도서관 앞 풀밭에는 ‘겸재 인왕제색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측면에는 우리 산천을 직접 답사하고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의 유명한 ‘인왕제색도(국보 216호)’가 그려져 있다. 그 자리에서 오른쪽으로 한걸음 걸어 정면을 보면 ‘아! 이곳이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

평소 고요한 독서공간인 정독도서관의 정원은 봄을 맞아 활짝 핀 벚꽃을 찾아온 방문객들로 북적인다. 벚꽃들이 긴 터널을 이루는 데 오랜 것은 수령이 80년 정도이다. 특히, 정독도서관 정면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는 계단 안쪽에 자리 잡은 12m 높이의 수양벚나무가 가지를 축축 늘어뜨린 모습은 시선을 사로잡는다.

저녁 노을이 물들 무렵 수양벚나무. 80년 생으로 12m에 이른다.
저녁 노을이 물들 무렵 수양벚나무. 80년 생으로 12m에 이른다.
수양벚나무 가지에 늘어진 꽃가지. 사진 강나리 기자.
수양벚나무 가지에 늘어진 꽃가지. 사진 강나리 기자.
정독도서관 내 벚나무에서 벚꽃이 가지에만 달려있지 않고 고목의 몸체에서도 돋아나고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정독도서관 내 벚나무에서 벚꽃이 가지에만 달려있지 않고 고목의 몸체에서도 돋아나고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이곳에 자리했던 경기고등학교는 1970년대 당시 정부가 강남을 개발하면서 명문고들을 강남으로 대거 이전하던 1976년 강남구 삼성동으로 옮겨졌고, 1977년 도서관으로 탈바꿈했다.

맹사성 대감과 성삼문, 경기고등학교에서 도서관으로, 그러고 보면 이 터가 문文의 기운이 넘친 곳이었나 보다.

정독도서관을 나서서 오른편 길을 따라 오르고 내리면서 한옥이 밀집한 북촌 한옥마을을 만날 수 있다. 옛 동네처럼 골목이 발달하여 한 걸음씩 내디디면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설렌다. 문득 굽어본 한옥의 독특한 지붕 선이 마주한 골목이 정겹다.

북촌 한옥마을길 건물 6층 높이의 키 큰 백목련 나무 아래서 한복을 입은 외국인 방문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북촌 한옥마을길 건물 6층 높이의 키 큰 백목련 나무 아래서 한복을 입은 외국인 방문객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그러나 벽마다 관광객의 소음을 불편해하는 주민들의 호소가 플래카드로 붙어있다. 소음뿐 아니라 인근 청와대 상시개방 이후에는 불법주차로 인한 불편까지 겹쳤나보다.

골목이 정겨운 북촌 한옥마을 곳곳에는 주민들의 삶을 방해하는 소음과 주차문제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있다. 이들은 이태원 사태가 이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골목이 정겨운 북촌 한옥마을 곳곳에는 주민들의 삶을 방해하는 소음과 주차문제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있다. 이들은 이태원 사태가 이곳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북촌 한옥마을은 2010년대 말부터 제주도에 이은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 지역으로 손꼽혔다. 수용 가능한 범위를 넘는 관광객이 몰려들며 관광객이 지역을 점령해 주민의 삶을 침범하는 것이다.

여행객의 들뜬 마음에 웃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겠으나 이곳이 삶의 공간인 이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