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회장 민성진)는 오는 4월 12일(수)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묘역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54주기 운암 김성숙 선생 추모제’를 개최한다.

이번 추모제는 국가보훈처, 서울특별시, (사)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이 후원한다.

나치만 서울보훈청장, 함세웅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회장,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남양주시 갑), 독립운동가 기념사업회장, 독립운동가 후손을 비롯하여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 주지, 초격 스님, 용문사 주지 도일 스님, 화도 보광사 주지 선우 스님 등 불교계 인사 250여 명이 참석한다. 또한 관심 있는 이들은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는 오는 4월 12일(수)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묘역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제54주기 운암 김성숙 선생 추모제’를 개최한다. 이미지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는 오는 4월 12일(수)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요인묘역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제54주기 운암 김성숙 선생 추모제’를 개최한다. 이미지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이번 54주기 추모제는 코로나 종식에 맞춰 한국의 어쿠스틱 트리오 그룹인 ‘자전거 탄 풍경’의 추모 공연과 K-국악을 선도하는 국악퓨전 그룹 ‘비단’이 참여하여 국민과 함께하는 추모문화제를 만들어 갈 계획이다.

특히 이번 54주기 추모제는 운암 김성숙 선생이 직접 쓴 1964년의 자필일기(혁명일기)를 공개한다. 배우 황설하의 낭독으로 지조와 절개로 지켜온 운암의 민족국가의 독립과 민주화 정립을 위해 헌신했던 우국충정의 절절한 마음과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음에도 가난과 병고로 쓸쓸한 말년을 보낸 선생의 일기를 알려 애국심을 고취하고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또한 추모제 장소인 임시정부요인 묘역에서 독립운동가 웹툰 전용 플랫폼 독립닷컴 게재 웹툰 전시를 한다.

운암 김성숙 선생이 의열단 선전부장과 조선의용대 정치부장으로 창작과 집필을 통한 민족국가의 독립운동을 주도적으로 전개했던 것처럼 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는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아 21세기 가장 효과적인 독립정신 선양 콘텐츠인 독립운동가 웹툰의 보급 활성화를 통하여 청소년에게 더욱 쉽고 친근하게 대한민국 독립운동사를 알리고자 한다.

운암 김성숙 선생 자필 "혁명일기" 이미지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운암 김성숙 선생 자필 "혁명일기" 이미지 (사)운암김성숙선생기념사업회

지난 2022년 11월 10일 의열단 창단 103주년을 맞이하여 웹툰 <우단사련>을 제작하고, 독립운동가 웹툰 전용 플랫폼 독립닷컴을 개설하여 흩어져 있는 각 기관의 독립운동가 웹툰을 하나로 모아 독립운동가 웹툰 자료실로 만들어 누구나 독립운동가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김성숙 선생(1898. 3. 10~1969. 4. 12)은 평안북도 철산군에서 출생하고 출가하여 승려가 된 후 경기도 고양군으로 전적하였다.

1919년 3월 경기도 남양주군 봉선사의 승려로 있을 때 조선독립군 임시사무소라는 명의로 동료들과 함께 격문을 만들어 약 200매를 인근 동리에 살포한 사건으로 1919년 9월 고등법원에서 징역 6개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무산자동맹 노동공제회에 참석하는 등 적극적 항일민족운동을 전개하였다. 1923년 불교 유학생으로 중국 북경으로 건너가 조선의열단에서 선전부장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에는 중국 전역의 한국인 청년들을 모아 재중국조선청년총연맹을 조직하고, 1937년에는 조선민족해방동맹을 결성하였으며, 조선민족의용대의 간부로 활동하던 중 1942년 임시정부의 내무차장이 되었다.

1943년 4월부터 임시정부내에 행정부의 한 부처로 선전부가 설치 됨에 따라 조소앙, 신익희 등 14명과 함께 선전계획의 수립, 선전진행 방침에 관한 사항 등을 의결하는 선전위원으로 임명되었으며, 임시정부의 국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광복 후 독재정권에 맞서 신민당 창당 주역으로 활동하다 지난 1969년 4월 12일 동지들이 비나 피하라고 마련해준 11평 ‘피우정’에서 서거하였다. 정부는 선생에게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