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 아래 펼쳐진 전경에는 광화문에서 경회루, 청와대가 일직선 상에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 옥상정원에서 본 청와대. 사진 강나리 기자.
북악산 아래 펼쳐진 전경에는 광화문에서 경회루, 청와대가 일직선 상에 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 옥상정원에서 본 청와대. 사진 강나리 기자.

열린송현의 높은 담장이 걷히고 난 후 경복궁의 주산인 북악산의 산세가 드러나고 중턱쯤 푸른 기와지붕을 얹은 청와대가 보인다.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 출범한 이래 대통령의 공간이자 주요 국정운영이 결정되는 곳이며, 국빈을 맞아들이던 특별한 장소가 개방되어 국민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24일 이후 전날 예약만 하면 누구나 그 공간을 밟아볼 수 있다.

청와대 본관은 좌우 날개와 같은 별채와 연이어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청와대 본관은 좌우 날개와 같은 별채와 연이어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청와대 별관 동쪽 별채. 사진 강나리 기자.
청와대 별관 동쪽 별채. 사진 강나리 기자.
청와대 별관 서쪽 별채. 사진 강나리 기자.
청와대 별관 서쪽 별채. 사진 강나리 기자.

그런데 청와대를 방문하기 전 들러볼 곳이 있다. 광화문 앞쪽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 옥상정원에서 전경을 보면 광화문과 경회루 등 주요 전각, 그 뒤편에 청와대가 일직선상에 놓이고, 이를 둘러싼 북악산 줄기가 한눈에 펼쳐져 그 위치가 남다르다.

북악산 아래 펼쳐진 공간에 관한 역사기록은 1104년 고려 숙종 때에 나타난다. 고려에서 왕도의 궁궐 밖에 두는 4개의 별궁 중 남경南京에 해당하니 1,000여 년의 역사터다.

국무회의가 열린 서쪽 별채 세종실 입구에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직전 문재인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국무회의가 열린 서쪽 별채 세종실 입구에는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직전 문재인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조선의 기록에 북악산에는 산신에 제를 올리는 사당인 백악사 외에 어떠한 시설물도 세우지 않는 금단의 땅이었는데 유일하게 세운 것이 회맹대會盟臺라고 한다. 회맹은 임금이 공신들과 산 짐승을 잡아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그 피를 서로 나누어 마시며 단결을 맹세하던 의식이다.

조선은 건국 때부터 국난수습 후 공신을 책봉했는데 회맹제는 공신과 그 후손만 참여해 충성을 서약하는 비밀스러운 의식이었다고 한다. 2021년 국보로 승격된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에는 숙종 때 회맹제에 임진왜란 극복으로 공신이 된 권율, 원균 후손도 참여했으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후손이 초대받지 못한 것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왕의 후원이자 회맹단이 있던 현 청와대 터는 조선 말 고종 2년(1865년)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무과 과거시험이 치러지는 ‘경무대’가 되었다. 융문당과 융무당이라는 전각을 중심으로 넓은 마당에서 활쏘기를 비롯해 무관에게 필요한 재능을 겨루었다.

청와대 내 옛조선총독 관저 지붕 위에 놓였던 항아리 모양의 장식기와 절병통만 남겨져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청와대 내 옛조선총독 관저 지붕 위에 놓였던 항아리 모양의 장식기와 절병통만 남겨져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하지만, 1910년 강제병합 이후 이곳도 격랑을 겪었다. 조선총독부가 경복궁에 설치되고 통치 20년을 기념해 1929년 경복궁과 후원에서 조선박람회를 개최하면서 융문당, 융무당 두 전각은 해체되어 일본 진언종사찰인 용광사에 무상대여 형식으로 용산에 이전되었다.

또한, 1939년 조선총독 관저가 현재 청와대 영빈관 터에 세워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선의 법궁, 경복궁은 마치 손을 뒤로 묶인 채 뒤통수에 총을 겨눈 적 앞에서 선 포로와 같은 형세였겠다.

1945년 광복이 되자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남과 북을 가르는 3.8선을 그은 주한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이 경무대를 관저로 사용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했을 때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경무대라는 명칭으로 집무실과 관저로 사용했다.

이후 1960년 4.19혁명 후 윤보선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통해 명칭을 ‘청와대’라 바꿨고, 1991년 9월 노태우 대통령이 새롭게 15만 장의 푸른 기와를 얹은 청와대를 준공했다.

본관 2층 대통령의 집무실로 올라가는 계단 양쪽에 조선왕실에서 쓰던 것으로, 주칠을 한 자개장이 놓여있다.
본관 2층 대통령의 집무실로 올라가는 계단 양쪽에 조선왕실에서 쓰던 것으로, 주칠을 한 자개장이 놓여있다.

한편, 정부중앙청사로 이용되던 조선총독부 청사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다 김영삼 대통령 당시인 1995년 일제 잔재 제거의 의미로 철거했다. 청와대 구관도 철거하면서 구관 지붕 위에 얹었던 항아리 형태의 장식기와인 화강암 절병통만 잔디 언덕에 놓여있다.

청와대 관람을 위해 정문에 들어서면 사전예약한 내역의 바코드를 읽히는 절차 이후 1시간 반 동안 둘러볼 수 있다. 그중 본관은 관람 안내선을 따라가면서 곳곳을 보는 시스템이다.

(시계방향으로) 대통령 집무실 앞쪽 접견실로 벽면에 일월오봉도가, 카펫에는 십장생도가 있다. 청사초롱을 모티브로 한 벽등, 천장 샹들리에 주변 사조룡 문양, 샹들리에는 청사초롱을 모아놓은 형태로 환영의 의미를 담았다. 사진 강나리 기자.
(시계방향으로) 대통령 집무실 앞쪽 접견실로 벽면에 일월오봉도가, 카펫에는 십장생도가 있다. 청사초롱을 모티브로 한 벽등, 천장 샹들리에 주변 사조룡 문양, 샹들리에는 청사초롱을 모아놓은 형태로 환영의 의미를 담았다. 사진 강나리 기자.

서쪽 별채의 세종실은 국무회의가 열린 공간으로, 입구 벽에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직전 문재인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무궁화실에는 역대 영부인들의 초상화가 꾸며져 있다.

2층으로 향하는 계단 양쪽에는 붉은색 주칠을 한 화사한 자개장이 있는데 조선 왕실에서 사용하던 것이라 한다. 2층 천장을 보면 우리 천문학의 최고 자랑거리인 ‘천상열차분야지도’가 문양으로 펼쳐져 있다.

본관 2층 천정에는 우리나라 천문학의 최고 자랑거리인 천상열차분야지도 문양이 펼쳐져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본관 2층 천정에는 우리나라 천문학의 최고 자랑거리인 천상열차분야지도 문양이 펼쳐져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현존하는 천문도 중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만들어진 전천全天 천문도로 경이로운 정밀도를 자랑한다. 조선 건국 초 태조 이성계가 정통성을 세우고자 고구려 멸망 후 평양 대동강에 빠져 사라진 천문도의 인본을 가져다 세종 때까지 완성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집무실과 접견실에는 일월오봉도와 십장생도로 이루어진 벽면, 카펫이 있다. 접견실 벽면과 천장의 사각 샹들리에는 청사초롱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고, 천정등 둘레에는 네발을 가진 사조룡 두 마리가 회오리처럼 마주한 문양들이 연이어 있다. 곳곳에 한국적인 요소를 넣었는데 전체적인 콘셉트가 마치 왕의 공간인 듯 구성했다.

대통령 집무실. 사진 강나리 기자.
대통령 집무실. 사진 강나리 기자.

본관 1층 인왕실은 노무현 대통령이 부탁해 그렸다는 故 전혁림 화백의 통영항 그림이 벽면 전체를 장식하고 있다. 동쪽 별채의 충무실은 대규모 인원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거나 회의를 하는 공간으로 입구 바닥 카펫의 장식은 충무공을 기려 거북등 문양이다.

대통령과 가족의 일상생활공간인 관저는 1990년 옛 궁궐을 지을 때 사용하는 최고의 목재인 금강송으로 지었다고 한다. 인수문仁壽門으로 들어서면서 기둥을 보니 방수를 위해 니스를 칠한 흔적과 벗겨진 기둥이 다소 아쉬운 느낌이다.

(시계방향으로) 관저 앞 정원수 노송들, 관저로 들어가는 인수문, 지붕 귀마루를 따라 서 있는 어처구니(잡상), 관저 내 손님접대 공간. 사진 강나리 기자.
(시계방향으로) 관저 앞 정원수 노송들, 관저로 들어가는 인수문, 지붕 귀마루를 따라 서 있는 어처구니(잡상), 관저 내 손님접대 공간. 사진 강나리 기자.
관저 내 독특한 장식. 비가 오는 날 빗물이 타고 내려오는 곳이라 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관저 내 독특한 장식. 비가 오는 날 빗물이 타고 내려오는 곳이라 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관저를 나와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청와대 내 유일한 정자인 오운정五雲亭과 ‘미남불’이라는 별칭을 가진 경주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을 만난다. 경주 석굴암 부처와 같은 시기 조성되었다고 한다.

또한, 돌축대 위에 1920년대 한옥 건축양식이 남아있는 침류각枕流閣이라는 고옥이 초가와 나란히 서 있다. 침류는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이라 한다. 이외에도 청와대를 방문하는 외국 손님에게 전통 한옥을 소개하기 위해 지은 20평 규모의 별관 상춘재도 눈길을 끈다.

(시계방향으로) 청와대의 유일한 정자 '오운정', 미남불로 불리는 경주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1920년대 한옥 양식이 남아있는 침류각. 사진 강나리 기자.
(시계방향으로) 청와대의 유일한 정자 '오운정', 미남불로 불리는 경주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1920년대 한옥 양식이 남아있는 침류각. 사진 강나리 기자.

청와대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수령이 오래된 반송과 회화나무, 말채나무, 용버들이 서있는 노거수군, 그리고 곳곳에 서 있는 멋진 나무들이다. 특히 저녁 햇살 속 향나무가 엿가락처럼 휘어져 꿈틀거리듯 뻗어나간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청와대 노거수 군의 반송. 이곳에 반송외에도 용버들과 회화나무, 말채나무 거목들이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청와대 노거수 군의 반송. 이곳에 반송외에도 용버들과 회화나무, 말채나무 거목들이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저녁 햇살이 비친 향나무의 꿈틀거리며 뻗어나간 가지들. 청와대 내에는 노거수군 외에도 거목들이 많다. 사진 강나리 기자.
저녁 햇살이 비친 향나무의 꿈틀거리며 뻗어나간 가지들. 청와대 내에는 노거수군 외에도 거목들이 많다. 사진 강나리 기자.

고려의 이궁으로 조선조 충성을 맹세하던 회맹단, 왕의 후원으로 무관을 선발하던 곳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주요 국정이 운영되던 공간이 되었다. 이 공간과 잘 어울리는 글자는 충忠이라고 할 수 있겠다. 풀면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이 공간이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중심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보는 공간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해질녘 상춘재. 사진 강나리 기자.
해질녘 상춘재. 사진 강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