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익숙해서 눈에 들어오지 않던 풍광도 ‘여행자의 눈’으로 보면 뜻밖의 특별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조선 건국 초부터 600년이 넘는 동안 수도 역할을 해온 서울의 숨은 명소와 보물,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홍지문 인근 옥천암 계곡. [사진 강나리 기자]
홍지문 인근 옥천암 계곡. [사진 강나리 기자]

홍제천 물길을 따라 홍지문으로 향하는 길의 끝자락, 큰 S자로 굽이치는 시원한 계곡 풍광 속에 옥천암이 자리하고 있다. 계곡물에 잠긴 바위 위의 왜가리, 잰 몸짓으로 먹이를 찾는 청둥오리 한 쌍에 눈길을 빼앗겼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왼편 작은 전각에서 누군가 내다보는 듯한 모습이 카메라에 담겼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의 왜가리(위)와 청둥오리 한쌍. [사진 강나리 기자]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의 왜가리(위)와 청둥오리 한쌍. [사진 강나리 기자]

계곡 냇가 산비탈에 기대어 세운 암자도 특이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불상이 아니라 큰 바위에 새겨진 하얀 마애불이다. 큰 바위에 소박한 불심을 담아 음각으로 새긴 일반적인 마애불과 달리 조개껍데기 등을 갈아 만든 하얀 호분(胡粉)을 칠하여 백의관음을 떠올리게 한다.

보도각이라 현판이 걸린 전각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듯한 '옥천암 마애보살'.  전각 왼쪽으로 마애불을 품은 큰 바위가 보인다. [사진 강나리 기자]
보도각이라 현판이 걸린 전각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듯한 '옥천암 마애보살'. 전각 왼쪽으로 마애불을 품은 큰 바위가 보인다. [사진 강나리 기자]

둥그스름하면서 갸름한 얼굴, 반개한 깊은 눈매와 반듯한 콧날, 도톰한 입술로 단아하다. 둥근 어깨를 따라 천의(天衣)의 주름이 부드럽게 흘러내려 가슴 앞에서 옷자락이 서로 교차해 이루어진 선이 자연스럽다. 도톰한 오른손을 들어 중지를 엄지 첫마디에 붙여 가슴 앞에 세우고, 왼손은 무릎에 편안하게 내려놓고 중지와 엄지를 마주했다.

또한, 머리에는 꽃문양이 들어있는 삼면 절첩형 보관을 썼다. 보관 좌우에는 쇠뿔 모양의 관대에 타원형으로 구슬을 꿰어 만든 듯한 영락(瓔珞)장식이 달려있다. 보관과 귀걸이와 가슴 앞 두터운 띠모양의 목걸이, 팔찌, 그리고 불상의 입술은 주황색으로 칠해져 수려한 느낌을 주었다. 전체적으로 남성적인 느낌과 여성적인 느낌을 모두 가지고 있다.

12~13세기 고려 후기 양식의 단아하고 아름다운 옥천암 마애보살좌상. 보도각 백불, 불암 등으로 불렸으며 조개껍데기 등을 갈아 만든 하얀 호분을 칠해 독특하다. [사진 강나리 기자]
12~13세기 고려 후기 양식의 단아하고 아름다운 옥천암 마애보살좌상. 보도각 백불, 불암 등으로 불렸으며 조개껍데기 등을 갈아 만든 하얀 호분을 칠해 독특하다. [사진 강나리 기자]
둥그스름하면서도 갸름한 얼굴 선, 반개한 깊은 눈, 건장하면서도 우아한 선이 돋보이는 마애불이다. [사진 강나리 기자]
둥그스름하면서도 갸름한 얼굴 선, 반개한 깊은 눈, 건장하면서도 우아한 선이 돋보이는 마애불이다. [사진 강나리 기자]

특히, 불상 앞에 마련된 수행공간에 앉아 고개를 들면 무심한 듯 시원하고 깊은 눈길과 마주하게 된다. 속마음을 털어놓아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될 듯 느껴진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와 바람이 느껴지고, 마애불의 눈길이 떠오른다.

6미터 높이의 커다란 바위에 약 5미터(483cm) 높이로 새긴 이 불상은 ‘서울 옥천암 마애보살좌상(보물 제1820호)’으로, ‘불암(佛巖) 또는 ‘보도각 백불(白佛)’로도 불린다. 12~13세기 고려 후기 양식을 대표하는 걸작이라는 이 불상은 얼굴 형태와 수인(手印), 화려한 보관과 옷주름 형태 등 생김생김이 서울 보타사 마애보살좌상(보물 1828호, 서울 성북구 안암동)와 꼭 닮았다.

옥천암 마애불 앞쪽과 뒤편에는 사람들의 소원을 적은 연등이 가득하다. [사진 강나리 기자]
옥천암 마애불 앞쪽과 뒤편에는 사람들의 소원을 적은 연등이 가득하다. [사진 강나리 기자]

조선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서울)에 도읍을 정할 때 이 불상 앞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조선의 여러 기록에 이 마애불의 이야기가 전하는데 가장 앞선 기록은 조선 전기 대학자인 성현(成俔, 1439~1504)이 지은 《용재총화(慵齋叢話)》이다. 당대 민간풍속과 문물 제도, 인물, 역사 등을 정리한 이 책에는 “장의사 앞 … 물줄기를 따라 몇 리를 내려가면 불암이 있는데 바위에 불상을 새겼다”라고 했다.

홍제천변 산비탈을 따라 옥천암의 일주문과 범종각, 극락전이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홍제천변 산비탈을 따라 옥천암의 일주문과 범종각, 극락전이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옥천암이란 명칭은 18세기 후반부터 등장하고, 19세기 이후 마애불은 ‘해수관음(海水觀音)’, ‘백의관음’, ‘백불’이라고 불렸는데, 고종 5년인 1868년 명성황후가 해수관음 곁에 관음전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대원군의 부인이자 고종의 어머니인 여흥부대부인 민씨가 옥천암에서 아들 고종을 위해 기도하며 호분을 발랐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마애불의 뒤편으로 돌아 오르면 옥천암의 일주문과 함께 목어(木魚)와 범종(梵鐘), 운판(雲版), 법고(法鼓)가 있는 전각, 그리고 극락전이 나온다. 옥천암에서 8분 정도 하천변을 따라 오르면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는 북쪽의 문, 홍지문이 나온다. 과거 인왕산 동북쪽에서 북쪽 능선을 따라 축성된 산성, 탕춘대성(蕩春臺城)의 성문이었다.

홍제천길 끝자락에 있는 홍지문. [사진 강나리 기자]
홍제천길 끝자락에 있는 홍지문. [사진 강나리 기자]

과함도 모자람도 없는 균형미가 뛰어난 옥천암 마애불. 홍제천을 따라 걷는 도보여행을 통해 비로서 만나게 된 보물이다.

홍제천길은 홍지문에서 한강 망원공원까지 8.5~9km 거리로 이어진 도보길이다. 중백로와 직박구리, 쇠백로, 왜가리, 흰빰검둥오리, 민물 가마우지 등 새들을 만날 수 있고 마포구와 서대문구, 종로구로 이어지는 다양한 서울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