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에 떠나는 산사山寺여행, 송광사
초가을에 떠나는 산사山寺여행, 송광사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22-09-14 15: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초가을, 고즈넉한 산사(山寺)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바쁜 일상에 작은 쉼이 된다.

전남 순천 송광면과 승주읍에 걸쳐 경관이 빼어난 조계산 도립공원에는 천년을 훌쩍 뛰어넘는 오랫동안 자연과 사람을 품어 안은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다.

송광사 입구에 세워진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라고 쓰인 표지석. 송광사는 신라 말에 세워진 사찰로, 우리나라 삼보 사찰 중 가장 많은 고승을 배출한 승보종찰로 유명하다.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 입구에 세워진 '승보종찰 조계산 송광사'라고 쓰인 표지석. 송광사는 신라 말에 세워진 사찰로, 우리나라 삼보 사찰 중 가장 많은 고승을 배출한 승보종찰로 유명하다. [사진 강나리 기자]

그중 송광사는 신라 말 혜린(慧璘)선사가 ‘송광산 길상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사(定慧寺)로 고쳤고 고려 희종은 수선사(修禪寺)로 고쳤으며, 이후 진각국사 혜심스님이 송광사(松廣寺)로 바꿨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는 30~40명의 스님이 머무는 작은 사찰이었으나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 지눌(1158~1210)에 의해 80여 동의 건물을 가진 대사찰이 되었다. 6.25 전쟁 중 소실되어 현재는 50여 동을 유지하는데 현재도 그 규모가 상당한 대사찰이다. 특히, 송광사는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해 16명의 국사가 주석했던 선종사찰로, 우리나라 삼보사찰 중 가장 많은 고승을 배출한 승보종찰(僧寶宗刹)로 유명하다.

이제 막 가을에 들어선 고요한 송광사를 걸으면 천년 간의 이야기를 간직한 곳들을 만나게 된다. 또한, 올해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주인공들이 숨겨왔던 마음을 표출하는 장면에 등장한 우화각, 종고루, 침계루 등의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있다.

송광사 입구 매표소를 지나면 만해 한용운의 시 ‘인연설’이 걸려 있다. “함께 영원히 있을 수 없음을 슬퍼 말고 잠시라도 같이 있음을 기뻐하고 … ”.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 입구 매표소를 지나면 만해 한용운의 시 ‘인연설’이 걸려 있다. “함께 영원히 있을 수 없음을 슬퍼 말고 잠시라도 같이 있음을 기뻐하고 … ”. [사진 강나리 기자]
산길로 접어들면 계곡을 가로질러 석조 무지개다리인 극락홍교 위에 가을볕이 쏟아지는 ‘청량각(淸凉閣)’이 있다. 난간에 앉아 귀를 기울이니 시원한 시냇물 소리가 가슴을 씻어준다. [사진 강나리 기자]
산길로 접어들면 계곡을 가로질러 석조 무지개다리인 극락홍교 위에 가을볕이 쏟아지는 ‘청량각(淸凉閣)’이 있다. 난간에 앉아 귀를 기울이니 시원한 시냇물 소리가 가슴을 씻어준다. [사진 강나리 기자]
청량각 대들보 위에 턱을 걸친 용이 마주하고 있는데 다듬지 않고 자연스럽게 휘어진 나무에 단청으로 표현한 용이 익살스럽다. [사진 강나리 기자]
청량각 대들보 위에 턱을 걸친 용이 마주하고 있는데 다듬지 않고 자연스럽게 휘어진 나무에 단청으로 표현한 용이 익살스럽다.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의 일주문은 층층이 쌓은 놀라운 기교로 화려하지만 결코 사치스럽지 않은 품격의 다포계 지붕을 얹고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의 일주문은 층층이 쌓은 놀라운 기교로 화려하지만 결코 사치스럽지 않은 품격의 다포계 지붕을 얹고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일주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처음 송광사에 왔을 때 짚고 온 지팡이를 꽂아 나무가 되었다는 고향수(枯香樹)가 높이 솟아있다. 보조국사가 환생하여 오면 다시 푸른 잎을 피우게 될 것이라고 전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일주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보조국사 지눌이 처음 송광사에 왔을 때 짚고 온 지팡이를 꽂아 나무가 되었다는 고향수(枯香樹)가 높이 솟아있다. 보조국사가 환생하여 오면 다시 푸른 잎을 피우게 될 것이라고 전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고향수 뒤로는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건물이 있다. 세월각‧척주당(洗月閣‧滌珠堂)이라는 작은 전각은 19세기 초에 세워졌으며, 죽은 자의 위패를 두고 영혼이 속세의 때를 벗는 곳이다. 세월각은 여자 영가, 척주당은 남자 영가의 혼백을 목욕시키는 곳이라 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고향수 뒤로는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건물이 있다. 세월각‧척주당(洗月閣‧滌珠堂)이라는 작은 전각은 19세기 초에 세워졌으며, 죽은 자의 위패를 두고 영혼이 속세의 때를 벗는 곳이다. 세월각은 여자 영가, 척주당은 남자 영가의 혼백을 목욕시키는 곳이라 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의 대웅보전을 비롯해 주요전각들은 계곡을 건너 안쪽에 자리해 있다.  대웅보전으로 가는 우화각을 가기 전 맑은 계곡물을 건너는 돌다리가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의 대웅보전을 비롯해 주요전각들은 계곡을 건너 안쪽에 자리해 있다. 대웅보전으로 가는 우화각을 가기 전 맑은 계곡물을 건너는 돌다리가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삼천교 위 우화각을 지나면 사천왕문이 있다. 사천왕문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보물 제1467호)가 우뚝서서 내려다본다. 두눈을 부릅뜨고 있으나 [사진 강나리 기자]
삼천교 위 우화각을 지나면 사천왕문이 있다. 사천왕문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보물 제1467호)가 우뚝서서 내려다본다. [사진 강나리 기자]
대웅보전으로 가기 위해 마지막 관문으로 종고루를 지나야 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대웅보전으로 가기 위해 마지막 관문으로 종고루를 지나야 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종고루 아래에서 바라본 대웅보전. [사진 강나리 기자]
종고루 아래에서 바라본 대웅보전.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 대웅보전 틀 앞의 배롱나무.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 대웅보전 틀 앞의 배롱나무.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 대웅보전의 처마. 단청이 아름답다.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 대웅보전의 처마. 단청이 아름답다.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 대웅보전의 아름다운 문들이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 대웅보전의 아름다운 문들이 오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 침계루. 계곡물이 흐르는 바위위에 세워진 중층 누각으로 승려들이 목련극(目蓮劇)과 팔상극(八相劇)을 연습하던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전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 침계루. 계곡물이 흐르는 바위위에 세워진 중층 누각으로 승려들이 목련극(目蓮劇)과 팔상극(八相劇)을 연습하던 장소로 사용되었다고 전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 대웅보전에서 청량각으로 내려오는 길 오른편에 조선 후기 건립한 탑전 부도군이 있다. 탑전 입구에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 현판이 걸린 일주문이 있다. 중앙에 난 구멍을 지나려면 절로 고개를 숙여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 대웅보전에서 청량각으로 내려오는 길 오른편에 조선 후기 건립한 탑전 부도군이 있다. 탑전 입구에 '구산선문(九山禪門)'이라 현판이 걸린 일주문이 있다. 중앙에 난 구멍을 지나려면 절로 고개를 숙여 마음을 가다듬게 된다. [사진 강나리 기자]
탑전 부도군. [사진 강나리 기자]
탑전 부도군. [사진 강나리 기자]
송광사 각 전각의 배치도. [사진 송광사 누리집]
송광사 각 전각의 배치도. [사진 송광사 누리집]

 

0
0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