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청 맞은편 덕수궁 옆에 위치한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옥상에 설치된 '서울 대청'. [사진 강나리 기자]
서울시청 맞은편 덕수궁 옆에 위치한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옥상에 설치된 '서울 대청'. [사진 강나리 기자]

짐가방을 맨 여행자에게 잠시 피곤함을 씻을 수 있는 작은 벤치가 고맙지만, 마냥 쉬기는 불편하다. 만약 서울 한복판에 편안히 누워 풀벌레 소리와 함께 늦가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대청마루가 있다면 어떨까?

광화문에서 덕수궁으로 가는 길 서울시청청사 맞은편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옥상에 ‘서울 대청’이 있다. 옥상이라고 해도 보도에서 몇 계단만 오르면 될 정도로 높지 않아 바로 보이고 접근하기 쉽다.

'서울 대청'은  ‘2022 서울마루 공공개입 공모전’ 당선작으로, 건축가 강현석·김건호 소장과 이종철 대표(SGHS 설계회사)의 작품이다. [사진 강나리 기자]
'서울 대청'은 ‘2022 서울마루 공공개입 공모전’ 당선작으로, 건축가 강현석·김건호 소장과 이종철 대표(SGHS 설계회사)의 작품이다. [사진 강나리 기자]
한옥의 대청마루를 모티브로 한 대청마루는 격자무늬 구멍이 뜷린 자작나무 평상 126개로 연결되어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격자무늬 구멍이 뜷린 자작나무 평상 위에 떨어진 낙엽. [사진 강나리 기자]

그곳에는 격자무늬 구멍이 뚫린 다공(多孔) 형태의 자작나무 평상 126개가 하나로 이어져 널찍한 대청마루가 되었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목재 평상 위에 둥근 쿠션들이 곳곳에 깔려있어 누구나 평상에 올라와 서로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필요하면 누워서 하늘을 보며 쉴 수도 있다.

이끼와 키 낮은 꽃들이 깔린 대청마루 아래에서 풀벌레와 바람, 새소리가 울려 나오고 물 흐르는 소리도 들려 평상에 누워 눈을 감으면 잠시 주변 소음을 잊고 시공간 너머 어딘가에 머물게 된다. 서울 대청을 찾은 15일 오전, 쿠션 위에 누워보니 이미 겨울로 접어든 줄 알았는데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따뜻하고 부드러운 햇살과 바람이 느껴진다.

한옥을 모티브로 한 서울 대청의 아래 격자무늬와 기둥이 멋진 디자인으로 펼쳐져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한옥을 모티브로 한 서울 대청의 아래 격자무늬와 기둥이 멋진 디자인으로 펼쳐져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평상 아래 얇은 두께의 이끼 정원. [사진 강나리 기자]
평상 아래 펼쳐진 얇은 두께의 이끼 정원. [사진 강나리 기자]

이 ‘서울 대청’은 서울시와 서울도시건축전시관이 주최한 ‘2022 서울마루 공공개입 공모전’ 당선작으로, 건축가 강현석·김건호 소장과 이종철 대표(SGHS 설계회사)의 작품이다.

한옥에서 방과 방 사이를 연결하는 큰 마루인 전통적인 대청마루를 모티브로 시민들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도시를 감각할 수 있는 휴식처이자 교감의 장소를 만들었다.

서울 대청에서 바라본 덕수궁 돌담길.[사진 강나리 기자]
서울 대청에서 바라본 덕수궁 돌담길.[사진 강나리 기자]

서울 대청 주변은 서울의 역사와 사람들이 이야기가 담긴 장소이다. 바로 곁에는 조선의 5대 궁궐의 하나인 덕수궁과 함께 1896년 고종이 일본군과 친일파의 감시망을 벗어나 러시아공사관으로 피했던 아관파천이 일어났던 ‘고종의 길’이 있다.

일제강점기 강연 및 공연장으로 지어진 경성부민관으로 세워졌다가 6.25 한국 전쟁이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기도 한 서울특별시의회 건물. [사진 강나리 기자]
일제강점기 강연 및 공연장으로 지어진 경성부민관으로 세워졌다가 6.25 한국 전쟁이후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기도 한 서울특별시의회 건물. [사진 강나리 기자]

서울특별시의회는 일제강점기인 1935년 경성부의 대집회용 건물인 경성부민관(府民官, 시민회관)으로 세워졌다. 이곳에서 1945년 부민관 폭파 의거가 일어났고, 광복 후 미군정에서 임시로 사용하다 국립극장으로 사용되었다. 1954년부터는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었는데 첫 민주주의 혁명인 4.19 의거가 일어난 원인이 된 사사오입 개헌이 일어난 장소이기도 하다.

현재 서울시청사(왼쪽)와 서울시도서관. 서울시 도서관은 일제강점기 경성부청으로 세워졌다가 서울시청사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진 강나리 기자]
현재 서울시청사(왼쪽)와 서울시도서관(오른쪽).  [사진 강나리 기자]

맞은편 서울도서관은 1926년 경성부청 건물로 지어져 서울시청사로 이용되었다가 2012년 서울시민들이 이용하는 도서관으로 바뀌었다. 바로 앞 서울광장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서울시민 모두가 붉은악마 응원단이 되어 한국인의 뜨거운 열정과 함께 질서정연한 응원을 펼쳐 전 세계에서 화제를 모았던 장소이기도 하다.

서울대청에서 바라본 성공회성당. 일제강점기인 1922년 착공되었다가 미완성 상태로 1926년 준공되어 1996년 최종 완성된 건물로 한옥양식과 서양 건축양식이 어우러져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서울대청에서 바라본 성공회성당. 일제강점기인 1922년 착공되었다가 미완성 상태로 1926년 준공되어 1996년 최종 완성되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성공회성당은 한옥양식과 서양 건축양식이 어우러져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성공회성당은 비잔틴식의 서양 건축양식과 한옥양식이 어우러져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지난 10월 5일 개방된 이후 ‘서울 대청’에는 주변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 많이 찾고 경복궁과 덕수궁을 여행하던 외국인들도 잠시 머물다 간다고 한다.

현장에서 안내를 맡고 있는 장태준(22) 씨는 “이곳이 건축전시관인 줄 모르고 눈에 띄어서 왔다가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쉬어 가는 분들도 있어요. 그리고 외국인을 포함해서 실제 여기서 1~2시간 잠을 자고 간 분들도 있죠.”라고 했다.

그는 “공모전 전시라 두 달밖에 운영되지 않아서 12월 7일이면 끝납니다. 이곳을 찾은 분들이 너무나 아쉽다고 이야기하세요. 도시 안에서 이렇게 햇빛도 받고 힐링하는 게 좀 드무니까요.”라고 시민들의 의견을 전했다.

건축가들은 서울 대청의 126개의 평상은 설치가 끝난 후 다른 장소에서 재활용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새롭게 설치할 곳을 찾고 있다고 한다. 12월 7일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하지만 한번 들러 방과 방 사이를 연결하는 대청마루처럼 서울의 역사적 장소들을 연결하는 곳에 위치한 ‘서울 대청’에서 쉬어가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