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룬 덕수궁의 돌담길을 따라 정동공원으로 향하는 길을 ‘고종의 길’이라 부른다.
1894년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의 주동으로 국모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그 이후 철군하지 않고 경성에 머무는 일본군과 친일 개화파의 이중 감시망 속에 사실상 궁궐에 감금된 상태였던 고종은 다음 해인 1896년 2월 11일 새벽 왕세자와 함께 당시 주한 러시아공사관까지 이어진 120m의 길을 따라 피신했다.
고종의 길은 ‘아관파천(俄館播遷)’이라 부르는 사건 이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물 당시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을 오갈 때 사용한 길로 추정된다.
1년간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던 고종은 1897년 2월 29일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돌아와 234일 뒤 황제의 나라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제국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기울어가는 나라를 다시 세우려는 마지막 의지를 불태웠다.
2012년 개봉했던 영화 '가비'에서 아관파천에서 대한제국 선포까지의 혼란하고 치열했던 순간들과 고종의 행보가 잘 나타난다. 고종은 아버지 흥선대원군과 아내 명성황후 사이에서 흔들리며 국제 정세에 무지몽매해 망해가던 나라의 비운의 왕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의병을 지원하고 늦게나마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국제관계 속에서 약소국이 살아남을 방안을 모색했다.
대한제국 13년 간 1905년 헤이그 밀사사건과 고종의 강제퇴위, 을사늑약, 1909년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등 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오는 11월 17일은 117년 전 덕수궁 중명전에서 일제의 강압에 의해 외교권을 박탈당한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