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18일  ‘일제 지배정책 연구의 현황과 과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 18일 ‘일제 지배정책 연구의 현황과 과제’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침략과 식민지배는 △침탈 △억압 △차별 △동화 △수탈 △통제 △동원 등의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탈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정치와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쳐 명확하게 규명하는 학술회의가 지난 18일 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 주최로 재단 회의실에서 열렸다.

재단은 '일제 지배정책 연구의 현황과 과제' 학술회의가 2020년부터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추진해 온 ‘일제침탈사 연구총서’ 편찬사업의 중간평가로, 전 분야를 총망라한 일제침탈사 연구는 광복 이후 80년 만의 첫 시도이자 대형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재단은 현재까지 일제침탈사 연구총서 총 50권 중 15권을 발간하고 올해 말까지 10권을 추가로 발간하며, 2024년까지 모두 발간할 계획이다. ‘

또한, 학술회의 개최 취지와 관련해 “한일간의 역사문제는 ‘식민지 지배’라는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역사인식에서 출발한다. 과거 침량의 역사를 미화하면서 평화로운 얘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술회의를 통해 한국과 일본이 침탈사를 보는 시각을 공유하고, 나아가 미래지향적인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제침탈사 연구총서' 편찬위원장인 박찬승 한양대 명예교수가 기조강연을 했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일제침탈사 연구총서' 편찬위원장인 박찬승 한양대 명예교수가 기조강연을 했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이날 학술회의에서 편찬위원장인 박찬승 한양대 명예교수는 기조 강연을 통해 “일제의 침략과 식민 지배의 실상과 그 기제를 명확히 밝혀 일제의 강제병합을 정당화하거나 식민 지배를 미화하는 논리를 비판 극복하고 식민통치의 부정적 유산이 해방 이후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밝히고자 한다”라고 일제침탈사 편찬 취지를 설명하고, 지금까지 일제 식민지 지배정책 연구의 현황과 과제를 조감했다.

박찬승 명예교수는 “일제 식민지 지배정책 연구는 1945년부터 1970년대까지 오히려 일본의 소장 한국사 연구자들에 의해 진행되었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0년대 이후”라며 “일본에서 주로 구 경성제국대 교수들이 동원된 일본의 연구 기조는 ‘한국은 현저하게 후진, 낙후해 있었으며, 일본의 조선 통치는 한국인의 생활과 문화 향상에 크게 공헌했다’라는 것이다. 이 논리가 아직도 일본 보수파 정치인이나 관료, 학자들에게 계승되고 있다”라고 밝혔다.

박 명예교수는 해방 이후 최근까지 식민지 시대를 보는 한국 연구자의 입장을 3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는 해방 이후 1980년대까지 남북한, 재일조선인 역사가들은 ‘’ 내지 ‘반제국주의론’에 입각해 조선과 대만을 식민지로 하여 원료와 식량 생산기지, 상품의 독점적 판매기지, 과잉자본의 진출기지로 삼았음을 비판하는 입장이다.

연구사례로는 1927년 금융공황, 1929년 세계경제공항 때 일본의 지배계급은 공황에 의한 자신들의 부담을 덜고자 식민지 조선을 ‘경기순환의 완충장치’로 이용하고 그 부담을 조선 민중에 가중했다는 박경식의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지배’(1973) 등을 소개했다.

두 번째는 1990년대 이후 등장한 ‘식민지근대화론’으로, 1980년대 동아시아에서 신흥공업국으로 대두된 한국과 대만, 싱가포르, 홍콩 등에 대해 구 식민지 지배가 이들의 경제성장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본이나 미국의 일부 경제학자들이 제기했고 한국의 일부 경제사학자들이 동조했다. 박찬승 명예교수는 이들 주장에서 제기한 통계의 오류 등 논리적 허점을 지적한 역사학계 정재정, 정태헌, 정연태, 경제사학계 허수열 등의 비판을 소개했다.

세 번째는 1990년대 중반 미국의 한국사학계에서 먼저 제기된 ‘탈근대주의(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인 ‘식민지근대성론’으로, 수탈론(일본 제국주의 비판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을 모두 비판했다.

박찬승 명예교수는 “2000년대 이후 식민지 지배정책사 연구가 상당히 늘었지만 아직도 연구 내지 연구자가 크게 부족하다. 이는 식민성보다 근대성에 더 치중하는 ‘식민지근대성론’에 의지하다 보니 식민주의에 대한 관심이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향후 연구는 근대성보다 식민성에 더 관심을 갖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고, ‘일본 제국주의 비판론’에서 계승할 부분은 계승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일제 침탈사 학술회의에서 정치분야를 맡은 전상숙 광운대 교수(왼쪽), 성공회대 신주백 교수.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일제 침탈사 학술회의에서 정치분야를 맡은 전상숙 광운대 교수(왼쪽), 성공회대 신주백 교수.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한편, 이번 학술회의에서 정치 분야를 맡은 광운대 전상숙 교수는 일제 식민지배기 각 총독별 총독정치와 식민지 지배정책과 관련해 “역대 조선총독들은 모두 무관으로, 일본을 대륙의 제국으로 만들고자 한 메이지 일본의 핵심 정치세력이었다. 조선을 대륙으로 진출하는 전진기지로 확립하고자 했다. 1930년대 이래 일본천황제 국가의 ‘생존’을 위한 전쟁에 조선은 최후의 물자동원지로 기능하며 남김없이 동원되는 수탈의 대상이었다”라며 “조선총독정치는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라는 본질 그 자체”라고 발표했다. 성공회대 신주백 교수는 일본군의 한반도 침탈과 식민 지배, 침략전쟁 수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찰해 발표했다.

일제 침탈사 학술회의에서 경제분야를 맡은 한국외대 이영학 교수(왼쪽)와 동의대 김인호 교수.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일제 침탈사 학술회의에서 경제분야를 맡은 한국외대 이영학 교수(왼쪽)와 동의대 김인호 교수.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경제분야를 맡은 한국외대 이영학 교수는 일제의 농업 침탈정책과 그로 인한 피해상을 통시대적으로 조명했고, 동의대 김인호 교수는 일제의 공업정책이 증산과 개발이라는 가면을 쓰고 실제는 조선인의 희생을 담보한 수탈이었음을 밝혔다.

전시동원 분야에서는 허광무 연구위원(강제동원‧평화연구회)은 강제동원 법령과 제도, 동원 대상과 지역, 현안와 향후 과제에 관해 발표했다. 고려대 이송순 교수는 일제 말 전시체제기 자행된 군수물자 동원과 생필품 통제 실상을 규명해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