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전쟁에 동원된 한국 젊은이들. 사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누리집.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동원된 한국 젊은이들. 사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누리집.

최근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배상과 관련해 협상을 추진하는 데 대해 지난 22일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 시민단체가 외교부 청사(서울 종로구) 앞에서 ‘피해자 반대에도 진행하는 굴욕적인 외교’라며 중단을 강력히 촉구했다.

같은 날 일본 시마네현은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침해하는 ‘다케시마의 날’을 축하하고 정부가 차관을 참석시켜 지지를 표명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등으로 끊임없이 평행선을 달리던 한일관계는 지난 2018년 치열한 공방 속에 우리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고 판결한 이후 더욱 경색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 대법원-식민지배 불법, 강제동원 불법 VS 일본-식민지배 합법, 강제동원 합법

우리 대법원은 1910년 강제병합에 의한 식민 지배가 원초적인 불법이며, 일본이 일으킨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위해 한국 국민을 강제동원하여 성노예로 만들고 인간 이하의 강제노역으로 심각하게 인권을 침해한 것이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중첩적인 불법이라는 것이다.

반면, 일본은 1951년 미국 등 48개 연합국과 체결한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으로 모든 전쟁 책임을 면했다고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1910년 식민 지배가 합법이며 1938년 일본 국내법인 국가총동원법으로 한국인들을 동원한 것이니 이 역시 합법이라는 것이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따라 미국의 중재로 체결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일괄보상협정’이므로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입장이다.

과연 일본의 주장대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된 것일까?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국제법에서는 어떤 판단을 할까?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자 패전국으로 같은 입장이던 독일과 일본은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서로 다른 길을 걸었나? 한일 양국이 진정한 화해를 할 방법은 있는가?

동북아역사재단이 최근 발간한 연구총서《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70년의 역사와 과제》편찬 책임자 도시환 책임연구위원. 사진 본인 SNS.
동북아역사재단이 최근 발간한 연구총서《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70년의 역사와 과제》편찬 책임자 도시환 책임연구위원. 사진 본인 SNS.

4가지 질문과 관련하여 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이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축과제 모색을 위해 최근 발간한 연구총서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70년의 역사와 과제》에서 해답을 찾아본다.

세계인권선언 및 국제법도 국가 간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 소멸시킬 수 없다는 원칙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70년의 역사와 과제》에서 편찬책임자이자 국제법 학자인 도시환 재단 책임연구위원은 일본의 자의적 해석에 따른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먼저, 일본은 전쟁으로 인한 개인 피해자의 청구권에 대해 철저하게 이중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 의회의 결정은 중요한데, 아시아‧태평양전쟁 패전으로 러시아 사할린이나 중국, 한국에서 철수하면서 생긴 일본인의 재산이나 권리침해에 대한 청구권은 전후 일관되게 존재한다고 확인한다. 해당국에 청구하라는 것이다. 반면 한국인에 대해서는 태도를 180도 바꿔 청구권 소멸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는 일본도 1965년 국가 간 조약만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된다는 주장이 국제법상 위배된다는 걸 알고 있다고 했다. 1965년 시이나 에쓰사부로 외무대신, 1991년 야나이 순지 외무성 조약국장, 2018년 미카미 마사히로 외무성 국제법국장 등의 일본 의회 답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시환 책임연구위원은 “일본이 6월 22일 한일협정 이후 같은 해 12월 17일 일본 국내법률 144호를 별도로 제정해 일본 국민(전범기업 등)에 대하여 한국 국민이 가지는 재산, 권리, 이익을 소멸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한국 국민의 권리를 소멸시키는 조치에 대해 한국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외교적 보호권 포기를 일본 국내법으로 명문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1965년 6월 22일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 일본은 해당 협정으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개인청구권 소멸을 주장한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1965년 6월 22일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 일본은 해당 협정으로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개인청구권 소멸을 주장한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국제법에서는 어떤 판단을 할까? 도시환 책임연구위원은 2012년과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일본과 일부 국내 학자들이 주장하는 ‘일괄보상협정’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다고 한다.

그는 “유럽에서 전쟁법의 대가이자 국제인도법 분야 최고 권위자인 네델란드 라이덴대학 프리츠 칼스호벤(Frits Kalshoven)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과 독일의 침략과 잔학행위가 보여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극단적인 경시에 대한 반성으로 탄생한 국제인권법과 1949년 전쟁희생자 보호를 위한 제네바협약 등 국제인도법의 중요성을 제시했다. 나아가 일괄보상협정은 통상 정치적인 이유로 체결되며, 협정 체결 시점에는 대부분 개인의 피해와 손해는 파악되지 않으므로 보상액 산정에 고려될 수 없었다”라고 했다.

따라서, “칼스호벤 교수는 실제 피해자를 구제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일괄보상협정이 국제법 원칙이 될 수 없으며, 일괄보상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을 박탈하는 것은 효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라고 강조했다.

도시환 책임연구위원은 “일본이 냉전이라는 조약 전환 국면을 활용해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견강부회(牽強附會,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억지로 자기에게 유리하게 함)로 해석하고,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른 금액에 대해 독립축하금 혹은 경제협력자금이라 하는 이면의 궁극적인 의도는 일괄보상협정이라는 것”이라며 “일본이 금과옥조처럼 들고나오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조차도 조약의 기본정신이자 원칙을 담은 전문에 일본이 유엔헌장 준수와 세계인권선언의 실현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명시했다”라며 개인의 청구권 소멸 주장의 허점을 지적했다.

대법원 판결이 바로잡지 않았다면 100년 만에 스스로 식민지배를 합법이라고 선언하는 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합의의사록 중 강제동원 피해자의 미수금, 보상금 등에 관한 규정이 있었다며 일본은 한국인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 소멸을 주장한다.

도시환 책임연구위원은 “해당 규정은 일본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합법적인 식민지배 라는 전제하에 체불 임금이나, 배상이 아닌 보상 등에 관한 것이다. 그 역시 국가 간 조약으로 소멸시킬 수 없는 것이나, 지금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그에 더하여 강제동원과 불법노역으로 노예처럼 혹사당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책임이며 일본이 회피해온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노동자들. 사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누리집.
일제강점기 강제동원된 노동자들. 사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누리집.

도시환 책임연구위원은 2018년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관련하여 이를 부정하는 일부 국내 의견에 대해 격앙된 논조로 비판하는 부분이 있다.

그는 “우리 대법원이 1심과 2심 재판부와 같이 일본 사법부의 판결을 그대로 수용해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최종 판결을 했다면 그것은 강제병합 100년 만에 우리 스스로 일제의 식민 지배가 합법이라고 선언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은 우리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고 있는 우리 헌법의 핵심 가치를 부정하는 것으로 우리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헌법 위반인 것"이라고 했다. 

또한, "만약 대법원에서 그러한 위헌 판결이 내려졌다면, 아마도 일본은 한국 스스로 식민지배가 합법이라고 최종 판결했다며, 이후 팔짱을 낀 채 경멸하듯 지금까지 제기해온 '1910년 식민지배 합법론', '1965년 한일협정 완결론', '1905년 독도영유론'의 역사왜곡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웠을 것이다”라고 일갈했다.

도시환 연구위원은 “만일 대법원 판결이 바로잡지 않았다면 국제법 학자로서 역사 앞에 너무나 부끄러웠을 것”이라며, “2009년 서울과 부산고법의 2심 재판 결과에 참담했다. 2010년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일본 측 주장의 불법성을 규명하기 위해 양심적인 한일 양국 학자들의 공동연구와 함께 강제동원 피해자를 대리하는 변호인단까지 참여한 국제 학술회의를 통해 불법적인 식민 지배와 직결된 반인도적 불법행위로 인한 중대하고 심각한 인권침해라는 중첩적 불법에 관한 검토를 한 이유”라고 했다.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스러운데 가해자의 확대재생산 논리대로 한다면 상황 반복될 것

도시환 책임연구위원은 “현재진행형의 참담한 고통 속 고령의 피해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구조적인 폭력과 다를 바 없다.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통한 명예회복이 아니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가해자의 논리로 미봉하는 것은 2001년 ‘식민주의의 역사적 종식’을 담은 더반 선언과 세계인권선언의 실현 의무를 담은 국제인권법, 그리고 2005년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피해자 중심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만들 때 이상이 무엇이었나. 전범국 일본에게 전쟁 책임을 묻고 동아시아 평화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 출발이었다. 이에 역행하는 일본이 자의적으로 해석하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피력했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