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1일 제주포럼(5. 31~6.2) 중 동북아역사재단 주최 '한일 역사화해'를 주제로 세션에 참여한 한일 학자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지난 5월 31일 제주포럼(5. 31~6.2) 중 동북아역사재단 주최 '한일 역사화해'를 주제로 세션에 참여한 한일 학자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지난 3월부터 5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5월 31일 기시다 총리의 방한 등 한일 양 정상은 서울과 도쿄, 히로시마에서 3차례 회담을 하며 한일관계가 급속한 개선의 물결을 타고 있다.

하지만 한일 갈등의 요인이던 역사문제를 둘러싼 갈등은 여전하다. 오히려 양국 간 역사문제 수습 추진과정에는 항상 반동이 뒤따라 한일관계가 더 퇴보하는 결과를 낳았다. 양국 정상들의 의지만이 아니라 양국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한일관계 개선의 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역사 갈등의 골을 좁혀나가야 하는 필수과제가 놓여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5월 31일 ‘2023 제주포럼’의 세션으로 제주국제컨벤션센터 백록A홀에서 오후 5시부터 80분 간 ‘한일 역사화해와 대화-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주제로 세션을 구성하여 참가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일 학자들은 양국의 역사인식 차이를 좁혀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와 양국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고 선결과제는 무엇인지 논의했다. 발표자들이 공통적으로 제안하는 것은 ‘역사공동연구와 한일역사대화의 재개’였다.

동북아역사재단은 31일 제주포럼에서  ‘한일 역사화해와 대화-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세션을 열었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재단은 31일 제주포럼에서 ‘한일 역사화해와 대화-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세션을 열었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정재정 서울시립대학교 명예교수는 ‘역사화해를 향한 소중한 발걸음-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의 성찰과 기대’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역사 화해의 최상 목표는 정부끼리 뿐만 아니라 국민이 서로 적대와 불신을 해소하고 존중과 신뢰를 쌓아 일체감을 형성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는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통해 청소년과 대중문화 교류,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를 성공적으로 이루고,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설치를 통해 일본 역사교과서의 한국사 왜곡 문제를 해결하고 역사대립의 완화를 꾀했던 경험을 전했다.

정재정 명예교수는 “양국은 역사화해의 노력을 제대로 계승하지 않았다. 역사공동연구도 제2기를 끝으로 막을 내렸고 이후 역사 갈등은 오히려 깊어지고, 국민감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양국 정부는 화해를 모색하기는커녕 불화를 부추겼다”고 비판하고 “진정으로 역사 화해라는 궁극적 목표와 구체적 계획추진을 위해 시급한 것이 바로 ‘역사 공동연구의 재개’”라고 밝혔다.

정 명예교수는 공동연구위원회에 참가했던 경험을 토대로, 역사 공동연구는 갈을을 완화‧치유하는 수단 또는 화해를 실현‧담보하는 방법으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한일관계사의 공동연구와 보급을 제안했다.

이어 국제법 전문가인 이석우 인하대 법전원 교수는 ‘힘든 길 그러나 가야만 하는 길: 한일역사대화를 통한 국제규범의 형성’을 주제로 발표했다.

그는 “제2기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2007. 6월~2009. 12월)를 마치며 당시 조광 위원장은 ‘유럽의 프랑스와 독일, 폴란드 등은 상호 이견이 많은 역사문제에 대한 협의를 지속해 이견을 좁히고 있다. 그 대화는 50년째 진행되는 것도 있고 70년 이상 진행되는 것도 있다. 유럽 사례에 비해 한일 간 역사 대화는 불과 8년밖에 되지 않았다’고 소회를 밝힌 바 있다”며 이후 또다시 단절된 한일 상황을 설명했다.

이석우 교수는 “동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이 현재의 한계를 극복하여 국가적인 위상에 부합하는 국제사회의 규범 형성을 위해서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 한일간 문제가 선행적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주도적인 규범형성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며 “중단된 한일 역사대화의 재개를 통한 국제규범의 형성에 기여하는 길은 매우 힘든 길이다. 그러나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라고 피력했다.

한일 역사화해를 주제로 한 세션에는 한국에서 유학하는 일본인 학생들도 참관했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한일 역사화해를 주제로 한 세션에는 한국에서 유학하는 일본인 학생들도 참관했다.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한편, 일본 발표자인 가토 케이키 히토츠바시대학(一橋大學) 교수는 ‘올바른 역사인식을 세우기 위한 일본 시민사회의 과제’ 발표에서 대학생들에서 한일관계를 가르치며 느꼈던 경험을 발표했다.

그는 “최근 30년 동안 일본 교육의 우경화가 가속화되고 교육에 대한 국가 통제가 강화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일본 정부는 역사 교과서에 대한 정치개입을 강화했고, 2021년부터는 일본군 ‘위안부’문제 및 강제동원 문제 관련 용어를 교과서 회사에 변경하도록 하는 등 개입을 노골화하고 있다”며 “현재 대부분 일본 시민은 많든 적든 ‘한국 때리기’ 프로파간다에 영향을 받고 있다. 일본에 의한 가해 역사를 비판하는 사람은 ‘반일’이자 ‘좌익’으로 매도당한다”고 밝혔다.

가토 교수는 “대학 수업을 하면 ‘한일 역사연구자 간 의견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 일본 측 연구자는 일본의 가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오해하고 있다. 실제는 침략과 가해의 실태에 대해 큰 맥락에서 공유재산이라 부를 성과가 한일 학계에 축적되어 있음에도 학생들이 전혀 알지 못한다”고 했다.

또한, 2002년 출범한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가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 중 일본 측 문제로 “위원 선정시 일본 역사학회를 아우르는 학회가 아니라 일본 정부의 입맛에 맞춰 선정되었다. 한일 간 역사 대화가 진척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며 올바른 진척을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을 지적했다.

가토 교수는 학생들과 수업한 세미나 내용을 바탕으로 〈한일의 답답함과 대학생인 나(日韓のモヤモヤと大学生のわたし〉(大月書店)를 출판한 바 있다. 일본 시민사회에 식민지 지배 책임과 마주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책 집필을 고려했으나 귀 기울이지 않아 일본에서 절대적인 인기를 끄는 K-POP이나 한국 문화를 매개로 ‘답답함’을 키워드로 내세운 책을 만들었다.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을 계기로 식민지 지배 문제에 대해 배우려 하면 ‘너는 반일이구나’와 같은 말을 들은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있는 그대로의 의문이나 경험을 시작으로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해설하는 형식을 취했다.

지금까지 없던 콘셉트의 책으로, SNS를 활용한 프로모션을 실시해 K-POP팬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6쇄 1만 1천 부의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유력신문사 마이니치 신문 오오누키 토모코 기자가 취재도 없이 비판기사를 낸 것에 대해 독자들이 신문사에 공식 항의함으로써 정치부장이 직접 사과를 하고 기사삭제 조치를 하기도 했다.

가토 교수는 발표를 마치며 “지금도 식민지 지배 책임과 마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만으로도 유력 언론사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이 현실”이라며 “우리 일본 시민에게 식민지 지배 역사에 대해 착실하게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나갈 것이 요구 된다. 이를 위해 1990년대 이후 민간 차원에서 축적된 한일학술교류 성과를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발표 후 토론에는 동북아역사재단 조윤수, 위가야 연구위원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