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과거 증언모습. 사진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 누리집 갈무리.
일본군'위안부'피해자들의 과거 증언모습. 사진 희움일본군'위안부'역사관 누리집 갈무리.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2018년 8월 16일 일본군‘위안부’문제에 관해 “온전하게 피해자 입장에서 위안부 문제를 영구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으라”고 권고한 바 있다. 이는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에 대한 4년 만에 이뤄진 심사결과이다.

위원회는 생존 피해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고, 일본 정부가 피해자 중심의 접근법을 채택하지 않았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1990년대 초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처음 제기되었을 때부터 해결 원칙은 피해자 중심 접근 해결이었다. 그러나 생존자의 별세와 더불어 2015 한일합의, 2020 정의연 사태를 거치면서 피해자 중심 접근 원칙은 오해되거나 심지어 조롱되기까지 하고 있다.

일부 보수단체 회원과 유튜버들이 SNS 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수요시위 현장에서 일본군 ‘위안부’는 거짓이고 강제연행도 없었다며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주최한 일본군‘위안부’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 국제학술회의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피해자 중심 접근 문제 해결 원칙의 가치와 중요성을 재확인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이 개최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 국제학술회의 전경.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동북아역사재단이 개최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 국제학술회의 전경.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학술회의 1부 발표자인 동북아역사재단 박정애 연구위원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피해자 중심으로 보면 사건의 본질이 또렷해진다”고 했다. 과연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군 ‘위안부’는 실제 어떤 입장이었고, 왜 사건의 본질은 왜곡되었을까?

학술회의 2부 주제발표에서 장수희 동아대 초빙교수는 ‘자연스러움에 대해서- 평화시의 〈문화〉와 전시의 〈폭력〉’을 주제로, 전시 성폭력과 민간인 노예화를 “전쟁 중이기 때문에 늘 있는 일”로 인식되게 만드는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해당 시스템은 가해자들이 스스로 가해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과도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장수희 교수는 “피해 여성들의 고통에 대해 포커스를 맞추지 않는 것은 다수의 역사수정주의자들이 일본군 ‘위안부’ 제도에 대한 책임을 가장 하부의 ‘업자’에 전가하고, 군부와 식민 종주국의 책임을 삭제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장수희 동아대 초빙교수의 주제발표.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장수희 동아대 초빙교수의 주제발표.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그는 피해자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인식하지도 못하고, 가해의 주체가 누구인지 파악하기 어려웠던 점에 주목해 “피해자들은 폭력을 휘두르는 눈앞의 가해자, 위안소를 찾는 군인들, 납치 혹은 취업 사기를 한 업자들을 알 뿐이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일본군 ‘위안부’ 제도의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기 위해 중층적 가해 주체들을 분명히 하고. 이 억압주체들이 시스템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라고 연구 취지를 밝혔다.

그는 나치가 죽음의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의 죽음이 가시화되지 않도록 수용소가 수목으로 둘러싸여 은폐되어 있으며, 어떤 시스템 속에서 움직이는지 아무도 인지할 수 없도록 만든 상황을 비교 사례로 들었다. 가해 시스템에 가담하는 가해자도, 그 속의 피해자도 시스템의 전모와 결과 ‘그 너머’를 보지 못한 채 죽음으로 향해 가도록 만든 은폐와 인지불가능성을 지적했다.

장수희 교수는 “피해 여성들은 많이 배우지 못해서, 시골 출신이라서와 같은 개인적인 근거가 아니라 자신들이 가는 곳에 대한 정보도 자신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도록 하는 가해의 시스템이 은폐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며 “가해의 시스템 속에서 피식민지 당국의 행정은 제도를 시행하는 ‘제국’과 ‘조선인 여성’이 직접 대면하거나 드러나지 않도록 교묘하게 작동했다”고 밝혔다.

그는 “여성이 대면할 수 있었던 업자와 식민지 하부권력뿐 아니라 이러한 여성에 대한 착취와 가해가 가능하도록 한 시스템인 군대와 행정,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용인한 식민종주국 자체가 중첩된 가해의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며 “전쟁 중 전시 국가시스템을 통해 ‘당연하게’ 일어났던 성적 폭력들은 전후 평시가 되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문화’라른 다른 이름으로 존재하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태평양 전쟁의 종전-미군의 점령-남한 정부수립-한국전쟁-휴전과 냉전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평화’라는 모습을 띤 또 다른 군사주의하에서 ‘문화’라는 이름으로 성폭력을 ‘기생관광’의 이름으로 공인하거나 기지촌 성병관리 정책으로 묵인해왔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발표자 로라 강(Laura Kang, 미국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은 ‘위안부 담론 안의 〈오리엔탈리즘〉 고찰’을 주제로 일본군 성노예 제도와 그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화, 기념화, 그리고 배상요구 노력을 다룬 글로벌 지식장에서 비판적인 개념어인 ‘오리엔탈리즘’이 어떻게 발동되고 적용되었는지 검토했다.

그는 최근 영어로 쓰인 몇몇 연구가 ‘위안부’의 불균등하고 제멋대로인 힘‧지식 관계를 구성하는 중요한 역사‧문화‧인식론적 차이를 번갈아 조명하고 굴절시키면서 모호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오리엔탈리즘을 적용해왔다고 지적한다.

로라 강은 “국제사회의 현실적인 힘의 지배 논리를 벗어나야 비로소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문제 해결을 논의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발표자 후지메 유키(藤目ゆき, 오사카대학교)는 ‘여성사로서 ’위안부‘연구와 일본인 ’위안부‘의 비가시화 문제’를 주제로 하여 일본군‘위안부’ 문제의 본질을 보기 어렵게 하는 일본의 연구에 대해 비판했다.

후지메는 “성 피해를 수치로 여기는 여성 억압적 사회의식이나 일본의 배상 책임을 면제시켜 주었던 냉전 정치 아래서 생존자들은 고통스러운 전후를 살아왔다”며 “일본의 역사 연구가 여성 억압적 사회 통념에 의존해 공창제도에 면죄부를 주고, 냉전 체제하의 미군이나 한국군‘위안부’ 문제에 관해 마치 일본은 책임이 없으며, 게다가 외국군 성폭력 문제를 경미한 문제로 착각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역사 연구자는 용기를 내고 나선 생존자들의 행동에 응답하고, 혐오 언설에 대한 피상적인 반론에만 그치지 말고 진실된 역사를 기록할 책임이 있다”며 “역사적 실태를 직시하면서 연구자들이 국경을 넘어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마지막 발표자 백제예(미국 메사추세츠 주립대)는 ‘확장과 누락-전시 성폭력 연구에 대한 고찰과 제언’을 주제로, 전시 성폭력 및 일본군‘위안부의 국제적인 연구 지형을 검토하고 그 과정에서 성취한 것과 누락된 것을 검토했다.

백제예는 “최근 연구에서 전시 성폭력을 구성하는 가해와 피해의 외연은 확장된 반면, 그것을 둘러싼 맥락적 요소들은 파편화되고 누락되었다. 이 연구들에서 일본군‘위안부’제도에 대한 불처벌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흡했던 전시 성폭력 인식과 국제법적 규범, 그리고 냉전이라는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불가능했던 것으로 평가한다. 또, 현대의 발전된 정치, 사회, 법적 구조와는 질적으로 다른 단절된 ‘과거’ 경험으로 호명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시 성폭력 연구의 목표가 가해 예방과 피해로부터의 회복 및 정의구현이라는 점을 고려해 확장된 담론의 외연과 역사적 맥락을 더욱 적극적으로 연계해 전시 성폭력에 대한 다층적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요구된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국제학술회의를 통해 내셔널리즘, 제국주의, 인종주의, 성차별주의, 오리엔탈리즘 등을 비판적으로 인식하지 않고서는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의 목표에 닿기 힘들다는 사실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