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특정 조선인을 위한 비. 사진 정유철 기자
불특정 조선인을 위한 비. 사진 정유철 기자

서울 성북구(구청장 이승로)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를 맞이해 천승환 사진작가의 추모 사진전 《봉분조차 헤일 수 없는 묻엄》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8월 29일부터 9월 23일까지 문화공간이육사(종암로21가길 36-1) 3층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2017년부터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위령비와 기념물을 찾아 비석을 닦고 사진을 찍은 청년 사진가의 열정으로 시작했다.

천승환 작가는 2017년 11월 처음 도쿄에 있는 위령비를 만나고 2019년 7월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역사를 알려야겠다고 다짐한 후 2023년 불령선인(不逞鮮人) 프로젝트로 전시를 개최한다.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사건의 100주기를 맞아 2023년 3월 6일부터 5월 24일까지 79일 동안 일본 관동지역을 돌아다니며 관동대진 조선인학살과 관련된 위령비와 사적지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진행했고, 작업의 결과물을 전시하게 되었다. 작가는 늘 그랬듯이 경건한 마음으로 주위를 청소하고, 최소한의 예를 갖추기 위해 의복을 단정히 한 후 향과 술을 올린 후에 사진으로 기록했다.

특정 조선인을 위한 비. 사진 정유철 기자
특정 조선인을 위한 비. 사진 정유철 기자

그가 촬영한 도쿄도 스미다구 야히로 6초메 31-8에 있는 ‘도 관광대진재시 한국·조선인 순난자추도지비’(사던법인 봉성환 2009년 건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여 일본의 군대·경찰·유언비어에 현혹된 민중에 의해 한국·조선인이 살해당했다. 도쿄의 서민 거주지에서도 식민지 아래의 고향을 떠나 일본에 와있던 많은 사람이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귀중한 생명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러한 역사를 가슴에 새겨, 희생자를 추도하고, 인권의 회복과 두 민족 사이의 화해를 염원하며 이 비를 세운다.”(전시 자료)

사진작가 천승환 씨는 “단순히 역사를 알리는 것을 넘어 일본 관동지역 내 여러 장소에 산재된 위령비를 한 곳에 모아 안타까운 역사에 희생된 분들을 위한 추모의 공간을 조성하고 이 공간에 방문해주는 이들과 함께 호흡하고 기억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 천승환 사진작가의 추모 사진전 '봉분조차 헤일 수 없는 묻엄' 포스터. 이미지 서울성북구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 천승환 사진작가의 추모 사진전 '봉분조차 헤일 수 없는 묻엄' 포스터. 이미지 서울성북구

이번 추모 사진전에서는 작가가 일본 현지에서 촬영한 조선인 희생자 위령비 20기를 주제별로 만날 수 있다. 그 주제는 학살된 조선인을 위한 비, 특정 조선인을 위한 비, 불하拂下된 조선인을 위한 비, 불특정 조선인을 위한 비, 혼란 속 한 줌의 양심으로 행동한 일본인, 시대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앞장선 연구자이다.

각 사진마다 관련된 역사적 사건과 정보 기록 작업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들이 오디오를 통해 제공된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성북에 거주했던 문인 이태준, 양주동의 작품에도 영향을 끼쳤다. 1923년 관동대지진 당시 와세다 대학 재학 중인 양주동은 방학을 맞아 귀국해 학살의 참화를 피했지만 작품을 통해 관동 대학살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 이번 특별 전시의 제목 ‘봉분조차 헤일 수 없는 묻엄’은 양주동의 시 “무덤”의 구절에서 빌려왔다. 이번 전시에서 두 문인의 작품을 사진과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연계프로그램으로 9월 8일 오후 6시 작가와의 만남 행사가 열린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1923년 9월 1일 도쿄를 중심으로 한 일본 관동지방에서 발생한 7.9급의 초강력 지진으로 혼란에 빠지자 사회 불안 속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방화를 저지른다’라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계엄령을 선포하고 민간 자경단을 조직해 조선인과 조선인으로 의심받는 중국인이나 일본인까지 무참히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희생자가 6천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학살을 목격한 양심적인 사람들과 진실을 밝히려는 역사학자 등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조선인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비가 세워졌다.

전시가 열리는 ‘문화공간이육사’는 지역 주민의 뜻을 모아 설립한 문화시설로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이육사(李陸史, 1904. 5. 18. ~ 1944. 1. 16.)의 정신을 기리고 그의 활동을 알리는 전시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관람은 화~토요일, 오전 10시 ~오후 6시. 관람료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