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1일 간토대학살 100주년을 앞두고 간토대학살을 상기하고 조명하는 책이 속속 발간되고 있다. 간토학살 100주기 추도사업추진위원회가 공동 기획한《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민병래 글, 원더박스, 2023)은 100년동안 침묵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각성을 촉구한다. 우리에게는 어쩌면 잊혀진 과거사일지도 모른다. 간토대학살은 왜 잊혀졌을까?

민병래 글 '1923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 표지. 사진 정유철 기자
민병래 글 '1923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 표지. 사진 정유철 기자

 

1923년 9월 1일, 도쿄와 요코하마를 포함한 일본 간토 지방에 진도 7.9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사망자가 10만 명에 이르고 행방 불명자가 4만이 넘었으며, 이재민은 무려 340만 명에 달했다. 일본 역사상 최악의 재해인 간토대지진이다.

그런데 이때 간토 지방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조선인들에게는 더 무서운 재앙이 닥쳤다. 조선인들이 지진의 혼란을 틈타 방화, 약탈, 살인, 강간을 저지르고 있다며, 자경단만이 아니라 경찰과 군대까지 나서서 조선인을 잔혹하게 학살했다. 1923년 당시 학살 피해를 조사한 이재조선동포위문반은 6,661명이 죽었다고 보고했다.

이 간토대학살은 식민지 시기의 가장 참혹한 비극이지만, 안타깝게 한국 땅에서는 잊힌 사건이 되었다. 살아 돌아와 이 일을 알린 이들도 적었으며, 그마저도 총독부가 입을 막았다. 해방과 전쟁으로 인한 혼란 속에 피해자 조사는 요원한 일이었고, 그 후 군부독재 시기에도 피해자들은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다. 시간이 흐르며 학살을 직접 경험하거나 들은 이들은 모두 사망했고, 그 결과 간토대학살은 피해자의 정확한 수도 학살당한 이의 이름도 모른 채 유언비어에 의해 빚어진 비극으로 기억되었을 뿐이다.

최근에서야 언론과 방송에서 간토대학살이 조명되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았다. 100주기인 올해 이전까지 한국 작가가 쓴 간토대학살 관련 대중서는 전무했고, 모두 일본에서 나온 책의 번역서였다. 추모비만 해도 일본에는 20기가 넘는 반면, 한국에는 한 기도 없었다. 이제부터라도 간토대학살은 더 많이 이야기되고 논의되어야 한다.

저자 민병래는 2021년 봄 무렵 어느 날 ‘간토학살 피해자 97주기 추도식’에 관한 글을 읽었다. 10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일본 땅에서 벌어진 사건을 지금도 추모하는 모습이 신선하고 놀라웠다. 그날 이후로 저자는 조선인 대학살의 진상을 알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알아가면서 흥분한 자경당에 의해 우연히 일어난 사건으로 알았던 상식이 여지없이 깨졌다. 한 걸음 더 들어 여러 자료를 찾아보며 한국과 일본에서 간토의 진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저자는 이러한 노력을 알리고 싶었다. 이들의 삶을 통해 ‘간토 조선인 학살’에 담긴 의미를 전하고 그 일을 왜 지금 기억해야 하는지 말하고 싶었다. 2년여 동안 한국과 일본에서 아홉 명을 만났다.

이렇게《1923 간토대학살 침묵을 깨라》는 간토대학살의 전모를 다각도로 보여 주기 위해서 한국과 일본에서 조선인 대학살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한 9명의 이야기를 엮고 있다.

강덕상은 평생을 ‘조선인 대학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사료와 연구를 통해 일본에게 내밀 청구서를 가지런히 작성했다. 학문으로 일본의 학살범죄에 대해 서릿발 같은 공소장을 썼다.

니시자카 마사오는 학살당한 조선인을 평생 추모하며 《간토대진재 조선인 학살의 기록》을 펴냈다. 재일동포 오충공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조선인 학살의 진실을 밝혔다. 특히 올해는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그의 세 번째 작품 <1923 제노사이드, 조선인 학살 100년의 역사 부정>(가제)이 개봉될 예정이다. 교사로 일하며 조선인 인권에 눈을 뜬 아먀모토 스미코는 일본을 위해서 조선인 학살의 책임을 묻는다. 야마모토 스미코는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 사실을 알고 추모하는 가나가와현 실행위원회’ 대표이다. 김종수는 ‘간토대학살 진상규명 운동의 진지, 1923역사관’을 세우고 간토특별법 제정에 힘을 모으고 있다. 가토 나오키는 블로그로 책으로 조선인 학살의 진실을 알리며 일본 극우에 맞서고 있다. 가토 나오키는 이 과오를 정면으로 마주보고 반성하는 것이 일본의 역사를 바로잡는 첫걸음이라고 본다. 어제의 학살을 사회해야 미래에 평화가 오기 때문이다. 가토의 글을 멈출 수 없는 이유다. 시각 예술가 이이야마 유키는 예술로 조선인 대학살을 표현한다. 청년 사진작가 천승환은 2023년 3월 6일 일본으로 가서 간토 조선인 대학살 100주기를 맞아 80일 동안 관련 사적지 70여 곳을 참배하고 사진으로 담았다. 그의 사진 자료는 온라인으로 무료로 공개될 예정이다.

이들 각자의 삶과 활동은 다양한 결을 갖고 있지만 모두 간토대학살의 아픔을 드러내고 일본의 국가책임을 묻는 것으로 모아진다. 이제는 그들의 성과를 이어받아 한국 사회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