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전후 어르신들이 있는 강원도 홍천의 경로당. 20여 명 어르신들이 무릎을 치고 손뼉을 치며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나는 최고다! 아자! 아자! 아자!”를 외친다. 강사의 “다 같이 함성”요청에 “와~~~!” 목소리가 우렁차다.
어르신들을 지도하는 국학기공강사는 정현숙(56) 씨이다. 강원도 홍천국학기공협회장이기도 한 그의 힘찬 에너지가 어르신들과 어우러져 활기가 넘친다.
![30여년 전업주부였던 정현숙 씨는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 품은 강사의 꿈에 날개를 달았다. [사진=김경아 기자]](https://cdn.ikoreanspirit.com/news/photo/201907/55641_69090_5435.jpg)
기자와 첫만남에 “예뻐서 일찍 스카웃되었다.”며 경쾌한 웃음을 짓는 정 강사는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간 임시직 공무원생활을 했을 뿐 스물두 살에 결혼해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는 “결혼 후 처음으로 품은 강사의 꿈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명상덕분이죠. 뇌교육명상이요.”라고 했다.
정현숙 씨가 결혼할 당시 남편은 3대 독자 외아들이었다. 형님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돌아가신 후 시어머니가 47세 때 얻은 귀한 아들이었고, 남편을 여의어 혼자 키우셨다. “주변에서는 시집살이가 고될 거라며 다들 만류했는데 어머님은 제게 잘해 주셨어요.”
10여 년간 모셔온 시어머니는 80세를 고비로 아프면서 늘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을 붙잡고 본인이 아픈 이야기를 하고 외로움을 토로했다. 돌아가신 시아버지에 대한 화를 쏟아내기도 했다. “당시 30대였던 저희 부부는 80대 어르신의 고통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남편도 ‘아버지가 3살 때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라고 그러느냐?’고 했죠. 어머님께 손자들 방과 연이어진 안방에서 지내며 적적한 걸 해소하시라 했어요. 그래도 가족이 단란한 모습이 보이면 그 사이에서 본인 이야기로만 이끌려 하셨죠.”
일상의 삶 속에서 지쳤을 때쯤 정현숙 씨는 에어로빅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러다 2007년 홍천종합사회복지관이 생기고 여러 강좌가 유치되어 그도 참가했다.
정현숙 씨는 어느 날 복지관 교실의 열린 문틈으로 아랫배를 힘차게 두드리며 단전치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이 왠지 끌렸어요. 유명연예인이 나오는 요가 비디오의 현란한 동작보다 뭔가 깊이가 있겠다는 직감 같은 거였죠. 4~5년 간 매주 2회하는 기체조 교실을 빠지지 않았고, 지도하는 국학기공강사님이 정말 좋아서 무조건 따랐죠.”
그러던 중 그의 큰 아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발생했다. 남편은 하늘이 무너진 듯 초죽음이 되었지만, 현숙 씨는 “나는 힘이 있는 사람이니 내가 고칠 수 있어. 아무 문제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남편을 위로하고 아들을 진정시켰다.
“그러고 나서 아들이 아무 일 없던 듯 털고 일어났죠. 제가 차분할 수 있었던 건 국학기공수련을 하면서 에너지가 많이 채워져 단단해졌기 때문이란 걸 알았어요. 그 후 남편이 불안증세를 앓았지만 그때도 잘 대처했습니다.”
![경로당, 복지관 및 복지회관에서 국학기공 수련지도를 하는 정현숙 씨. [사진=김경아 기자]](https://cdn.ikoreanspirit.com/news/photo/201907/55641_69092_5652.jpg)
그가 복지관에서 4년 정도 수련했을 당시 강사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지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요가강사 자격을 취득했던 그는 ‘홍천에서 하나밖에 없는 수업인데 이 수업이 문 닫으면 안 된다. 내가 지켜야겠다.’는 결심으로 회원들을 지도했다. 그러나 회원으로 뛰어났던 그였지만 강사로 서는 것은 다른 차원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에 계속 두렵고 고통스러웠다. 그때 강사가 단월드에서 국학기공의 기반이 되는 뇌교육명상을 본격적으로 배워볼 것을 권했다.
“센터에 가서 제 몸상태를 비로소 알게 되었어요. 에어로빅을 15년 넘게 꾸준히 하면서 건강에 도움은 되었는데 몸을 크게 바꾸지 못했던 것 같아요. 몸과 뇌 균형을 알아보기 위해 눈을 감고 100걸음을 걸었더니, 제자리에서 2바퀴 반이나 돌았다더군요. 척추가 좌우 비대칭으로 심하게 틀어져 있던 거죠. 치마나 바지가 왜 자꾸 틀어졌는지 그때서야 알았죠. 그리고 제 가슴이 막혀서 답답한 것도 그때서야 느껴지더군요. 자신에게 집중해서 가슴을 두드리고 소리를 내어 풀면서 정말 좋았습니다. 현재 춘천센터에서 수련하는 게 마치 단비 같았어요.”
낯을 가리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던 그에게 강사로서 당당하게 설 수 있게 용기와 자신감을 찾아 준 것은 심성교육이었다. “처음에는 트레이너께서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열심히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연단명상을 하면서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계속 넘어가면서 스스로 할 수 없다고 했던 것을 제가 결정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샘솟더군요.”
어린 시절 어렵게 자란 그의 아버지는 외골수였고 아내나 자녀에 대한 통제가 심했다. 남편도 본인이 옳다고 믿고 행동하는 편이어서 그가 50세가 되도록 운전면허를 따는 일도 허락받기 어려웠다. 항상 그 굴레 속에 있다가 날개를 펼 용기가 생긴 것이다.
“누구의 딸, 엄마, 아내였기만 한 삶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어요. 심성교육 때 비로소 더 큰 내가 있다는 걸 발견했죠. 그동안 아이들이 크면서 제 역할이 없어졌다는 허전함에 동호인들과 쇼핑과 식사를 즐기며 사는 게 전부였죠. 그런데 ‘나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내가 선택하고 이루는 내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온 세상이 행복해보였어요.”
그가 교육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현실은 그대로였다. 남편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시기라 망설이고 있을 때 심성교육을 받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보수교육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운전을 못할 정도로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그대로 머물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마스터힐러 교육을 선택했죠. 교육을 받으면서 저도 모르게 제 목소리에 담겨있던 삶의 무게와 슬픔까지 가벼워졌어요. 남편도 제가 손만 잡아주는 것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남편도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많이 안정이 되었고요.”
![정현숙 국학기공강사가 경로당, 복지관 등에서 수련지도하는 모습과 국학기공대회 출전 모습. [사진=본인제공]](https://cdn.ikoreanspirit.com/news/photo/201907/55641_69093_5737.jpg)
그는 2013년 가을 국학기공강사 교육을 마치고, 홍천군 희망7리 경로당을 비롯해 경로당 2곳, 복지관 및 복지회관 3곳 등에서 수련지도를 하고 있다. “저보다 먼저 희망7리경로당을 맡았던 강사님이 춘천에서 다녔는데 홍천에 강사가 나왔다고 하니 제게 맡으라고 하시더군요. 그 강사님이 앞서 4년 간 잘 지도해서 국학기공에 대한 어르신들의 신뢰가 크셨죠.”
현재 88세까지 80대 어르신이 대부분인 희망7리 경로당 동호인들은 홍천국학기공대회뿐 아니라 어르신페스티벌 등 전국대회에도 출전할 만큼 열정적이다. 수련 틈틈이 5분~10분 우리 역사와 문화, 정신철학 등 국학이야기를 전하니 국학에 대한 신념, 자긍심도 높았다.
2016년 어르신페스티벌대회가 충남 천안에 있는 국학원에서 열려 참가했을 때는 ‘그냥 가면 안 된다’며 기부금 20만 원을 모아 전달했다. 또 그가 수련 중 한민족기념관을 건립하는데 큰 기부도 좋지만 많은 국민이 작게라도 동참하면 좋겠다고 지나듯 말했는데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동참했다. 홍천국학기공대회 때 공식적으로 기부금 전달식을 하자 다른 경로당 어르신들도 함께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양양 속초 산불 피해 때도 피해지역 돕기 기부금을 냈다.
![정현숙 강사는 지난 7월 4일 국학기공 지도를 하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충남 천안 국학원을 방문해 국학투어를 하고 120세 계단을 오르며 삶을 설계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본인제공]](https://cdn.ikoreanspirit.com/news/photo/201907/55641_69094_5850.jpg)
지난 7월 4일에는 경로당 2곳과 남면시복지회관 어르신들 서른두 분을 모시고 국학원 투어를 갔다. 반만 년 우리 역사와 역사를 지킨 위인과 의병, 독립군의 이야기에 감동했다. 연로한데도 국학원 120세 계단을 오르면서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며 행복해하셨다. 그리고 자체적으로 모은 기부금 116만 원을 전했다.
“70세 할머님이 몸이 좀 불편하셨는데 80대 언니도 간다는데 나도 가겠다고 하셨어요. 갔다 와서 ‘우리가 단군의 자손이란 게 뿌듯하다’고 울먹울먹하셨죠. 여행 후 어르신들께 피곤하지 않느냐고 여쭈니 ‘아프긴 왜 아프냐. 너무나 좋다’며 내년에도 가자고 하시더군요. 어르신들이 다들 넉넉한 것은 아니에요. 노인일자리 공공사업에 참여하면서 모은 돈을 쾌척하면서 보람 있다고 하실 때 뭉클합니다.”
정현숙 씨는 최근 120세 시대 새로운 어르신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녀에게 의존하는 노인이 아니라 후손에게 정신문화를 남겨줄 어르신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을 위한 가치 있는 삶을 살자고 말씀드리죠. 그러면 눈을 반짝이며 듣고 호응해주세요.
제 시어머니도 평생 어질게 사셨는데 아프면서 힘들어하셨고, 친정어머니는 10년 간 치매로 고생하다 돌아가셨어요. 제 부모님과 같은 어르신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법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는 앞으로 자신의 인생계획에 대해 “개인적인 꿈이 있다면 심성교육을 통해 제가 새 삶을 시작했듯이 가족 모두 심성교육과 PBM, 마스터힐러 교육과정을 밟고 홍익을 실천하는 홍익가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홍천국학기공협회장으로서는 지역에 강사가 많지 않아 저와 같은 강사를 만드는 것과 동호회 정회원을 늘려가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