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전후 어르신들이 있는 강원도 홍천의 경로당. 20여 명 어르신들이 무릎을 치고 손뼉을 치며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나는 최고다! 아자! 아자! 아자!”를 외친다. 강사의 “다 같이 함성”요청에 “와~~~!” 목소리가 우렁차다.

어르신들을 지도하는 국학기공강사는 정현숙(56) 씨이다. 강원도 홍천국학기공협회장이기도 한 그의 힘찬 에너지가 어르신들과 어우러져 활기가 넘친다.

30여년 전업주부였던 정현숙 씨는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 품은 강사의 꿈에 날개를 달았다. [사진=김경아 기자]
30여년 전업주부였던 정현숙 씨는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 품은 강사의 꿈에 날개를 달았다. [사진=김경아 기자]

기자와 첫만남에 “예뻐서 일찍 스카웃되었다.”며 경쾌한 웃음을 짓는 정 강사는 고등학교 졸업 후 2년 간 임시직 공무원생활을 했을 뿐 스물두 살에 결혼해 전업주부로 살았다. 그는 “결혼 후 처음으로 품은 강사의 꿈에 날개를 달아준 것은 명상덕분이죠. 뇌교육명상이요.”라고 했다.

정현숙 씨가 결혼할 당시 남편은 3대 독자 외아들이었다. 형님이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돌아가신 후 시어머니가 47세 때 얻은 귀한 아들이었고, 남편을 여의어 혼자 키우셨다. “주변에서는 시집살이가 고될 거라며 다들 만류했는데 어머님은 제게 잘해 주셨어요.”

10여 년간 모셔온 시어머니는 80세를 고비로 아프면서 늘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을 붙잡고 본인이 아픈 이야기를 하고 외로움을 토로했다. 돌아가신 시아버지에 대한 화를 쏟아내기도 했다. “당시 30대였던 저희 부부는 80대 어르신의 고통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남편도 ‘아버지가 3살 때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라고 그러느냐?’고 했죠. 어머님께 손자들 방과 연이어진 안방에서 지내며 적적한 걸 해소하시라 했어요. 그래도 가족이 단란한 모습이 보이면 그 사이에서 본인 이야기로만 이끌려 하셨죠.”

일상의 삶 속에서 지쳤을 때쯤 정현숙 씨는 에어로빅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러다 2007년 홍천종합사회복지관이 생기고 여러 강좌가 유치되어 그도 참가했다.

정현숙 씨는 어느 날 복지관 교실의 열린 문틈으로 아랫배를 힘차게 두드리며 단전치기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이 왠지 끌렸어요. 유명연예인이 나오는 요가 비디오의 현란한 동작보다 뭔가 깊이가 있겠다는 직감 같은 거였죠. 4~5년 간 매주 2회하는 기체조 교실을 빠지지 않았고, 지도하는 국학기공강사님이 정말 좋아서 무조건 따랐죠.”

그러던 중 그의 큰 아들이 패닉 상태에 빠져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발생했다. 남편은 하늘이 무너진 듯 초죽음이 되었지만, 현숙 씨는 “나는 힘이 있는 사람이니 내가 고칠 수 있어. 아무 문제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남편을 위로하고 아들을 진정시켰다.

“그러고 나서 아들이 아무 일 없던 듯 털고 일어났죠. 제가 차분할 수 있었던 건 국학기공수련을 하면서 에너지가 많이 채워져 단단해졌기 때문이란 걸 알았어요. 그 후 남편이 불안증세를 앓았지만 그때도 잘 대처했습니다.”

경로당, 복지관 및 복지회관에서 국학기공 수련지도를 하는 정현숙 씨. [사진=김경아 기자]
경로당, 복지관 및 복지회관에서 국학기공 수련지도를 하는 정현숙 씨. [사진=김경아 기자]

그가 복지관에서 4년 정도 수련했을 당시 강사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지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요가강사 자격을 취득했던 그는 ‘홍천에서 하나밖에 없는 수업인데 이 수업이 문 닫으면 안 된다. 내가 지켜야겠다.’는 결심으로 회원들을 지도했다. 그러나 회원으로 뛰어났던 그였지만 강사로 서는 것은 다른 차원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에 계속 두렵고 고통스러웠다. 그때 강사가 단월드에서 국학기공의 기반이 되는 뇌교육명상을 본격적으로 배워볼 것을 권했다.

“센터에 가서 제 몸상태를 비로소 알게 되었어요. 에어로빅을 15년 넘게 꾸준히 하면서 건강에 도움은 되었는데 몸을 크게 바꾸지 못했던 것 같아요. 몸과 뇌 균형을 알아보기 위해 눈을 감고 100걸음을 걸었더니, 제자리에서 2바퀴 반이나 돌았다더군요. 척추가 좌우 비대칭으로 심하게 틀어져 있던 거죠. 치마나 바지가 왜 자꾸 틀어졌는지 그때서야 알았죠. 그리고 제 가슴이 막혀서 답답한 것도 그때서야 느껴지더군요. 자신에게 집중해서 가슴을 두드리고 소리를 내어 풀면서 정말 좋았습니다. 현재 춘천센터에서 수련하는 게 마치 단비 같았어요.”

낯을 가리고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던 그에게 강사로서 당당하게 설 수 있게 용기와 자신감을 찾아 준 것은 심성교육이었다. “처음에는 트레이너께서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열심히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연단명상을 하면서 중도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계속 넘어가면서 스스로 할 수 없다고 했던 것을 제가 결정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샘솟더군요.”

어린 시절 어렵게 자란 그의 아버지는 외골수였고 아내나 자녀에 대한 통제가 심했다. 남편도 본인이 옳다고 믿고 행동하는 편이어서 그가 50세가 되도록 운전면허를 따는 일도 허락받기 어려웠다. 항상 그 굴레 속에 있다가 날개를 펼 용기가 생긴 것이다.

“누구의 딸, 엄마, 아내였기만 한 삶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았어요. 심성교육 때 비로소 더 큰 내가 있다는 걸 발견했죠. 그동안 아이들이 크면서 제 역할이 없어졌다는 허전함에 동호인들과 쇼핑과 식사를 즐기며 사는 게 전부였죠. 그런데 ‘나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내가 선택하고 이루는 내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하고 나서 온 세상이 행복해보였어요.”

그가 교육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현실은 그대로였다. 남편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시기라 망설이고 있을 때 심성교육을 받은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보수교육을 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운전을 못할 정도로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그대로 머물면 안 되겠다는 마음에 마스터힐러 교육을 선택했죠. 교육을 받으면서 저도 모르게 제 목소리에 담겨있던 삶의 무게와 슬픔까지 가벼워졌어요. 남편도 제가 손만 잡아주는 것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하더군요. 지금은 남편도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많이 안정이 되었고요.”

정현숙 국학기공강사가 경로당, 복지관 등에서 수련지도하는 모습과 국학기공대회 출전 모습. [사진=본인제공]
정현숙 국학기공강사가 경로당, 복지관 등에서 수련지도하는 모습과 국학기공대회 출전 모습. [사진=본인제공]

그는 2013년 가을 국학기공강사 교육을 마치고, 홍천군 희망7리 경로당을 비롯해 경로당 2곳, 복지관 및 복지회관 3곳 등에서 수련지도를 하고 있다. “저보다 먼저 희망7리경로당을 맡았던 강사님이 춘천에서 다녔는데 홍천에 강사가 나왔다고 하니 제게 맡으라고 하시더군요. 그 강사님이 앞서 4년 간 잘 지도해서 국학기공에 대한 어르신들의 신뢰가 크셨죠.”

현재 88세까지 80대 어르신이 대부분인 희망7리 경로당 동호인들은 홍천국학기공대회뿐 아니라 어르신페스티벌 등 전국대회에도 출전할 만큼 열정적이다. 수련 틈틈이 5분~10분 우리 역사와 문화, 정신철학 등 국학이야기를 전하니 국학에 대한 신념, 자긍심도 높았다.

2016년 어르신페스티벌대회가 충남 천안에 있는 국학원에서 열려 참가했을 때는 ‘그냥 가면 안 된다’며 기부금 20만 원을 모아 전달했다. 또 그가 수련 중 한민족기념관을 건립하는데 큰 기부도 좋지만 많은 국민이 작게라도 동참하면 좋겠다고 지나듯 말했는데 수업이 끝나자마자 그 자리에서 동참했다. 홍천국학기공대회 때 공식적으로 기부금 전달식을 하자 다른 경로당 어르신들도 함께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양양 속초 산불 피해 때도 피해지역 돕기 기부금을 냈다.

정현숙 강사는 지난 7월 4일 국학기공 지도를 하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충남 천안 국학원을 방문해 국학투어를 하고 120세 계단을 오르며 삶을 설계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본인제공]
정현숙 강사는 지난 7월 4일 국학기공 지도를 하는 어르신들을 모시고 충남 천안 국학원을 방문해 국학투어를 하고 120세 계단을 오르며 삶을 설계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진=본인제공]

지난 7월 4일에는 경로당 2곳과 남면시복지회관 어르신들 서른두 분을 모시고 국학원 투어를 갔다. 반만 년 우리 역사와 역사를 지킨 위인과 의병, 독립군의 이야기에 감동했다. 연로한데도 국학원 120세 계단을 오르면서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며 행복해하셨다. 그리고 자체적으로 모은 기부금 116만 원을 전했다.

“70세 할머님이 몸이 좀 불편하셨는데 80대 언니도 간다는데 나도 가겠다고 하셨어요. 갔다 와서 ‘우리가 단군의 자손이란 게 뿌듯하다’고 울먹울먹하셨죠. 여행 후 어르신들께 피곤하지 않느냐고 여쭈니 ‘아프긴 왜 아프냐. 너무나 좋다’며 내년에도 가자고 하시더군요. 어르신들이 다들 넉넉한 것은 아니에요. 노인일자리 공공사업에 참여하면서 모은 돈을 쾌척하면서 보람 있다고 하실 때 뭉클합니다.”

정현숙 씨는 최근 120세 시대 새로운 어르신문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녀에게 의존하는 노인이 아니라 후손에게 정신문화를 남겨줄 어르신으로 살아가면서 세상을 위한 가치 있는 삶을 살자고 말씀드리죠. 그러면 눈을 반짝이며 듣고 호응해주세요.

제 시어머니도 평생 어질게 사셨는데 아프면서 힘들어하셨고, 친정어머니는 10년 간 치매로 고생하다 돌아가셨어요. 제 부모님과 같은 어르신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법을 전하고 싶습니다.”

정현숙 강원도 홍천국학기공협회장은
정현숙 강원도 홍천국학기공협회장은 "제가 심성교육을 통해 새 삶을 시작했듯이 가족 모두 홍익가정이 되었으면 하고, 부모님과 같은 어르신들이 자신과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는 앞으로 자신의 인생계획에 대해 “개인적인 꿈이 있다면 심성교육을 통해 제가 새 삶을 시작했듯이 가족 모두 심성교육과 PBM, 마스터힐러 교육과정을 밟고 홍익을 실천하는 홍익가정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홍천국학기공협회장으로서는 지역에 강사가 많지 않아 저와 같은 강사를 만드는 것과 동호회 정회원을 늘려가는 것입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