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선택하고 이루는 기쁨 “아들! 이제 엄마가 꿈 꿀께!”
내 삶을 선택하고 이루는 기쁨 “아들! 이제 엄마가 꿈 꿀께!”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19.06.18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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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라이프 35편] 네 아들의 엄마 허용희 씨의 도전기

사람들은 아이와 청년에게 꿈을 묻고 그들의 꿈을 응원한다. 하지만 나이 40세가 넘으면 꿈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는다. 네 아들의 엄마 허용희(45) 씨는 중학교를 들어선 사춘기 큰아들에게 “네가 좋아하는 게 뭐야? 하고 싶은 게 뭔지 네 꿈을 찾아봐!”라고 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이 한 그 질문이 자신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네 아들의 엄마에서 국학기공강사로, 뇌교육지도자로 성장하는 허용희 씨. [사진=김경아 기자]
네 아들의 엄마에서 국학기공강사로, 뇌교육지도자로 성장하는 허용희 씨. [사진=김경아 기자]

“지금까지 살면서 닥쳐오는 상황에 맞춰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았지 제가 선택해서 이뤄본 게 많지 않더군요. 8년 전에 구미에서 뇌교육명상을 했던 기억이 나고 꼭 다시하고 싶어서 단월드 오산센터에 갔습니다. 센터에 들어서자마자 벽에 쓰인 ‘선택하면 이루어진다.’는 뇌교육 BOS(Brain Operating System, 뇌운영) 법칙을 봤던 것이 가슴에 남았어요.”

허용희 씨의 어린 시절 꿈은 선생님이었다. 중학교 시절 존경하는 멋진 도덕선생님이 3년 간 담임을 맡았는데 그 영향이 컸다. 그는 “선생님이 되려면 교육대를 가든, 사범대를 가든 준비해야 하잖아요. 저는 그런 준비 없이 막연하게 꿈만 꾸다가 점수가 되는 대로 행정학과를 졸업해서 섬유회사에서 5년 간 근무했죠. 회사생활이 무료할 때 쯤 결혼하고 곧 아이를 가졌어요.”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남편이 함께 육아에 동참해서 크게 힘들지 않았다. 그러나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이 태어나면서 남편은 늘 피곤해하고 아이들과 축구도 한번 해주지 않았다. “아이들이 계속 태어났고 저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값비싼 교구도 사곤 했죠. 그때 남편은 경각심이 들었나 봐요. 아이들을 키우려면 본인이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무리하게 일하다보니 체력은 떨어지고 힘겨우니 부부사이에 대화가 많이 줄었습니다.”

셋째아들 돌 무렵, IT업계에서 일하는 남편은 직장을 따라 오산으로 옮겨가서 주말부부가 되었다. 당시 갑상샘항진증으로 늘 약을 복용하던 용희 씨에게 지인은 ‘약보다는 자연치유력을 키우는 뇌교육명상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단월드 구미센터에 갔을 때 사람들이 너무나 좋았어요. 아버지가 늘 ‘착하게 살라.’고 하셨지만 사회에서는 그러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 센터에서는 다들 편안하고 서로 아껴서 ‘여기는 착한 사람도 행복할 수 있는 곳이구나!’ 했어요. 다른 운동을 하면서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경험이었죠.”

특히 그는 심성교육에서 육아스트레스로 말라붙어버린 줄만 알았던 자신의 가슴에 사랑이 있다는 걸 발견한 게 정말 감사했다고 한다. “첫눈에 반해 결혼한 남편인데 소통은 되지 않고 아이들의 짜증을 많이 냈던 것 같아요. 불통의 원인도 제 자신에게서 찾을 수 있었죠.

그리고 어릴 적 부모님에 대한 섭섭함이 있었는데 교육을 받고 부모님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5형제의 맏이로 태어난 아버지는 가끔 술을 드셨고 부부싸움도 하셨죠. 그래도 삼강오륜, 명심보감 등 좋은 글귀를 읽어주시며 팔베개를 해주며 다정했는데 어머니는 한 번도 안아준 기억이 없었어요. 농사일도, 바깥일도 어머니가 주도가 되어야 했고, 30여 년간 두문불출한 할머니를 모시면서 지쳐서 자식들을 살갑게 대해주실 수 없었던 거죠.”

심성교육 후 용희 씨에게 변화가 찾아왔다. “교육 전에는 이불 하나를 개려도 천근만근 무거웠는데, 이불이 무거운 게 아니라 제 마음이 무거웠던 걸 알았어요. 전에는 남편과 대화를 하려면 알 수 없는 답답함에 눈물부터 났는데, 교육 후 울 일이 없더군요. 활기를 찾으니 남편이 ‘바람이 났다보다’라며 농담을 할 정도였어요.(하하)”

허용희 씨는 마스터 힐러 교육을 받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감정과 생각에 휩쓸리지않고 일상에서 '깨어있기'였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허용희 씨는 마스터 힐러 교육을 받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감정과 생각에 휩쓸리지않고 일상에서 '깨어있기'였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는 PBM(Power Brain Method, 파워브레인 메소드)교육까지 받으면서 ‘뭔가 어르신과 아이를 위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다. 그러나 원장님이 성장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면 좋겠다고 권유했을 때 덜컥 두려움이 앞섰다. 때마침 남편을 따라 과천으로 이사를 가고 넷째아이를 가지면서 뇌교육명상 수련을 계속하지 못했다.

허용희 씨는 넷째를 낳을 때 노산으로 무척 고생했고 회복이 더뎠다. “어느 날 눈을 떴는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어지러웠어요. 그때 ‘죽음이 결코 멀리 있지 않구나. 죽기 전에 가치 있는 일을 해야 하는데….’라는 마음이 불쑥 올라오더군요.”

3년 전 오산으로 이사 와서 첫아이에게 질문한 것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기 시작했다. “1년 간 강의마다 관심을 갖다가 자연을 좋아하니 생태교육과 강사교육까지 받고 보조교사로 경험도 쌓았죠.”

다시 인연이 되어 2017년 8월 오산센터를 다녔다. 원장님은 그해 말 그의 성장을 위해 세 가지 제안을 했다. “국학원 120세 계단 명상, 신년 해맞이, 그리고 국학기공강사 교육이었죠. 국학기공강사라면 아이들을 다 키우고 활동할 수 있겠다는 마음에 수원의 교육원에 한 달간 다녔죠. 아이들 챙기며 교육을 받으려니 바빠서 갑상선 약을 먹는 걸 깜박 잊었어요. 한 달이 지나 문득 알게 되어 병원에 가보니 갑상선 수치가 정상이라고 했어요. 뇌교육명상을 다시하면서 건강이 많이 좋아진 거죠.”

10여 년간 육아만 하다가 사회에 나온다는 건 용기가 필요했다. 오산종합사회복지관 수련지도를 제안 받았을 때 용희 씨는 “‘좀 더 건강해지면 할게요.’라고 망설였어요. 그랬더니 ‘해보고 나서 문제가 생기면 그때 조정합시다.’라고 하셨죠. 첫 수업은 떨려서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고, 두 번째 수업은 더 두려웠어요. 두렵지만 해낸 경험이 쌓여서 어느덧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되었죠.”

그는 대담해져야 더 큰 홍익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에 마스터힐러 교육과정을 선택했다. “제가 죽을 것 같았을 때 했던 결심이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남편에게 ‘나 죽어도 힐러가 되고 싶어. 내가 책임지고 해내겠어.’라고 선언했죠. 오산종합사회복지관뿐 아니라 노인정 두 곳도 수련지도 했고 경제 자립을 위해 정리수납 일을 배웠어요. 1급 자격증을 따고 함께 교육받던 분과 동업을 했죠. 저는 인간관계를 잘 하는 편이었고 그분은 정리실무 능력이 뛰어나서 잘 운영했어요. 그런데 회사와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 등 강사로서 활동이 늘었을 때 정리수납일은 팀원을 붙여서 넘겨주고 저는 국학기공 강사업무에 전념하게 되었어요. 그때쯤부터 제가 마음먹은 대로 일이 진행되고 선택하는 대로 이루어지기 시작했죠.”

지도사범으로 회원들에게 뇌교육명상 수련지도를 하는 허용희 씨. [사진=본인 제공]
지도사범으로 회원들에게 뇌교육명상 수련지도를 하는 허용희 씨. [사진=본인 제공]

마스터힐러 교육을 받으며 용희 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깨어있기’였다고 한다. 감정이나 생각에 빠지거나 휘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고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할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때까지 제 집은 아침마다 전쟁이었어요. 저도 아침잠이 많은데 세 아이를 깨워 학교를 보내는 게 보통이 아니었죠. 특히 둘째와 많이 부딪혔어요. 깨면서부터 짜증을 받아줘야 하니 에너지가 소진되었죠. 그래서 반복되는 고리를 끊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마스터힐러 교육 후 선생님께는 아이 습관을 고치기 위해 늦을 것이라 양해를 구하고, 아이에게 ‘언제 일어날지 결정하라고 한번만 깨우겠다.’고 했죠. 정한 시간에 한번 깨우고 일어나지 않아 그대로 두었더니, 역시 일어나자마자 징징거리더군요.

그래서 아이를 앉히고 단호하게 ‘학교 안가도 된다. 지금 해야 할 일이 뭔지 생각해봐’라고 했더니 등교 준비를 하고서는 다시 선생님께 문자를 보내달라고 칭얼거리더군요. 다시 ‘지금 이 순간에 할 일이 뭔지 생각해봐’ 했더니 서둘러 등교하더군요. 아이와 깨어있기를 한 거죠. 다음날부터는 스스로 일어나서 학교에 갔는데 오히려 아이가 즐거워 보였어요. 작은 일이지만 본인이 선택해서 해낸 일이니까요. 아이를 제 시간에 학교에 보내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아이를 삶의 주인으로 살게 돕는 것이란 걸 알았습니다. 마스터힐러 교육 후 저는 한 발짝 물러나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겼고, 깨어있기를 통해 제 자신을 바라보며 아이들을 존중하게 되고 부딪힘은 많이 줄었어요. 지금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도 자신의 몸과 마음 상태를 관찰하면서 일상에서 깨어 있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는 마스터힐러 교육과정에서 또 하나 발견한 것이 있다. “제가 자신감 있게 성장한 모습만 제 모습이라고 여겼는데, 교육과정 중 잊고 있던 무기력한 예전 모습이 떠올랐어요. 그러면서 예전 그 모습도, 지금 성장한 모습도 나라는 걸 인정하고 다독일 수 있게 되었어요.

그리고 예전 저처럼 무기력한 사람에게 나와 같은 변화를 만들고 싶다는 의욕이 생겨서 지금은 센터에서 지도사범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복지관이나 경로당에서 진행할 때는 편안한데, 센터에서 지도하면서 잘 하려고 하면서 제 자신을 괴롭히기도 하더군요. 이렇게 성장과정에서도 수시로 감정이 올라오면 ‘아, 있구나!’ 인정하고 다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죠. 뇌교육명상은 계속 제 자신의 한계를 만나고 한계를 넘어 성장하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라고 소신을 피력했다.

최근 그는 경로당 등 수련지도를 할 때 뇌 감각을 깨워 스스로 힐링포인트를 찾는 셀프힐링법인 ‘BHP명상’을 전하면서 기쁨이 크다고 한다. “힐링포인트를 찾아드리니 과거 힘들게 했던 아픔을 이야기하고 나서 그날 밤 한 번도 깨지 않고 모처럼 꿀잠을 잤다고 자랑하는 분도 있고, 94살 어르신이 BHP명상을 하고 좋아서 수업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수련하시는 모습에 감동하기도 했죠. 저를 기다려주시는 어르신께 감사하고 어르신들의 무료한 일상에 잠시 청량한 기운을 드릴 수 있다는 게 즐거워요.”

막내 아들과 함께 한 허용희 씨. 그는
막내 아들과 함께 한 허용희 씨. 그는 "남편, 아이들도 함께 뇌교육명상을 하고자 한다. 가족과 함께 성장해야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다."며 홍익가정의 꿈을 밝혔다. [사진=김경아 기자]

허용희 씨는 “40살까지는 흘러가는 대로 살아왔고, 2년 전부터 선택하면서 살고 있어요. 작은 선택 하나가 현실에서 큰일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두려움, 부담감, 무기력을 벗어나서 이제는 선택하면서 사는 제 모습이 대견합니다. 지도사범이 되고 나서 원장님께서 ‘본인을 사랑하라’고 하시는데 정말 진하게 사랑하려고 합니다. 더 이상 제 삶을 방치하지 않고 성장하는 삶을 선택할 겁니다.”라고 당차게 포부를 밝혔다.

그는 “앞으로 100세, 120세 인생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꿈을 가지라고 할 게 아니라 부모가 꿈을 꾸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사가 되고 보니 모두 제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더군요. 어릴 적 꿈을 이루었네요. 지금 국학기공강사, 지도사범, 지구시민운동연합 오산지회 팀장, 네 아들의 엄마로 살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싶은지 계속 찾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성장하고 있으니 1년 뒤 제 모습이 어떨지 기대도 됩니다. 한 발씩 나아가다 보면 구체적의 제 성장 드라마를 그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또 하나 홍익가정의 꿈을 밝혔다. “남편과 아이들도 함께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성장했으면 합니다. 함께 성장해야 멀리 갈 수 있지 않을까요?”라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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