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말할 때 미혼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요즘은 다르게 말합니다. 비혼이라고. 사회가 변하면 언어도 변합니다.”

7월 2일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 한 교실에서는 강사가 칠판에 가득 한국어를 적어가며 단어 하나하나 의미와 어떻게 쓰는지, 그런 말이 어떻게 등장했는지 설명했다.

“애완동물이라는 말을 들어봤지요? 애완이란 장난감 같이 갖고 노는 것을 말해요. 그래서 이 말 대신 반려동물이라고 합니다. 부부가 아내나 남편을 말할 때 내 반려자라고 하지요. 그 반려에요.”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이 주관하는 '2018CIS지역 한국어교사 초청연수'에 참가한 고려인 한국어 교사들이 2일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이 주관하는 '2018CIS지역 한국어교사 초청연수'에 참가한 고려인 한국어 교사들이 2일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 앞으로 ‘ᄃ’ 모양으로 앉은 학생들이 소리내 읽기도 하고 받아 적는다. 20대에서 50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한 학생들. 실은 이들은 교사이다. 재외동포재단이 6월13일부터 7월18일까지 5주간 실시하는 '2018 CIS지역 한국어교사 초청연수'에 참가한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CIS지역 4개국에서 고려인 한국어 교사 28명이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 교육을 받고 있다. 재외동포재단은 고려인 한국어 교사들의 한국어 교육 역량과 한국 역사와 문화 체험을 통한 정체성 강화를 목적으로 이번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하리코프에 있는 정수리학교는 우크라이나 유일의 고려인민족학교이다. 정수리학교는 민족어의 회복만이 고려인의 살길이라는 믿음 아래 하리코프 지역에 거주하던 고려인들이 폐쇄된 유치원 건물을 시로부터 양도받아 문을 연 명문 공립학교이다. 학교 이름은 '민족의 말과 문화가 정수리에 스며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한다. 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경력 5년의 유가이 스베틀라나(25)씨가 이번 연수에 참가했다.

고려인 2세부터 5세까지 다양하게 구성된 이들은 나이와 국적은 서로 다르지만, 선조들의 조국인 한국을 모국이라고 생각해 스스로 한국어를 학습하고 많은 고려인에게 한국어와 문화를 가르치며 한민족의 정체성을 후대에 전파하는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연해주에서 온 고려인 5세 김 크세니야(20)씨는 외할머니로부터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임을 잊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김 씨는 고려인 민족문화 자치회 활동을 활발하게 하며 2016년 7월에 문을 연 아르센예브 한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 교사 활동을 통해 선조들의 조국인 한국을 알리고 나아가 한러 문화 교류 증진에 이바지하기를 바란다.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이 주관하는 '2018 CIS지역 한국어교사 초청연수'에 참가한 고려인 학국어 교사들이 2일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전통문화실습으로 서예를 하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이 주관하는 '2018 CIS지역 한국어교사 초청연수'에 참가한 고려인 학국어 교사들이 2일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전통문화실습으로 서예를 하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CIS지역 젊은 고려인들의 한국에 관한 관심이 크지만 한민족 정체성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어 고려인 한국어 교사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에 재외동포재단이 매년 CIS지역 한국어 교사를 국내에 초청해 이들의 한국어 능력과 교육 역량 강화, 한국 역사 문화체험을 통한 정체성 함양에 힘쓰고 있다.

2일 오후에는 전통문화실습 3번째 시간으로 장구 배우기와 서예 집중강습이 5시까지 진행됐다. 서예반은 궁체로 한글을 쓰는 강습을 했다. 붓, 연적, 먹, 한지를 앞에 놓고 학생들은 진지하게 먹을 갈고 강사의 글쓰기 시범을 보고 강사가 써준 글씨를 보고 각자 붓을 잡고 글을 쓴다. 붓글씨가 얼추 모양을 갖춰간다.

우크라이나에서 온 텐 빅토리아(24) 교사는 "서예를 처음 해보는데, 한글을 쓰니까 재미있다. 서예를 하니까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말했다. 텐 빅토리아 교사뿐만 아니라 참가자 모두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해서 썼다.

이 시간 다른 교실에서는 장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물놀이로 장구를 배운다. 많은 교사가 장구채를 잡고 강사의 지도에 따라 앞에 놓인 장구를 쳤다. 오늘 배우는 장단은 ‘세마치’. 칠판에는 악보와 함께 "덩--/덩-덕/쿵 덕-"이라 적어 놓았다. 세마치는 ‘세 번을 친다’라는 뜻으로 세마치장단은 3소박 3박자의 장단이다. 장구 구음은 “덩--/덩-덕/쿵 덕-”이다. 강사의 지도에 따라 입으로 세마치장단 소리를 내며 양 손으로 장단을 친다. 계속되는 반복. 장단과 박자가 들어맞는다. 강사가 말한다. “좋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아리랑을 부를 테니까, 장단을 치세요. 아리랑은 세마치장단이어요.” 아리랑에 맞춰 장구를 치는 학생들. 모두 놀랍도록 집중했다.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이 주관하는 '2018 CIS지역 한국어교사 초청연수'에 참가한 고려인 한국어 교사들이 2일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전통문화실습으로 장구를 배우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이 주관하는 '2018 CIS지역 한국어교사 초청연수'에 참가한 고려인 한국어 교사들이 2일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에서 전통문화실습으로 장구를 배우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러시아에서 온 유가이 따찌아나(31)씨는 "사물놀이를 본 적이 없어 해보고 싶었어요. 세 번 수업을 들었는데, 아직도 헷갈려요. 어려워요."라고 말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 연수 담당자는 "교사이라서 하나를 배워도 이걸 학생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은지 생각하고 질문을 합니다.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합니다. 같은 곳에서 온 교사들은 한 분은 장구, 다른 분은 서예를 배워 같이 가르치자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언어교육원은 매일 오후 1시까지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전통문화실습, 글쓰기 수업, 발음, 한국역사, 민화그리기 실습 등 다양한 교육을 한다. 이뿐만 아니고 지난 6월 23일에는 창덕궁과 종묘를 탐방했고, 6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간 제주도를 방문했다.

연수를 받고 있는 CIS 지역 한국어 교사들은 유익하고 재미있는 연수라고 말했다. 텐 빅토리아 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서 여섯 살 때 부모님을 따라 우크라이나로 이주한 고려인 3세다. 이번 연수가 두 번째.

텐 빅토리아 씨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학교 다녔는데, 러시아어와 우크라이나어로 공부를 했어요. 나중에 한국에서 온 분에게 한국어를 배웠어요.”라고 말했다. 텐 빅토리아 씨는 한국어 교사로 일하며 통역도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참가한 고려인 3세 텐 빅토리아 씨. 연수를 통해 한국 문화, 생활을 알 수 있어 유익하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우크라이나에서 참가한 고려인 3세 텐 빅토리아 씨. 연수를 통해 한국 문화, 생활을 알 수 있어 유익하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한국어 교사 경력이 5년이나 된다. 한국어 공부를 시작한 지 1년만에 한글학교 교사로 활동하여 재외동포 청소년 초청 연수, CIS지역 한국어 교사 초청 연수에 참가하여 한국 문화, 생활, 교육법 등을 습득했다. 연수 후 한국에 관한 관심이 커져 한국어능력시험 5급을 취득했다. 텐 빅토리아 씨는 연수 경험이 한국어 교사 활동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고 있다고 생각되어 이번 연수에 다시 참가했다.

텐 빅토리아 씨는 “한국어 공부뿐만 아니라 한국 생활을 체험해본다는 것이 교사로서 매우 유익합니다.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이 도움이 되요. 언어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도 많이 가르치지요.”라고 말했다.

‘인물로 배우는 한국 역사’ 강의를 들은 텐 빅토리아 씨는 “어려웠어요. 역사가 긴데 짧은 시간에 가르쳐주니까, 다 알기 어려웠어요. 단군에서부터 조선까지 배웠어요.”라고 말했다. 언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하니 앞으로 연수에 반영하여야 할 대목이다.

창덕궁이나 종묘를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에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면 좋을 것 같다는 텐 빅토리아 씨의 소망은 한국어 교사로 계속 일하면서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이다.

유가이 따찌아나 씨는 러시아 서남부 지역 작은 마을 꿀리쇼프카에서 학글학교를 운영하는 서른한 살의 젊은 교장이자 교사이다. 로스토프에 있는 한국문화센터의 한글학교에서도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꿀리쇼프카한글학교는 전체 학생이 25명 정도인데, 그 중에 고려인이 5~6명이고 나머지가 러시아인이어요. 러시아인들이 케이팝(K-POP)을 좋아하여 한국어로 한국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어 해요.”

유가이 따찌아나 씨는 “이번 연수 다 재미있어요. 저는 한국어가 부족한데 이번 연수에 한국어 공부를 집중해서 할 수 있어 도움이 많이 됩니다. 혼자서 한국어 공부하면 사전에서 의미는 같은데, 언제 사용하지는 알 수 없어요. 그런 걸 이번 연수에서 질문해서 확인해요. 또 한국 관련 러시아어 자료가 너무 없어요”라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참가한 고려인 3세 유가이 따찌아나 씨는 이번 연수에 한국어를 집중해서 배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러시아에서 참가한 고려인 3세 유가이 따찌아나 씨는 이번 연수에 한국어를 집중해서 배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유가이 따찌아나 씨는 러시아 로스토프국립경제대학교 동양학부를 졸업했다. 대학에서 한국 역사와 경제, 한국어 통역 등을 배웠고 졸업 후 재외동포 초청 장학생으로 2009년 경희대학교 학부에 입학해 수학했다. 이때 한국어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가이 따찌아나 씨는 한국어를 길게 가르치는 과정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CIS교사들은 오는 7월 17일까지 연수를 한다. 이 기간에 중앙박물관을 관람하고, 서울N타워 탐방, 도라산전망대 방문 등을 하여 한국의 모습을 생생하게 체험할 예정이다. 18일 폐회식을 한 후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 한국어 교사로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고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칠 것이다.

재외동포재단은 CIS지역 고려인들에게 한민족의 정체성과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모국과 거주국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이들 고려인 한국어 교사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