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운 최치원 상 [제공=국학원]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년 경주 출생) 선생을 언급하였다. 최치원은 열두 살이 되던 해에 "네가 20세까지 장원급제를 하지 못하면 나의 아들이 아니다"라는 아버지 견일(肩逸)의 강력한 의지와 함께 당(唐)나라로 조기유학을 떠났다가 스무 살이 되기 전인 18세에 마침내 장원급제하였다.

이듬해 '선주표수현위(宣州漂水懸尉)'를 제수받아 당나라에서 첫 벼슬을 하게 된다. 879년 '황소(黃巢)의 난'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그것을 읽던 반란군의 리더인 '황소'가 놀라 의자에서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이처럼 최치원은 당나라가 알아주는 국제적인 최고의 학자요 문장가였다. 885년(29세)에 귀국하여 전북 태인, 경남 함양, 충남 서산 등지에서 태수를 지내다가 벼슬을 사퇴하고 각지를 유랑, 해인사에서 일생을 마쳤다.

'난랑비서문(鸞郞碑序文)'은 신라의 '난랑'이란 화랑이 죽자 최치원이 묘비명을 지은 것으로 그 서문이 남아 있다. 난랑비서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는 이미 유교, 불교, 도교를 아우르는 '풍류도(風流道)'라는 '깨달음의 길'이 있었다고 나온다. 한때 우리나라를 풍미한 외래 종교이자 철학인 불교, 유교, 도교 등등은 우리 동이족의 높고 깊은 철학의 뿌리에서 가지 쳐 나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 이 교(敎)의 근원은 선사(仙史)에 실려 있는데, 삼교(三敎, 유儒, 불佛, 선仙)를 포함하고 중생을 교화한다. 집에 들어오면 부모에게 효도하고 밖에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니 이는 노(魯)나라 사구(司寇, 공자)의 뜻이요, 자연의 순리를 좇고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周)나라 주사(柱史, 노자)의 종지와 같으며, 모든 악행을 멀리하고 선행만 받들어 행함은 축건태자(竺乾太子, 석가)의 교화 그대로다."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內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이와 같이 우리의 역사와 문화 속에는 인류의 가장 높은 가르침들이 이미 하나로 녹아들어 있어 왔다. 그래서 ‘한민족’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나라보다 각자의 종교, 각자의 정당, 각자의 출신, 각자의 주장을 더욱 크고 귀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곧 '내 정신을 버리고 남의 정신으로 사는 것'과 같으니 오늘은 있다가 문득 내일이 되면 사라질 허망함의 상징이다.

우리 국학(國學)교육의 목적은 '효충도(孝忠道)'의 발현이니 모든 국민이 자긍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국학의 길'을 이어가야 할 것이다.


국학원 원장 (대), 전국민족단체 연합회 대표회장 원암 장영주